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공들인 연구라도 보안 무너지면 물거품
중소벤처 기술보호 무방비
정부출연 연구비 일부 보안교육 지출 입법화 필요
연대보증.스톡옵션 개선 등 4차산업 생태계 조성 필요
논문 위주 연구풍토 바꿔야
박희재 회장 사진=서동일 기자
"신기술 연구개발(R&D)과 보안은 한 축으로 돌아가는 두 바퀴와 같습니다."
박희재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회장은 파이낸셜뉴스와 최근 가진 인터뷰에서 "4차 산업혁명은 기술 보안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회장은 "아무리 연구를 잘해도 보안이 무너지면 한 순간에 공들인 기술개발이 물거품이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은 보안이 취약한 중소벤처 스타트업 기업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에서 산업보안은 4차 산업 시대에 더욱 중요하다는 게 박 회장의 생각이다.
박 회장은 "대기업을 빼놓고선 중소기업 대부분은 기술 보호에 무방비 상태"라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중소 기술벤처에 지원하는 연구 개발비중 일부는 보안 교육비용으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산업기술보호협회측의 기존 입장이다. 일부 정부 출연연구기관은 보안 교육을 받고 싶어도 연구 개발비를 보안 교육비로 할당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호소해왔다. 정부 출연 연구비중 일부를 기술 보안 교육비로 지출이 가능하도록 입법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박 회장은 "대학교에서 설립한 벤처기업들은 사실상 산업 보안에 무방비 상태가 놓여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학은 기술 보호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면서 "학문 연구가 자유로운 분위기이기 때문에 기술 보호에 대한 개념이 없다. 나오자 마자 발표하고 자랑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하지만 대학에서 발견한 신기술이 스타트업 기업의 시작이 될 수 있기때문에 연구원이 초기에 기술보안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기술보호협회는 중소기업청 지원속에서 보안에 취약한 스타트업 기업과 100인 이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산업기술 보호 시스템을 무료 제공하고 있다. 중소기업청과 협력을 통해 서울 서초동 산업기술보호협회 내에 보안관제센터를 갖췄다. 마치 정보기관 같은 형태로 구축해 운영중이다. 연구자의 UBS 사용 흔적 추적이 가능하며,비정상적인 이메일 사용 기록 등을 산업기술 보호 의뢰인에게 통보해준다. 협회에 신청을 하면 무료 서비스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차기정부 "4차산업 생태계 조성해야"
대선 이후 들어서는 차기 정부가 연구 생태계를 바꿔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박 회장은 조언했다. 박 회장은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이면서 올해 1월까지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전문기업 에스엔유프리시젼의 대표를 역임한 경력을 지녔다. 박 회장은 지난 1998년 서울대 학내 실험실 벤처 1호 에스엔유프리시젼을 창업했다. 지난 2005년에는 코스닥에 상장했고 '무역의날' 수출 7000만불 탑 수상도 했다. 에스엔유 창업주인 박 회장은 회사 지분 일부와 경영권을 에스에프에이에 매각하면서 경영일선에 물러나 '아름다운 퇴장'을 했다. 그 뒤 지난 2월부터 산업기술보호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한국은 벤처붐이 일어나지 못하는 구조로 최근 수십년간 유지돼왔다고 박 회장은 꼬집었다. 4차 산업혁명에 필수적인 기술벤처 육성이 되지 못하는 악조건의 생태계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기술 벤처인에게 요구하는 연대보증, 유명무실한 스톡옵션, 노벨상 타기 집착형 연구 병폐 등이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한국에선 기술기업이 한 번 실패하면 절대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아무리 기술평가가 좋아도 금융기업에서 연대보증이 없으면 펀딩을 해주지 않는다. 이처럼 혹독하게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고 질타했다.
그는 "연구자 개인들은 위험 부담을 한꺼번에 떠안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신기술 벤처기업의 리스크를 떠안아줘야 하는데 오히려 개개인 연구자들에게 책임을 지우게 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보였다. 심지어 법인카드조차도 연대보증을 하지 않으면 중소벤처 기술기업인들에게 나오지 않는 한국 벤처에 대한 금융지원 현실을 박 회장은 질타했다. 이러다보니 엘리트일 수록 기술벤처 설립에 도전하지 않고 변호사, 의사, 공무원 등으로만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전세계에서 신기술 개발에 두각을 보이는 유대인들도 한 때 변호사, 의사를 하는게 1순위였지만 불과 15년 사이에 바뀌었다"면서 "성공 스토리가 언론 등에서 조명을 받고 적절한 보수체계가 만들어지면서 인재들이 공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닷컴 버블 이후 창업붐이 무너졌다. 벤처 붐을 일으켰던 스톡옵션 제도가 유명무실화되는 등 잃어버린 10여년을 보내왔다.
박 회장은 "이공계 전체 박사들중 83.2%가 대학과 출연연구소에서 논문만 썼다. 12%는 대기업으로 가고 나머지 4.2%만 중소.벤처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며 기술력이 있는 중소.벤처에 고급 인력이 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최근 연대보증 없는 기술 펀딩 조성에 참여했다. 박 교수는 기술보증기금(기보)에서 3000억원 펀드를 만들어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포스텍, 카이스트 등 5개 대학이 기술벤처 창업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관여를 했다. 박 교수는 "기술심사를 통해 연대보증 없이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면서 "향후 1조원까지 기금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논문 위주 탈피해 실용기술 키워야"
박 회장은 논문에만 매달리는 연구 풍토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창업하는 사람도 있고, 이론을 중요시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다양화해야 한다는 데 모든 과학인력들이 논문만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그렇게 만들어진 논문들중에 상당수가 아무도 읽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박 회장은 꼬집었다. 정부가 추진해온 소위 노벨상 프로젝트로 불리는 'BK21(두뇌한국 221)'은 산업 기술 개발보다는 연구논문 발표에만 치우진 대표적인 연구비 지원 사례로 손꼽힌다.
박 회장은 "전세계에 논문을 쓴다고 장학금을 주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면서 "대학교수는 논문만 쓰면 된다는 방향을 잘못 잡아줬다. 독배를 준 것"이라고 BK21사업에 대해 아쉬움을 보였다. 그는 "논문 발표는 새로운 기술을 공개하는 것으로, 그 보다 먼저 특허출원에 더 힘써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박 회장은 "노벨상 타야 한다는 광풍이 불었다.
대학생들을 잘 가르치기만 하고 SCI(과학기술 문헌 인용색인) 논문만 내면 된다고 인식에 사로 잡혔다. 그 결과 소위 대학 내에 '논문쟁이'들만 양산하는 데 그쳤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를 두고 "소를 키울 사람은 없고 모두 연구만 하겠다는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박희재 회장 사진=서동일 기자
■ 박희재 회장 프로필
▲56세 ▲서울대 기계설계학과(학.석사) ▲영국 맨체스터대 기계공학 박사 ▲포항공과대학교 산업공학과 조교수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현) ▲에스엔유프리시젼(주) 대표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이사(현) ▲산업통상자원부 R&D 전략기획단 단장 ▲청년희망재단 이사장(현)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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