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돌라와 낭만이 있는 물의 도시 Venezia
카니발레, 비엔날레, 영화제… 일년 열두달이 '축제'
본섬 수로 따라가면 도보여행도 가능
'유럽의 응접실' 산마르코 광장 주변 산마르코성당·두칼레궁전 등 볼거리
1 118개의 섬들이 400여개의 다리로 연결된 도시 베네치아의 어스름한 저녁무렵의 풍경. 사진=박지현 기자
베네치아 거리에 어둠이 내리면 물 위로 노란별이 쏟아진다 그리고 들려오는 뱃사공의 노래 곤돌라 타고 물위를 떠다니다 만난 삶의 쉼표 인생이 낭만으로 채워지는 순간
대운하와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는 작은 운하물은 초록빛 푸른빛 은빛으로 우리는 돌고 돌았노라, 베네치아의 거리를….
나의 마음은 그대의 꿈으로 부풀고 그대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노라.
좁은 해협을 지나 근해의 파도를 막는 제방을 하나씩 하나씩 넘다보면, 어느 날 아침 우리를 데려간 배에서 뜻밖에도 그대의 모습을 보게 되리라.
과연 그대 베네치아인가. 배가 겨우 가까워지고 나면 눈앞에 그대를 나타나게 한 것이. ―프랑스 시인 앙리 드 레니에의 詩集 ‘물의 도시’ 중에서
베네치아의 고급호텔 '다니엘리'의 5층에 위치한 바 '테라짜 다니엘리'에서 바라본 베네치아 전경. 대운하 너머 맞은편에 주데카 지구가 보인다. 우측에 보이는 돔형의 건물은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다. 사진=박지현 기자
베네치아의 지도자인 도제가 머물렀던 두칼레 궁전(왼쪽)과 프리지오니 감옥(오른쪽)을 연결하는 ‘탄식의 다리’ 아래 수로로 곤돌라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박지현 기자
【 베네치아(이탈리아)=박지현 기자】 진흙 개펄과 습지에서 솟아오른 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 라틴어로 '계속해서 오라'라는 의미를 가진 베네치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도시 중 하나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섬처럼 보이는 베네치아는 118개의 섬들이 400여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는 독특한 도시다. 7~8세기 훈족의 침략으로 내륙에 살던 이탈리아 본토 사람들이 늪지인 모르비안(Morbian) 석호로 도망쳐 오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베네치아는 발이 푹푹 빠지는 늪지에 수천만개의 나무말뚝을 박아 그 위에 주춧돌을 쌓아올려 만든 세계 최초의 인공 섬이자 간척 도시다.
9세기에 도시를 이룬뒤 11세기 이후부터 15세기 말까지 황금시대를 이룩하며 '이탈리아의 진주'라고 불렸던 베네치아가 부유하게 된 원천은 동방무역을 통해서였다. 십자군에 참가한 베네치아군이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1204년 점령하면서 동로마제국과 지중해 전역의 무역권을 독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베네치아인들은 중국까지 가는 교역로를 개척했는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마르코 폴로가 활동했던 시기가 바로 이때다. 현재 베네치아에 남아있는 수많은 유적들은 이 황금기에 세워진 것들이다.
리알토 다리에서 바라본 베네치아 대운하 전경. 베네치아 본섬을 관통하는 대운하는 10세기 말 베네치아에 번영을 가져다 준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다. 사진=박지현 기자
■날개 달린 사자의 도시 베네치아, 시작은 산마르코에서
르네상스의 유적이 고스란히 현대까지 숨쉬고 있는곳, 베네치아 여행의 첫 시작은 산마르코 광장에서 시작된다. 산마르코 광장을 중심으로 마음만 먹으면 수로를 따라 본섬의 곳곳을 걸어서 여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산마르코 대성당. 사진=박지현 기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불리는 산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 본섬의 중심지로 주변에 산마르코 성당, 두칼레 궁전, 종루 등 볼거리가 모여 있다. 나폴레옹은 산마르코 광장을 '유럽의 응접실'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1년 내내 수많은 여행자와 비둘기들로 복잡한 이곳엔 오래된 카페 플로리안을 비롯해 골목마다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산마르코 광장의 남쪽엔 '날개 달린 사자'상이 높이 솟아 있다. 이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인 성 마르코(마가.Mark)를 상징한다. 이곳뿐 아니라 베네치아 곳곳에서 날개달린 사자상을 찾아볼 수 있다.
두칼레 궁전 내부
산마르코 광장의 동편에는 산마르코 대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464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 상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 중 한 명인 성마르코의 유해를 훔쳐온 후 이를 안치하기 위해 828년에 산마르코 대성당을 세웠다. 이후 976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042년부터 71년간 재건하면서 동양의 비잔틴 양식과 서양의 로마네스크 양식이 절묘하게 혼합됐다. 성당 정문 위에 있는 네 마리의 청동 말은 십자군전쟁 때 베네치아 사람들이 이스탄불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후 나폴레옹에게 뺏겨 파리의 카루젤 개선문에 세워졌다가 다시 되돌려받았다. 성당 앞의 대리석 기둥 500여개는 각각의 모양과 색이 다른데 이 역시 베네치아 사람들이 그리스와 중동지역의 신전 기둥을 가져와서 건립하면서 제각각이 됐다. 산마르코 성당을 한바퀴 휙 둘러보고 나면 성당 왼편에 푸른색 시계탑이 있고 그 위에 종을 치는 무어인 청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이 종탑 위의 무어인 상에 셰익스피어가 영감을 받아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를 지었다고 한다.
카페 플로리안. 사진=박지현 기자
산마르코 광장의 남동쪽, 산마르코 대성당을 바라보고 오른편에는 베네치아의 지도자인 도제가 머물렀던 두칼레 궁전이 있다. 15세기 고딕 양식의 궁전 정문인 포르타 델라 카르타를 지나면 전쟁의 신인 마르스와 바다의 신 넵튠 동상이 지키는 거인들의 계단이 있다. 이를 지나 대평의원실에 이르면 16세기 베네치아 출신 화가 틴토레토가 그린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 '천국'을 볼 수 있다. 대평의원실을 지나 화살표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두칼레 궁전과 프리지오니 감옥을 연결하는 '탄식의 다리'를 지나게 된다. 죄수들이 이 다리를 건너며 한숨을 쉬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장을 벗어나 두칼레 궁전 남쪽으로 나오면 베네치아 시가지를 관통하는 대운하가 관광객들을 반긴다. S자형을 이루고 있는 대운하는 총길이가 3.8㎞에 달하는데 이 대운하를 중심으로 양 옆섬과 섬 사이 작은 물길 사이로 바닷물이 계속 흐른다. 베네치아는 이 대운하를 바탕으로 10세기 말부터 해상무역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이뤘다. 베네치아의 젖줄인 대운하 옆으로 부호 상인들이 경쟁하듯 호화로운 집을 지어올렸고 시장과 은행이 들어섰다.
이 대운하에서 가장 폭이 좁은 곳에 가장 오래된 다리인 리알토 다리가 있다. '높은 제방'이라는 뜻을 가진 리알토 다리는 갯벌에 말뚝을 1만개 이상 박아 만들었다. 1592년 완공된 이 다리는 19세기까지 대운하를 가로지르는 유일한 다리였다. 이곳에 올라서면 베네치아 대운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리알토 다리 양쪽엔 가면과 유리공예.가죽공방 등 각종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다리 동쪽에는 코인 엑셀시오르 백화점 등 브랜드 거리가 조성돼 있고 서쪽에는 재래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사계절 화려한 음악이 수를 놓는 축제의 도시
스탕달이 '유럽에서 가장 즐거운 도시'라고 명명했던 베네치아는 1년 내내 공연과 전시, 축제가 끊이지 않는다. 매년 2월 중순에서 3월 초 사이에 가면축제 카니발레와 매년 5월 격년으로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과 건축전이 개최되고 7월엔 재즈 페스티벌, 9월엔 베니스 영화제가 열린다. 이를 차치하고라도 도시 곳곳에 유적과 미술관, 박물관이 가득하다. 오페라하우스나 성당이 아니더라도 산마르코 광장에 들어서면 노천 카페들이 하루종일 라이브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한다. 광장 남쪽에는 1720년 문을 연 카페 '플로리안'이 있다. 3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베네치아 사람들과 함께 호흡해온 이 카페의 원래 이름은 '승리를 자랑하는 베네치아'였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꽃'이라는 뜻의 플로리안으로 부르면서 이름이 굳어졌다. 플로리안은 과거 루소와 스탕달, 괴테, 토마스 만, 바이런, 쇼펜하우어, 모네 등 지성인들이 사랑했던 장소였다. 이들은 이곳에서 삶을 토론하고 예술의 영감을 키웠다고 하는데 그래서 한때 플로리안은 '근대 지성의 성지'라고 불리기도 했다. 플로리안 카페에 들어서면 하얀 재킷을 입은 웨이터가 카푸치노 커피가 담긴 잔을 은쟁반 위에 올려서 서빙하는 모습이 일종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다.
베네치아 하면 떠오르는 곤돌라를 타면 곤돌리에가 불러주는 노래도 들을 수 있다. 이탈리어로 '흔들리다'라는 뜻을 가진 곤돌라는 고대의 배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16세기에는 수가 1만척에 달할 정도로 베네치아의 주요 교통수단이었으며 한때 부유층의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곤돌라에 지붕을 달고 여러 색깔로 화려하게 치장을 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사회문제가 야기되면서 베네치아 시는 지붕을 없앤 검은색으로 곤돌라를 통일했다고 한다. 곤돌라를 30분 타는 데 드는 비용은 80유로 정도다.
축제에는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바다 위 도시 베네치아는 연안에서 잡아들인 각종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다. 작은 새우와 생선류를 한데 모아 튀긴 음식과 바게뜨 위에 해산물을 올린 핑거푸드 '치케티(Cicheti)' 등이 유명하다. 여기에 칵테일 '스프리츠'와 스파클링 와인 프로세코를 곁들이면 좋다.
무리노 유리 공예품. 사진=박지현 기자
■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섬 어촌마을 부라노섬도 있어요
베네치아 본섬에서 한발 벗어나 새로운 정취를 느껴보고 싶다면 인근 무라노섬과 부라노섬을 찾아가보는 것도 좋다. 베니스 본섬 북쪽 폰다멘테 노베 정류장에서 수상버스인 바포레토를 타고 10여분 북쪽로 가다보면 '베네치아 글라스' 원산지로 유명한 무라노 섬에 도착한다. 10세기 초, 베네치아 본섬에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불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유리공예가들이 집단으로 이주해 스스로 고립된 채 유리공예를 지켰다고 한다. 이 같은 역사에 걸맞게 무라노 섬 전체에는 유리공장과 상가들이 가득하다. 유리공예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유리박물관도 자리잡고 있다.
무라노섬을 벗어나 북동쪽으로 바포레토를 타고 30여분 더 가다보면 형형색색의 어촌마을 부라노 섬이 나온다.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 것이 생업인 어부들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 자신의 집을 찾기 쉽도록 집마다 각각 독특한 색을 칠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파스텔 빛 마을의 풍경을 만들었다. 부라노를 대표하는 공예품은 레이스로 16세기부터 만들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쇠퇴 기로에 놓여 있다고 한다.
부라노 섬 집들은 문 앞에 커튼을 달아놓은 것이 특징이다. 부라노 섬은 가수 아이유가 지난 2012년 내놓은 음원 '하루 끝'의 뮤비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베네치아 본섬의 남쪽에 위치한 리도섬은 매년 9월 베니스영화제가 열리는 곳으로 해안가를 따라 리조트가 위치해 있어 해수욕과 일광욕이 가능하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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