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비관론자에서 밤무대의 황태자로’
초대 국립생태원장으로 살았던 3년 2개월
일기처럼 솔직하게 담은 ‘경영 십계명’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 최재천/메디치미디어
"일반적으로 다양성이 높은 생태계가 더 탁월한 저항력과 회복력을 나타낸다. 구성이 다양하면 구성원들 간의 관계가 복잡하게 형성돼 웬만한 충격에는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64)가 첫 경영서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메디치미디어)를 냈다. 한 평생 생태학자로 살아온 최 교수가 국립생태원을 한국 최고의 조직으로 이끈 비결이 담겼다.
최 교수는 13일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국립생태원장 임기 3년 2개월 동안 하루에 3~5분을 쉬어본 기억이 없다. 끊임없이 움직였고, 뭔가를 했다. 참 힘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이쯤하니까 이 결과가 나오더라'는 경험을 세상에 내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최 교수는 이른바 '스타 과학자'다.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의 창시자로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개념을 국내로 들여오며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왔다. 1989년 미국곤충학회 젊은과학자상을 비롯해 국제환경상,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 등을 수상했고, 저서로는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다윈 지능' 등 다수가 있지만 경영서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이력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13년 10월부터 3년 2개월간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을 역임한 것. 평생 과학자로, 대학교수로 살아오면서 귀찮음을 이유로 대학의 보직까지 피해왔던 그가 국립생태원이라는 공기관의 '초대 원장'을 맡기까지는 고민도 많았다. "대학에서도 온갖 보직을 회피하며 살았고 행정직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었다"던 그이지만, 설립 이전인 2008년부터 국립생태원 밑그림 그리기에 참여해왔던 인연으로 "국립생태원 안착에 필요한 적임자"라는 권유를 끝내 뿌리치지 못했다.
그가 재임할 당시 국립생태원은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환경부에서 내려준 연간 관람객 30만명 유치라는 목표를 300% 이상 초과 달성하며 매년 100만명을 충남 서천으로 불러 모았다. 또 장기 목표인 세계적 생태연구소로 가는 기초를 충실히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숲은 식물과 동물이 한데 어울려 사는 곳이다. 나는 그동안 경영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여러 기업에 불려가 '자연에서 배운다' '개미에게 배우는 경영 지혜'라는 제목으로 여러 차례 강연도 했다. 경영을 잘 알아서 한 경영은 아니지만, 경영 일선에 있는 분들에게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어떤 혜안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했던 강연이었다. 이 책은 그러던 내가 직접 국립생태원 경영을 해보고 얻은 겸허한 소감을 적은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책에는 그가 한평생 연구했던 생태학과 통섭을 삶과 일에 적용한 지혜로 가득하다. CEO가 된 과학자인 그가 국립생태원 재직 기간 동안 어떻게 조직을 경영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담겼다. 경영서라고 하지만 마치 매일매일 쓰는 일기처럼 솔직하고 재치 있는 체험담이 그득하다. 예를 들어 오후 6시 이후면 가정에 충실하며 회식 등 이른바 '밤무대'를 경시했던 그가 '밤무대의 황태자'로 거듭났다. 최 교수는 간담회 자리에서도 "그동안 우리나라 남성들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원인이 '밤무대'라며 회식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해왔는데, 그랬던 내가 서천에서는 매일 저녁 외부 손님을 접대하거나 회식으로 '밤무대의 황태자'가 됐다"며 웃었다.
책의 부제인 '경영 십계명'으로 △결정은 신중하게, 행동은 신속하게 △소통은 삶의 업보다 △전체와 부분을 모두 살핀다 △절대로 직원을 꾸짖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개인의 행복이 먼저다 등 개성의 시대에 공존하는 지혜와 경험담을 담았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고 한다.
인사 관련 개인평가제도를 없애지 못한 것이 그것이다. 그는 "치열한 경쟁에 있는 일반 기업은 논외로하고, 예산을 받아 운영하는 공기업과 공기관의 경우 근무평가제는 오히려 '악'"이라며 "그 제도가 존재하는 한 제대로 된 협업은 이뤄질 수 없다. 임기 끝내고 가장 아쉬운 것은 그 제도를 손보지 못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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