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이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전쟁영화이지만 거대한 폭격은 없다.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빗발치는 총성도 연속되지 않는다. 영화 ‘덩케르크’의 모든 것이 기존 전쟁 영화가 지닌 공식을 피해가지만, 그 어떤 작품보다도 생존 의지가 가득한 전쟁 현장과 가장 맞닿아있다. 놀란 감독만이 가진 특별한 창조성이 새로운 수작을 탄생시켰다.
영화는 1940년 2차 세계 대전 당시로 돌아가며 시작한다. 영국 해외 파견군을 비롯해 프랑스, 벨기에, 캐나다 부대까지 덩케르크 해변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40만여 명의 군인들은 조국이 42km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닿을 수 없다. 6m의 조수가 거대한 영국 구축함이 군인들을 구출하러 오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
패배의 문턱과 무기력함에 굴복하려할 때, 조그맣게 남은 희망이 환희로 물드는 순간이 찾아온다. 민간 선박들이 영국의 남해안으로부터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항해를 나선 것이다. 상공과 바다에는 폭탄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민간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의를 행한다.
이는 세계적으로 의미 있는 실화인 ‘다이나모 작전’을 배경으로 한다. 극적인 결말을 향해 달려가지만 사실 스토리라인으로만 보면 단순한 전개에 가깝다. 그렇기에 스펙터클함과 드라마적인 서사를 추가해 그 시절의 위대함을 복기할 수 있는 감동과 희망 등 보통의 전쟁영화가 갖춘 미덕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지만 놀란 감독은 역사가 주는 울림을 믿었다. 대신, 자신의 장기인 독창적인 내러티브 설계로 영화적인 서스펜스를 강화했다.
놀란 감독은 육지, 바다, 하늘을 통해 서로 다른 시간의 척도를 활용한다. 해변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을 각각의 스토리라인으로 구현하며 시제를 살짝 비틀었다.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시제 속에서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오히려 건조하게 다루며 절절한 사족 없이 생존을 위한 처절함에 집중해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 한다.
마침내 개별적인 시간들이 하나로 중첩되는 순간은 너무나 유연해 놀라움을 자아낸다. 여러 갈래로 나뉜 서사적 공간 안에 존재하는 경험들을 하나의 인간적인 이야기로 창조했고 이러한 역동적인 교차는 관객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보트 위에서 항해하고 스핏파이어 조종석에서의 경험을 직접 느끼게 하며 관객을 전쟁 현장으로 데려다 놓겠다는 놀란 감독의 단단한 포부는 제대로 관통한 듯하다. 놀란 감독은 65mm와 IMAX카메라 사용을 늘려 커다란 포맷으로 확장시켰다.
1940년형으로 복원한 잔교 제작, 당시 만들어진 십여 척의 선박을 구해 제작한 실제 선박, 총 3대의 스핏파이어 전투기 확보까지. 역사 재현에 힘쓴 덕에 생생한 체험을 그려냈다.
더불어 ‘덩케르크’는 무성영화에 가까울 정도로 대사가 없지만 그 여백은 음악 감독 한스 짐머가 온전히 책임진다.
단순히 음악의 선율을 연주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시계 초침 소리, 선박 엔진 소리 등 다양한 사운드와 음악을 결합시켜 사건의 흐름을 강조한다
‘인터스텔라’ ‘인셉션’ ‘다크나이트’ 등에서 선보인 화려한 서사 구조와 무한한 상상력을 기대한 관객들이라면 아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묵직하게 전달한 놀란 감독의 휴머니즘은 강하다. 화려한 스펙터클과 사건 나열 대신 희생과 인내심, 그들의 화합의 메시지를 올곧이, 담담하게 전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오는 7월 20일 개봉.
/9009055_star@fnnews.com fn스타 이예은 기자 사진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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