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군과 해병대의 초석을 다진 루시 대령의 흉상이 7일 해군사관학교에 세워졌다./사진=해군
한국 해군과 해병대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고(故) 마이클 루시(1912∼1998) 미 해군 대령의 흉상이 경남 창원 해군사관학교에 세워졌다.
해군은 7일 해군사관학교장 정안호 소장 주관으로 해사 학술정보원에서 마이클 루시 대령 흉상 제막식을 거행했다고 밝혔다. 제막식에는 래드 쿠퍼 주한 미 해군 사령관을 포함한 한미 해군 장병 100여명이 참석했다.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최연소 구축함장으로 참전했던 루시 대령은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9일부터 1952년 5월 31일까지 한국 해군 고문단장의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미극동해군사령부는 한국 해군을 북한군 정보수집과 연해작전을 수행하는 유엔군 예하 기동전대로 조직하면서 루시 대령은 한국 해군 사령관을 겸직하기도 했다.
루시 대령은 1950년 8월 중순 경북 포항에서 국군 3사단이 북한군에 포위돼 해상으로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미국 상륙함 4척으로 해상철수작전을 지원했다.
루시 대령의 활약으로 포항 독석리 해안에서 3사단 병력 9000여명과 경찰 1200여명, 민간인 1000여명, 차량 100여대가 무사히 철수할 수 있었다.
그는 한국 해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펼친 인천 도서 탈환작전과 북한군 첩보 수집작전인 '엑스-레이'(X-Ray) 작전도 성공적으로 지휘했다.
뿐만 아니라 루시 대령은 한국 해군의 전력증강에도 크게 기여했다.
6·25 전쟁 발발 당시 450t급 백두산함을 비롯해 36척의 함정을 보유했던 한국 해군은 루시 대령의 노력으로, 미국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2300t급 호위함(PF), 어뢰정(PT), 구잠함(PC), 구잠정(PCS) 등 전투함과 장비를 지원받아 30척의 함정을 늘릴수 있었다.
루시 대령은 한국 해군의 전력증강 뿐만 아니라 전쟁고아와 부상장병 구호사업 등 인도적 활동과 한국 해군에 함정 운용 기술전수에도 힘썼다.
이런 공로를 인정해 한국 정부는 루시 대령에게 태극무공훈장과 공로훈장을 수여했고, 미국 정부로부터도 금성훈장 등 다수의 훈장을 받았다.
1952년 5월 31일 한국을 떠난 루시 대령은 1960년 전역 당시 장성으로 명예진급해 전역하는 방안을 제안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 계급으로 실무에서 일할 수 없다면 진급할 수 없다"며 거절했하고. 전역 후 고향에서 공직에 종사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임기를 마치고 한국을 떠난 루시 대령은 미 해군 군수지원함장, 구축함 전대장, 해상수송지원단장 등을 지내고 1960년 전역했다.
captinm@fnnews.com 문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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