민간 일자리 비전 안보이고 인기 영합 복지공약은 넘쳐
고통분담 요구할 용기 필요
근대화 이전의 이 땅은 서양인들 눈엔 퍽 목가적으로 비쳤던 듯하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불리면서다. 그러나 '5.9 대선'을 앞둔 요즘 연일 시끌벅적하게 아침이 열리고 있다. 유세장엔 국민의 귓전을 간질이는 약속들이 넘실거린다.
하긴 대한민국은 더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아니다. 1960~1970년대 이후 숨가쁜 산업화.정보화 가도를 달려온 뒤끝일까. 세계에서 근로시간이 1, 2위를 다툴 만큼 분주하다. 지난 대선에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어느 후보의 슬로건이 꽤 어필했던 연유일지도 모르겠다.
온갖 복지공약이 봇물처럼 넘친다. 아동수당과 노인 기초연금, 청년 주거비 지원에 통신비 인하까지…. 수십조원의 개인부실채권을 정리해주겠다는 약속도 장밋빛이다. 이처럼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겠다'는 약속을 마다할 유권자는 없을 터. 하지만 박근혜정부의 20만원 기초연금 공약이 재원 부족으로 어그러지면서 얻은 학습효과일까. 국민의 '집단지성'은 후보들의 복지공약을 이제 미더워하지 않는 모양이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상 조사 결과를 보라. 박근혜정부의 지난 5년간 한국의 복지수준은 조금 높아졌지만, 국민 행복도는 외려 추락했다고 나왔다. 현실성 없는 복지정책이 신뢰를 못 준 탓이다. 실직자에게 수당 몇 푼 쥐여준들 '저녁이 있는 삶'을 맘 편히 즐길 엄두를 내겠는가.
주변국들을 돌아보자. 포퓰리즘 복지 경쟁에 매몰된 우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8일 '미국 물건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취지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일자리 창출에 올인하고 있다. 아베 정권도 과감한 규제완화로 투자를 유인, 일본은 청년구인난이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일대일로' 국가 전략의 본질은 뭔가. 잠자던 중국인들의 근로의욕을 깨워 세계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메시지가 아닌가.
우린 어떤가. 세금을 펑펑 쓰겠다는 경쟁을 통해 누군가 대권은 거머쥘 게다. 다만 그 이후가 걱정이다. 성장전략이나 노동개혁 등 복지정책을 지속 가능하게 할 대안은 뭔가. 아침에 눈을 뜬 국민이 달려갈 일터를 만들 후보가 안 보여서 문제다.
여론조사상 앞서가는 문재인 후보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을 약속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20조원이 넘을 재원조달 방안이 모호한 건 그렇다 치자. 그리스 사례를 보라. 이 나라는 국가부도 일보 직전인 2010년에 인구의 10분의 1이 될 만큼 공무원을 늘렸다. 하지만 세금을 내 철밥통을 부양할 민간은 위축되고, 결국 국가 전체의 일자리는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말지 않았나.
양극화 해소가 시대정신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정된 예산으로 세금을 나눠주는 식의 포퓰리즘 복지로 이룰 순 없는 노릇이다. 민간부문 일자리 창출을 통한 생산적 복지로 대한민국을 활기찬 아침의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노동개혁도 절체절명의 시대적 과제가 돼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좋은 롤모델이다. 진보적인 사회민주당을 이끌었던 그는 인기 없는 줄 알면서도 노동시장 유연화를 골자로 한 '하르츠 개혁'을 끈기 있게 밀고 나갔다.
그 결과 그는 권력을 내줬다. 그러나 통일 이후 경기침체와 취업난에 허덕이던 독일 경제는 살렸다. 우리도 국민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용기 있는 후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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