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 달라스(South Dallas)의 풍경은 살벌하다. 회색빛 도시의 분위기는 삭막함을 넘어섰다. 미국의 대부분 도시는 북쪽의 백인 주거지와 남쪽의 흑인 주거지로 나누어진다. 그 경계에 흑인 민권운동가 마르틴 루터 거리가 있다. 사우스 달라스는 흑인 거주지역이다.
사우스 달라스에는 다수의 한인들이 흑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다. 그들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에 들어서면 주인과 고객 사이를 가로막은 두터운 방판 유리가 눈에 띈다. 느닷없이 강도로 돌변하는 고객들의 총알을 막아내기 위한 용도다.
사우스 달라스에도 이따금 경찰차가 뜬다. 그 때마다 진풍경이 벌어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흑인들은 숨기에 바쁘다. 꼭 무슨 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다. 조건반사적으로 몸을 피한다. 백인 경찰에 의해 가해질지도 모를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다.
지난 25일(한국시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브루스 맥스웰은 경기 전 미국 국가연주 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미식축구(NFL)와 미 프로농구(NBA)에 이어 메이저리그 선수로는 최초로 소위 ‘무릎 시위’에 동참한 것이다.
‘무릎 시위’는 NFL 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 콜린 캐퍼닉에 의해 비롯됐다. 그는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유색 인종을 차별하는 나라를 위해서는 일어나 경의를 표시하지 않겠다”며 한 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무릎 시위’는 NFL에 이어 NBA로 확산되며 많은 동반자들을 이끌어냈다. 불 난 집에 부채질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에 동참한 선수들을 ‘망할 놈들(sons of bitches)’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NFL과 NBA 선수들이 발끈했다. 르브론 제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을 ‘건달(bum)'이라고 부르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평소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 유지해온 마이클 조던도 가만있지 않았다.
샬롯 호네츠의 구단주이기도 한 조던은 “이 나라(미국)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 가운데 하나는 표현의 자유”라며 ‘무릎 시위’를 벌이는 선수들 편을 거들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신발 판매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는 조던은 정치적 모호성으로 비난당할 때 마다 “공화당원들도 신발을 사주니까”라는 농담으로 피해왔다.
NFL의 흑인선수 비율은 68%이다. NBA는 이보다 많은 75%나 된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흑인선수 비율은 8.3%에 그친다. 반면 백인선수의 비율은 59%에 이른다. 다른 곳과 달리 메이저리그 클럽하우스에 컨트리 뮤직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시카고 컵스의 조 매든 감독은 ‘무릎 시위’ 현상에 대해 “미국 국가나 대통령에 대해 존경을 나타내지 않는 행위는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다음 날 “그 선수들을 이해한다”며 슬며시 후퇴했다. 야구는 농구나 미식축구와 달리 미국인의 ‘국민 스포츠(national past time)'다. ‘무릎 시위’가 메이저리그 선수들 사이에서도 유행될지 궁금하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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