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시작과 종말을 이야기하는 래퍼라니. 이그니토의 음악은 무겁고 거부감이 드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노래를 이전보다 더 자주 마주해야 한다.
이그니토는 최근 두 번째 정규 앨범 ‘가이아(Gaia)’를 발표했다. 이번 앨범에는 ‘제네시스(Genesis)’를 비롯해 ‘불모지대’ ‘메탈 라이징(Metal Rising)’, ‘선(Sun)’ ‘마리아(Maria)’ 등 총 10트랙이 수록됐다. ‘문(Moon)’과 ‘플라워(Flower)’가 더블 타이틀로 선정됐으며 래퍼 화타, 헝거 노마, 일탈, 제이통 등이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가이아’는 본래 2012년부터 준비하고 있었으나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아 차일피일 미뤄졌다. 이그니토와 함께 작업을 하던 컨트릭스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작고했기 때문이다. 이그니토는 그의 작업물에 최대한 손을 대지 않는 선에서 앨범을 준비했고 2017년 중순이 되어서야 공개했다.
이그니토는 대중적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하지만 2017년에는 Mnet 예능프로그램 ‘쇼미더머니6’ 출연이라는 파격적인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자신의 음악에 집중하던 이그니토가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컨트릭스가 남기고 간 음악을 많은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Q. 2006년 ‘데몰리시’ 이후 오랜만에 발매한 정규다.
“너무 오래 걸렸다는 데에 대한 죄책감이 커요. 그 과정에서 겪었던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제게 있던 굉장히 슬픈 마음이 많이 담겨있어요. 반응이 정말 갈리더라고요. ‘한결같고 똑같아서 변화가 없다’는 반응도 있고, ‘1집이라는 다르다’는 것도 있고 그래서 재밌었어요. 둘 다 맞는 말이긴 해요.”
Q. ‘가이아’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나
“앨범 소개에는 ‘생성과 소멸 순환’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소멸 그 자체를 다루고 싶었어요. 순환은 아직까지는 제가 잘 알지 못하고, 죽음과 소멸에 집중을 했어요. 모든 노래에 죽음과 관련된 키워드가 들어가요. 첫 곡은 생성이지만 이후부터는 소멸하고 무가 되는 과정을 담았어요.”
Q. 타이틀곡 중 하나인 ‘플라워’에 대해 소개해달라
“‘플라워’는 사실 앨범 큰 주제와는 어긋나있어요. 저는 앨범, 저의 곡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지 않으려 노력하거든요. 1인칭도 쓰지 않으려 했어요. 이 노래에는 개인적인 감정이입이 많이 담겼어요. 작가로서,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외로움을 꽃에 빗댔어요. 꽃은 누가 바라보지 않아도 피워났다가, 누구도 모르게 지잖아요. 그런 꽃의 비극적 성향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어요.”
Q. 2014년에 ‘블랙(Black)’이라는 볼륨이 큰 앨범을 냈지만 정규 앨범이 아니었다.
“제 아티스트적인 철학으로 봤을 때, 정규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많이 어긋나 있었어요. 하지만 그 앨범을 낸것에 대해 후회하진 않아요. 많은 래퍼들이 항상 힙합신에 관한 이야기, 장르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제 이름이 들어가 있는 정규앨범에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싶진 않았어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할 창구가 필요했고 그 앨범을 낸 거에요. 일종의 배설이었다고 생각해요.”
Q. ‘쇼미더머니’ 출연은 메인스트림으로 나가겠다는 포부인가.
“저는 활동 범위를 항상 언더그라운드로 한정해뒀어요. 시간이 흐르고 언더그라운드라는 어려운 환경을 견뎌냈죠. 이제는 알려지려면 두 가지 방법이에요. 음악을 친화적으로 바꾸거나, 활동 범위를 바꿔야 했어요. 음악은 바꾸기 싫고, 활동 반경은 쉽게 변하지 않아요. 그래서 ‘쇼미더머니’를 선택했어요. 대중은 아직 제 음악을 접해보지 않았을 거니까.”
Q. 분명 많은 고민이 필요한 선택이었다.
“‘가이아’ 발표 때문에 ‘쇼미더머니’ 출연을 결정하게 된 거 같아요. 이 앨범은 역시 나를 좋아하는, 언더그라운드를 좋아하는 몇몇 분들만 찾아서 듣게 될 거라는 생각이요.”
Q. ‘가이아’를 대중이 들었으면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쇼미더머니’ 본선에서 컨트릭스의 노래로 공연을 하고 싶어요. 그를 좀 알려주고 싶어요. 개인적인 죄책감을 덜기 위한 행위일 수 있겠다고 생각이 되더라고요. 그렇지만, 이건 제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에요.”
Q. 컨트릭스라는 뮤지션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
“2집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컨트릭스라는 친구에게 메일이 왔어요. ‘내 곡으로 꼭 작업을 해줬으면 한다’고요. 들어보니 그 친구 역시 하드코어 힙합에 굉장히 심취해있고 ‘이건 내가 2집을 내기 위해 기다린 비트’라고 생각했어요. 2012년 초에 비트 선택이 완료됐지만 제가 대학원을 병행하면서 진척이 잘 되지 않았어요. 신인이라 그런지 이그니토 2집으로 데뷔하길 꿈꿨는데 그게 늦어졌고 어느 날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Q.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정말 건강하다가 하루아침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정말 놀랐고 제 2집 작업도 중지됐어요. 그 친구의 부모님께 연락을 드려서 곡을 어떻게 할지 이야기했고, 발매해줬으면 한다고 들었어요. 싸이코반이라는 친구가 도와줘서 음원을 회수했죠.”
Q. ‘가이아’에 컨트릭스를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가.
“보컬이 아닌 모든 음악은 다 컨트릭스의 것이에요. 편곡을 하는 게 어떨지, 악기 세션을 추가하는 게 어떨지 고민했는데 결국에는 그냥 그대로 두고 싶었어요. 만약 컨트릭스가 살아있었다면 직접 편곡을 했겠지만요. 원래 만들어둔 그 구성 그대로 다 썼어요. 그래서 인트로와 아웃트로가 없어요. 손을 최대한 안대고 싶었고, 그래서 최대한 그대로 활용하려 노력했어요.”
Q. ‘쇼미더머니’에 도전해야 할 이유는 확실해졌다. 각오가 있다면?
“사람들은 제가 ‘쇼미더머니’ 경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너무 어두워서 금방 떨어질 거라고 예언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가장 베이직한 힙합 음악 안에서도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래퍼라고 자부해요. 그래서 음악적인 색을 배제해도, 한명의 래퍼로서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봐요.”
tissue@fnnews.com fn스타 유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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