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슈퍼 히어로 격인 ‘원더우먼’. 그러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해당 스토리는 성 상품화, 미약한 활약, 남성 히어로들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치며 어느새 ‘히어로’의 면모는 옅어진 채, 아름다운 ‘여성성’만이 남았다.
하지만 패티 젠킨스 손에서 다시 부활한 영화 ‘원더우먼’ 덕에 DC코믹스의 체면이 제대로 세워질 전망이다. 여성의 손끝에서 지켜진 세상이 펼쳐지는 스크린 속은 그야말로 황홀경에 빠지기에 충분하다. 할리우드 히어로 무비의 진정한 히어로가 등장한 것이다.
이야기는 1918년으로 돌아가 원더우먼의 전사로 시작한다. 제우스의 손에서 탄생한 아름다운 섬, 데미스키라 왕국은 아마존 여성 전사들이 수호하는 다른 차원의 공간이다. 이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다이애나(갤 가돗 분)은 누구보다도 맑고 정의로우며 강인한 전사를 꿈꾼다.
그러나 아마존의 제왕이자 다이애나의 어머니인 히폴리타(코니 닐슨 분)는 다이애나가 전투에 임하길 원치 않으며 안전한 세계 속에 머물기 원하지만 다이애나는 자신의 이모이자 아마존 최고의 전사인 안티오페 장군(로빈 라이트 분)을 잇고자 한다. 이후 그 누구보다도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가던 다이애나는 자신이 피할 수 없는 최강 전사의 운명임을 직감한다. 때마침 섬에 불시착한 조종사 트레버 대위(크리스 파인 분)을 통해 인간 세상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신들이 주신 능력으로 세상을 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깨달은 다이애나는 전쟁의 근원지인 전쟁의 신, 아레스를 파멸시키겠다는 확신을 품고 낙원과 같은 섬을 뛰쳐나와 지옥 같은 1차 세계 대전 한 가운데로 뛰어든다.
다이애나 공주에서 전사로 변모한 원더우먼은 그 어떤 히어로보다도 진취적이다. ‘인간은 선하다’는 단단한 믿음과 신념 아래에 남자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향한다. 이제껏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이야기가 여성으로 전환되어 더욱 섬세하고 강력하게 태어난 것이다. 전장으로 뛰어드는 그녀의 모습은 위용이 가득하다. 이 과정에서 고전미는 갤 가돗의 우아함을 통해 세련됨으로 탈바꿈되었다.
화려한 연출도 단연 돋보인다. 데미스키라 속 푸르고 빛나는 미장센이 원더우먼이 지닌 신념과 맞물려 아름답게 그려진다. 특히 가장 압도적인 시퀀스는 아마존 여성들이 독일군의 총알에 맞서 화살과 칼로 전투를 벌이는 부분이다. 수많은 여성들이 활과 칼을 든 채, 두려움 하나 없이 적을 향해 질주하는 장관은 슬로우모션 연출까지 더해져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또한 후반부에 그려지는 전쟁의 신 아레스와의 ‘끝판왕’ 전투 장면은 묵직함과 어마어마한 파괴력으로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원더우먼’이 완전한 히어로 무비로 거듭날 수 있던 건, 꼼꼼하고 빈틈없는 서사가 이어지기 때문. 제1차 세계대전 속 전쟁과 그 안에서 빛나는 히어로의 면모를 자연스레 섞어놓으며 현실로부터 발현된 갈등과 신념의 충돌 등을 통해 이야기에 제대로 된 힘을 부여한다. 최강 빌런인 아레스의 악행에도 심도 깊은 사유를 설정해 작품의 퀄리티를 높인다.
5대 무기의 등장도 상당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진실을 말하게 하는 헤스티아의 올가미, 총알을 튕겨내는 건틀렛, 부러지지 않는 검 갓킬러, 무적의 방재 그리고 원더우먼의 상징인 헤어밴드까지. 이를 이용해 갖가지의 방법으로 펼쳐지는 액션은 휘황찬란한 볼거리까지 함께 선사한다.
원더우먼이 전장에서 전투를 벌일 때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 역시 환상적이다. 다이애나 캐릭터를 완벽히 관통하고 화면을 감싸 안은 오케스트라는 웅장한 색채와 유연한 질감으로 ‘원더우먼’의 세계 속으로의 몰입을 성공적으로 이끈다.
데미스키라의 공주 다이애나와 원더우먼을 조화롭게 펼쳐낸 갤 가돗은 이 작품을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인간의 세상으로 넘어와 다소 순진하고 엉뚱하지만 굳은 정의와 신념을 지닌 선(善)의 전사 모습부터 사랑에 빠진 여성, 파워풀한 액션을 빠르고 강하게 소화하며 히어로 주인공으로써의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선다.
원더우먼의 곁에서 조력자이자 멜로의 주인공으로 충분한 역할을 소화해낸 크리스 파인 역시 매력적이다. 언제나 그녀를 지지할뿐더러, 인간이 느끼기에 다소 허무맹랑하게 다가올 수 있는 신화가 기반인 그녀의 신념을 결단코 무시하거나 우습게보지 않는다.
그와 함께 무리지어 다니는 위장 전문가 사이머, 스코틀랜드 저격수 찰리, 미국 원주민 밀수꾼 치프도 실없는 농담과 유머로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남자들을 여러 방면으로 풍자하고 가볍게 조롱하는 장면도 곳곳에 분포한 유머 포인트로 작용한다.
결론적으로, ‘원더우먼’의 선두는 단연 여성이다.
특히 여성을 비롯해 인디언 등 이 사회에서 약자로 분류되는 자들이 함께 힘을 모아 지키는 스크린 속 세상은 쾌감을 선물하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원더우먼의 무너지지 않는 신념은 현 사회의 올바른 순환을 바라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았다. 기존 히어로 무비들이 지닌 파급력에 매력적인 캐릭터 활용까지 더해진 ‘원더우먼’ 덕에 11월에 개봉할 ‘저스티스 리그’를 향한 기대감도 커지는 건 당연한 수순일 듯 하다. 31일 개봉 예정.
/9009055@naver.com fn스타 이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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