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에서 1박하고 발리로 넘어가는데요. 뭐 보면 되나요?
-볼거 없습니다. 한나라의 수도니까 상징성 정도 있을 거예요.
인도네시아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질문과 대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3박5일의 짧은 출장에서 만난 자카르타 현지 취재원들도 비슷한 얘길 했다. "그냥, '여기'서 마사지랑 손 관리 받으세요. 그게 제일 나을 겁니다." 업무를 마치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고민하는 표정이 그대로 전달된 모양이다. 그런데 결국 추천하는 곳이 "그냥, 여기 쇼핑몰이라고?"
자카르타 쇼핑몰 코타카사블랑카 내부 중 극히 일부. 한 프레임에 다 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규모다.
취재를 위해 찾은 곳은 쇼핑몰 코타카사블랑카와 연결되는 주상복합건물 공사 현장이었다. 자카르타 중심 상업지구인 '골든 트라이앵글'의 아래부분에 위치한 코타카사블랑카는 현지에서 규모나 시설 모두 손꼽히는 명소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쇼핑을 즐기지 않는데 해외까지 나와서 고작 쇼핑몰이라니. 출장의 본목적은 취재겠지만 견문 넓히기도 중요한 과제 아니겠는가.' 몰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검색했지만 정말로 자카르타엔 이렇다할 관광명소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 환전도 해야한다는 게 생각났다.
물론 돈을 쓰라고 만든 시설이니 환전소가 있었다. 동남아 주요 도시와 한국이 결정적으로 다른 것 중엔 환전소 접근성도 있다.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포르, 자카르타 등에서는 서울보다 훨씬 쉽게 환전소를 만날 수 있다. 명동 인근에만 빼곡히 환전소가 몰려있는 우리와 차이나는 점이다. 사설 환전소였지만 대형 쇼핑몰 안에 있으니 안전성도 담보되는 기분이다.
총알을 마련했으니 쏘러가야 하는 걸까. 쇼핑에 취미가 없는 관계로 생활에 정말 필요한 뭔가를 사보기로 했다. 핸드폰에 갈아 끼울 현지 유심(USIM)을 구입해 보자. 사실 자카르타에 도착한 이틀째까지도 유심 구입을 하지 않은 건 공항, 호텔, 쇼핑몰 등 자카르타 대형 건물에서는 대부분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형쇼핑몰 코타카사블랑카엔 물론 휴대폰 가게도 있다. 그 층에는 현지 통신사들의 점포가 밀집해 있어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유심 하나 구입해서 끼우는데 40여분이 걸렸다는 것만 빼곤 한국과 거의 같았다. 한국만큼 '빨리 빨리' 업무를 처리해 주는 나라는 역시 지구상에 없는 것인가.
쇼핑몰 코타카사블랑카 내에 위치한 휴대폰 전문점. 상담을 위해 번호표를 뽑는 과정까지 똑같았지만 업무 처리 속도는 극명히 다르다.
4G인터넷 망을 보유하고 나서 다음 행선지를 찾기 위해 더 바쁘게 검색엔진을 뒤졌지만 결론은 역시 현지인의 조언을 따르는 쪽으로 흘렀다. '그래, 마사지를 받자.'
쇼핑몰 체감 규모는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보다 크다. 마사지숍이 당연히 영어로 써 있을 줄 알고 몰을 지하부터 살폈지만 눈에 띄지 않아 안내데스크의 도움을 받았다. 겨우 찾아가보니 간판이 현지어로만 돼 있다. 아주 심플하게 시간과 마사지 타입만 고르니 대기 시간 없이 바로 안내됐다. 1시간에 16만루피아. 한국돈으로 1만4000원이 채 안되는 금액이다.
현지인의 추천에 매우 감사하며 만족스런 마사지를 받은 후엔 네일숍을 찾았다. 쇼핑몰은 컸고, 역시 길을 잃었고, 결국 인포데스크로 다시 문의해 찾아갔지만 시간이 부족해 서비스를 받진 못했다. 쇼핑몰에서의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삭제됐다. 슬쩍 가격표를 보니 발 관리(패디큐어) 금액이 17만 루피아, 대략 1만5000원 선. 한국 4분의 1 수준의 가격에 다시 한번 놀란다.
복합쇼핑몰을 통해 쇼핑과 다양한 문화 체험을 동시에 즐기는 소비 형태를 몰링(malling)이라고 한다. 쇼핑만을 위해 쇼핑센터를 찾는 것이 아니라 식사, 게임, 영화 등 다양한 문화체험을 동시에 즐기는 것. 몰 개념이 처음 도입된 것은 1877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엠마뉴엘레 광장에서 조성된 대형 야외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적 개념의 몰은 1956년 오스트리아계 이민자인 빅터 그루엔이 미 중부 미네소타 에디나에 사우스데일 센터라는 상업시설을 지은 것이 최초다. 몰링을 즐기는 소비계층을 몰링족, 혹은 몰고어(mall goer)라고 한다.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대형쇼핑몰에서 식사를 하고 물건을 사고, 영화를 보고, 문화체험까지 동시에 하는 것을 '몰링(malling)'이라고 한다. 국내 유통업계도 몰링족들을 겨냥한 대형 복합쇼핑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신세계 그룹의 '스타필드'가 대표적이다.
자카르타에서 몰링의 재미를 단번에 알아버렸는지 귀국 직전 남은 시간에도 시내의 대표적인 쇼핑몰을 찾았다. 그랜드 인도네시아라는 이름 만큼이나 거대해서 역시 길을 잃고 헤맨 시간이 절반쯤 된다.
자카르타 물가가 한국에 비해 싼 만큼 호텔도 훨씬 적은 부담으로 즐길 수 있다. 이것 역시 동남아 여느 도시들과 비슷한 점인데 자카르타는 특히 5성급 호텔도 10만원대에서 숙박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성비는 말할 것도 없다.
호텔에서 즐기는 바캉스를 호캉스(hotel+vacance)라고 부르는 요즘. 몰링 후 호캉스가 가능한 트렌디한 도시 자카르타는 휴양 여행계의 틈새시장으로 볼 수도 있다. '별로 볼게 없다'는 도시의 단점이 더운 야외가 아닌 실내에서도 즐길거리가 많다는 장점으로 전환하는 순간이다.
꼭 가봐야 할 필수 관광지가 없어서 절로 생긴 여유시간은 몰링과 호캉스로 보내면 충분하다.
몰링과 호캉스에 특화된 도시 자카르타의 야경. 예상보다 훨씬 고층빌딩이 많다. 그만큼 대형쇼핑몰과 고급호텔도 많다고 봐야 한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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