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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어린 두딸 두고 돌아가신 어머니, 30년만에 개장하니 눈도 못감고 그 모습 그대로"

'금녀의 벽' 깬 16년차 장묘사 고경순씨 "수십년 된 시신 만지지만 두려움보단 보람 커"

[인터뷰] "어린 두딸 두고 돌아가신 어머니, 30년만에 개장하니 눈도 못감고 그 모습 그대로"


땅속에서 석고처럼 굳은 시체를 맨손으로 번쩍 들어올리는 여성이 있다. 장묘업계에 견고히 자리 잡은 '금녀(禁女)의 벽'을 깬 고경순씨(53.사진)다. 장묘는 매장돼 있는 시신을 꺼내 화장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장하는 것을 일컫는다. 고씨는 남성들도 선뜻 발을 들이지 않는 장묘업계에서 16년째 일하고 있다.

"시신마다 부패되는 시간이 각각 다르다. 매장한 지 20~30년이 지났는데도 부패가 진행 중인 시신도 있다. 이런 시신은 하얀 벌레와 함께 특유의 악취를 풍긴다. 이를 본 장묘사 중에는 며칠 동안 식사를 못하거나 심지어는 일을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혐오스럽다거나 냄새 나서 만지기 싫다고 느낀 적이 없다."

장묘 작업을 소개하는 고씨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고씨는 "다른 일을 했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까지 뜻깊지 않았을 것 같다"며 "60세가 넘어서도 날 찾아주는 고객만 있다면 일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젊은 여자라며 무시당하던 과거, 억대 연봉의 '스타 장묘사'로

장묘사가 되기 전 고씨는 평범한 회사에서 사무직 일을 했다. 하지만 적성에 잘 맞지 않을뿐더러 매일 답답하기만 했다. 장묘업에 뛰어들게 된 건 고씨가 서른여덟 살에 접어들었을 무렵이다. 장묘업에 종사하는 지인의 소개가 계기였다.

처음에는 부동산업자들로부터 무연고 묘지를 소개받고 이를 장묘사와 연결해주는 영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어깨 너머 배운 솜씨로 자연스럽게 장묘 일까지 하게 됐다. 고씨는 첫 개장 작업을 떠올리며 "웬만한 남성 장묘사보다 잘해서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며 "두려움보다는 보람찬 마음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최초의 여성 장묘사'라는 꼬리표가 버거울 때도 많았다. 고씨는 "많은 사람들이 '젊은 여자가 뭐 하는 거냐'고 손가락질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고씨는 자신감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주변의 인정도 뒤따랐다. 이제 그녀는 매년 1억원을 벌어들이는 스타 장묘사가 됐다.

■죽음에서 삶을 깨닫다

고씨는 이 일을 하면서 인생을 배운다고 말한다. 매장할 때는 유족들의 슬픔이 극도에 달한 상태이지만, 개장할 때는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다들 슬픔에 초연한 상태다. 고씨는 그런 유족들과 대화하면서 안정감을 느낀다. 죽음 역시 삶의 일부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또 고인과 유족들 사이에 얽힌 사연에서도 깨닫는 게 많다.

"한번은 30년 된 모친의 묘지를 개장하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왔다. 당시 고인은 세 살, 다섯 살짜리 어린 두 딸을 두고 돌아가셨다. 개장해보니 시신이 사망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눈도 뜨고 있었다. 본래 특정 조건이 갖춰지면 시신이 그대로 보존되기도 하지만, 어린 딸들을 두고 눈을 감기가 얼마나 한스러웠겠느냐는 생각에 마음이 저릿했다."

이 때문에 고씨는 "이 일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결코 돈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그는 "돈만이 목적이었다면 이 일 못했다"며 "모든 고인을 내 부모님 모시듯이 일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여성들이여, 도전하라"

고씨는 인터뷰 도중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더 많은 여성들이 이 직업에 도전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고씨의 딸도 장묘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딸을 인도한 것도 고씨다. 그는 "최근 매장 문화가 위축되면서 이 직업 역시 30년 정도면 사라질 것으로 보는 해석이 많다"면서도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연고 묘지가 아직도 많다"며 "앞으로 60년은 거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씨는 진정성을 가장 강조했다.
그는 "유족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을 확인할 때 일을 의뢰한다"며 "장묘 일은 35~36세 무렵에 시작하면 가장 좋다"고 조언한다. 적성에 맞는지도 당연히 확인해야 한다고 권했다. 고씨는 "영업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현장 일(개장)은 그렇지 않다"며 "꼭 체험해보고 본인의 적성을 돌아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ktop@fnnews.com 권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