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이나 면접을 앞두고 코끝에 필러를 넣었다가 피부가 괴사돼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필러를 녹이는 용해주사도 맞아보고 메스로 걷어내는 제거수술도 받아보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힘들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시판 승인을 받은 필러라도 과량 주입하거나, 적소에 위치하지 못하거나, 체질상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난 경우에도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심영기 연세에스병원장은 16일 "이마, 코 주위, 뺨 등에 필러를 맞았다가 며칠 또는 몇 주가 지나 포도송이처럼 붉어지는 염증을 보이다가 더 심해져 노란 고름이 잡히는 환자가 종종 찾아온다"며 "대체로 의사가 성형효과를 높이기 위해 '필러 알레르기 체질' 환자에게 좁은 공간에 무리하게 과도한 양의 필러를 주입하면 혈액순환이 안 돼 급성 피부 괴사와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필러 부작용이 감지되면 하루라도 빨리 병원을 찾아 필러의 주성분인 히알루론산을 분해하는 주사를 맞아 조기에 증상 악화를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글로벌 필러 제조사들은 필러주사로 인한 부작용이 1% 미만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이보다는 높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일부 병의원은 환자에게 쓰고 남은 필러를 비용 절감 차원에서 다른 환자에게 주사하고, 환자가 원하는 또는 고가 유명 브랜드의 필러 대신 환자 모르게 저가의 다른 브랜드로 대체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의사가 새 제품을 개봉해 쓰는지, 필러의 브랜드는 뭔지 확인해보고 시술받는 게 필요하다.
일부 미용실과 피부관리실, 간호사 등 병원 출신의 출장 성형업자의 경우 불법 이물질을 사용하면서 값이 싸다는 점을 들어 유혹한다. 하지만 의료기관의 필러 부작용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작용이 심각해진다.
1960년대 전후 식용유나 양초 원료인 파라핀으로 시작된 불법 이물질의 역사는 1990년 전후 공업용 실리콘 오일, 1990년대 중반 이후엔 콜라겐 사칭 이물질, 2000년대 이후 부작용이 극심한 중국제 아크릴 성분 필러로 바통을 넘기면서 근절되지 않고 있다.
불법 업자가 불법 이물질을 성형 목적으로 주사하는 이른 바 '야매 성형'은 주사 부위에 이물감, 피부 경화·염증·괴사, 통증, 주변조직 유착 등을 유발한다. 이로 인해 얼굴의 색깔, 외양, 표정 등이 심각하게 망가져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에 시달린다.
이물질을 주로 주사하는 부위는 얼굴 중 볼, 팔자주름, 이마, 귓볼 부위다. 심지어 유방, 음경, 질 등에도 맞는다. 주사 직후에는 전혀 이물감이 없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다.
하지만 이물질 부작용은 짧게는 3개월 만에, 길게는 수 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난다. 이물질은 정상조직 세포 사이로 퍼져서 세포간 소통을 방해하고 과도한 면역반응을 일으켜 지속적인 염증, 섬유화 반응, 주위 조직과의 유착을 유발한다.
인간 면역체계는 이물질이 침입하면 림프구가 신호를 보내 대식세포로 하여금 이를 탐식해 분해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이물질은 분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분자량이 크고 양도 많아서 몸에 잔류하게 되고 주위에 만성염증을 유발한다. 이물질 주위엔 섬유아세포가 섬유조직을 생성해 몸을 보호하는 반응을 보이는데 이는 주위조직이 단단해지는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흔히 이물질은 수술로 제거하는 게 최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영기 연세에스병원장은 "이물질 및 흉터 제거 전문을 표방하는 상당수 병원이 메스로 이물질을 걷어내는데 주력하고 있지만 실제 이런 치료를 받고 주위 신경이 손상되거나 마비되고, 또는 주변조직 유착이 더 심해져 얼굴이 일그러지고 표면이 울퉁불퉁해지며 표정을 지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생겨 병원을 찾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물질 해결법에 가장 먼저 시도되는 스테로이드 주사는 일시적으로 호전돼 보일 수 있으나 피부위축, 피부함몰, 모세혈관 확장이 뒤따른다. 장기간 맞으면 생리불순 등 전신적 스테로이드 중독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물질 제거수술은 이물질이 한 군데 모여 있지 않고 조직 속에 퍼져 있는 특성상 완벽하게 제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수술 후 상처가 잘 낫지 않고 피부가 오히려 심하게 울퉁불퉁해지고 신경유착이 일어나 신경마비, 안면표정근 작동이상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표정이 일그러지고 피부궤양 같은 심한 합병증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심 병원장은 3종 치료법의 치료법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 이물질을 둘러싸고 있는 섬유조직을 스테로이드가 아닌 섬유유연제를 주사해 부드럽게 한다. 섬유유연제는 줄기세포 성장을 돕기도 하는 성분이다. 둘째, 특수 전기 치료기로 전기자극을 가해 대식세포가 탐식작용을 통해 이물질을 잘게 부수어 체외로 배출시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셋째, 줄기세포 추출물을 주사해 줄기세포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이물질로 인해 단단해진 섬유조직을 녹이도록 하는 면역력 강화법이다.
심영기 병원장은 "이물질을 가시적으로 제거한다고 보기보다는 이물질의 잔존을 인정하면서 삶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유도하는 게 3가지 치료법의 핵심"이라며 "이물질 주위조직을 부드럽게 하고, 변형된 조직의 비정상적인 외형을 최대한 정상에 가깝게 돌려놓고, 이물질의 점진적인 배출을 통해 주위조직과의 항체항원 반응을 최소화하는 게 치료의 주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필러 등 이물질을 완벽하게 제거하면 좋겠지만 실제 제거가 불가능하다"며 "시술 직후 이물질 주위조직이 부드러워지는 것만으로도 환자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치료 기간은 이물질의 주입량과 총 주입기간에 비례하게 된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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