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 없는 고구마 스토리, 이영훈의 명곡들이 살렸네
"삶은 난제였으나, 죽음은 축제로."
생의 마지막 순간. 혹자의 말로는 지나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고 한다. 짧은 시간 안에 펼쳐지는 희로애락. 어떤 것은 추억이 되었고 어떤 것은 미련이 되었을 것이다. 추억이 되었든 미련이 되었든 우리가 끝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없다. 태어났을 때 어떤 것도 없이 세상에 온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짐하게 된다. 지나온 것은 지나온 대로 흘려보내고 지금 이 순간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할 것. 뮤지컬 '광화문 연가'(사진)가 관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이렇게 통속적이다. 하지만 그 통속적임이 나쁘지 않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심정적으로 동의한다 해도 결국 우리는 종종 과거의 유령에 매이게 되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세상에 환기시켜야 할 메시지임에는 틀림없다.
'광화문 연가' 속 주인공은 그의 반평생을 과거에 매인 채 살았던 전형적인 인간이다. 그는 첫사랑 수아의 기억을 붙잡고 죽기 1분 전까지 살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임종을 1분 앞둔 상황. 사경을 헤매는 주인공 명우 앞에 나타난 월하. 아이가 태어날 때 붉은 실을 매어 인연을 점지해준다는 신 월하는 명우와 함께 그의 지난 옛 기억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월하가 중년의 명우를 처음 데려간 기억 속 장면은 명우가 첫사랑 수아를 처음 만난 1984년 봄 덕수궁 사생대회. 당차고 명랑한 수아에게 반해 사랑을 키워가던 젊은 명우는 먼저 대학에 진학한 수아의 시위 장면을 목격하고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수아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며 차츰 수아와 멀어지게 된다.
결국 서로 다른 사람과 맺어진 그들. 그런데 명우는 현실에 체념하면서도 헤어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광화문을 걷다가도, 지하철 안에서도 만들어내는 망상의 조각들. 일어나지도 않았던 일들이 그랬으면 하는 마음에 실제처럼 각인되고 그를 사랑하는 아내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명우는 죽기 15초 전이 되어서야 각성한다. 극이라 아름답게 포장됐지만 우유부단한 인간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스토리 자체만 놓고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부분이 참 많은 작품인데 어쩔 수 없는 스토리를 멋진 음악과 쇼가 중화시켜준다. 마치 '불후의 명곡' 이영훈 편처럼 화려한 저녁 쇼타임이 펼쳐진다. 그의 음악을 사랑했던 사람들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공연은 1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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