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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청년들은 환란 그늘에서 우는데

진보 10년·보수 10년 차이없어.. 현 정부 들어서도 취업난 악화
이분법 벗어나 대안 경쟁할 때

[구본영 칼럼] 청년들은 환란 그늘에서 우는데

우리네 청년들 사이에 '헬조선'이니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니 하는 비관적인 말이 횡행한 지 오래다. 최근 인터넷에서 '자살각'이란 신조어까지 접했다. '자살할 만큼 안 좋은 처지'라는 뜻이라니 섬뜩했다.

근대사에서 지금처럼 청년들이 희망을 잃었던 때가 또 있었을까. 필자가 속한 베이비붐 세대는 고속 경제성장기에 젊은 시절을 보냈으니 그렇다 치자. 주린 배를 움켜쥐고 보릿고개를 넘으며 한강의 기적을 일군 부모 세대도 요즘처럼 절망하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외환위기 20주년이다. 1997년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 거론될 무렵 실직 위기인 한 시중은행 직원들의 사연을 담은 '눈물의 비디오'가 생각난다. 그때는 일자리에서 밀려난 이들이 울었다. 하지만 작금엔 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청년들이 깊은 한숨을 쉬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환란이 남긴 가장 큰 상흔은 중산층 붕괴와 만성적 청년실업이다. 역대 어느 정부도 이런 추세를 되돌리진 못했다. 외환위기 20년 만에 청년실업률은 5.8%에서 9.8%로 2배 가까이 치솟았다. 문재인정부도 청년 취업난 해소에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얼마 전 발표된 9월 고용동향을 보라. 청년층(15~29세) 체감실업률을 나타내는 청년층 고용보조지표가 21.5%로 2015년 이후 최고치다.

통계청에 따르면 근년 들어 70~80대 자살률은 낮아지는 추세란다. 하지만 10대와 20대는 여전하다고 한다. 요즈음 청년들이 당면한 절망의 심연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구체적으로 말해 일자리를 얻지 못한 좌절감이 가라앉아 있을 법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심각성을 뼈저리게 인식하고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청와대가 일자리 상황판까지 만들어 독려하고 있지만 내놓는 정책마다 헛발질이니 말이다.

무모한 탈원전 드라이브가 단적인 사례다. 원전이 100% 안전할 리는 없다. 그래서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는 것을 탓할 순 없다. 하지만 원전을 도입한 지난 60년간 단 한 번 인명사고도 없었는데 탈원전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다면 문제다. 이제 수십조원의 외화 수입과 수만명의 양질의 일자리를 기약하는 한국형 3세대 원전 기술이 국내외 시장에서 꽃피려는 마당에 싹부터 자르려 하니 말이다.

더욱이 바야흐로 융합이 중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빌 게이츠와 같은 IT(정보통신) 구루가 신재생과 원자력의 합리적 조합을 꿈꾸는 까닭이다. 에너지 믹스뿐 아니라 다른 정책에서도 선악 이분법은 곤란하다. 예컨대 최저임금 인상 필요성을 누가 부인하겠나. 다만 청년들이 그나마의 일자리에서 밀려나지 않게 하려면 직종별 산입범위를 신축적으로 정해야 하지 않겠나.

돌이켜보면 환란 이후 진보.보수 정권이 10년씩 집권했다. 그러나 청년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데는 모두 무능했다. 우리보다 먼저 경제침체로 20년을 잃어버린 일본의 오늘을 보라. 성장과 복지의 합리적 정책 조합으로 청년 구직난 대신 기업이 구인난을 겪고 있지 않나. 정책 대안 경쟁은커녕 전.전 정권도 모자라 전.전.전 대통령까지 불러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여야가 한심해 보인다.


기성세대로서 청년들에게 각자도생을 권하는 '꼰대'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하지만 불우했던 젊은 날 철강왕 카네기도 "밀물은 반드시 들어오리라. 그날 다시 바다로 나가리라고"고 수없이 되뇌었다. 앞길이 캄캄해도 진취적 도전은 늘 청년의 몫임을 강조하고 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