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대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K팝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 BTS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기업가치는 대략 8000억원에서 2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빅히트는 변변한 공장이나 부동산이 없고, 수익의 대부분을 BTS의 공연료와 저작권에 의존한다.
최근 제약·바이오기업의 연구개발비 자산화 논란을 계기로 무형자산의 회계처리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00여년 넘도록 크게 변하지 않은 현행 회계처리 기준으로는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기업가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는 데다 투자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수 없어서다.
■BTS 소속사 기업가치 8000억~2조5000억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자레인지·에어컨 등 가전부품을 만드는 코스피 상장사 디피씨의 주가는 지난 11일 9% 상승한데 이어 12일과 15일 2거래일 연속으로 상한가를 기록했다. 사흘 새 84%가 뛰었다. 디피씨의 자회사인 사모펀드(PEF) 스틱인베스트먼트가 빅히트와 1040억원 규모의 투자계약을 맺은 때문이다.
빅히트의 기업가치는 보는 입장에 따라 천양지차다. 기업가치가 높을수록 상장시 이익이 늘어나는 증권가의 추정치는 후한 반면, 싼값에 투자해 고수익을 올리려는 벤처캐피털업계는 박할 수밖에 없다.
증권가에서는 비상장사인 빅히트의 기업가치가 JYP, 에스엠 등 기존 대형 기획사를 넘어선 것으로 평가한다. 하나금융투자는 빅히트의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을 각각 2300억원, 830억원으로 예상했다. 이기훈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빅히트엔터의 시가총액은 올해 순이익에 주가수익비율(PER) 30~40배를 적용하면 1조8000억~2조5000억원 규모"라고 추정했다.
반면 스틱인베스트먼트는 빅히트의 기업가치를 8000억원 수준으로 평가했다. 벤처캐피널(VC)업계에서 빅히트의 기업가치를 보수적으로 보는 이유는 멤버들의 병역문제가 크다. 올해 초 넷마블이 빅히트 지분 20%가량을 인수했을 때도 7800억원 수준이었다.
■무형자산 99%인 시대 온다
빅히트는 물건을 만들어 파는 회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공장시설 등 고정자산도 별로없다. BTS가 벌어들이는 공연료, 저작권료 등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유형자산은 큰 의미가 없다. 앞으로는 기업평가의 중심이 무형자산으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순이익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게임업계, 신약개발 성공에 근접했다는 바이오회사들은 주가가 단숨에 몇 배씩 뛰며 화제가 된다.
지난 6월 영국의 학자 조너선 해스컬과 스티언 웨스틀레이크는 '자본 없는 자본주의'에서 앞으로 무형자산이 99%를 차지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06년 당시 마이크로소프의 시장가치는 2500억달러, 대차대조표상 자산은 700억달러였다. 이 가운데 공장과 설비는 30억달러에 그쳤다. 시장가치의 1%, 장부상 자산의 4%에 불과하다. 통상적인 자산과 이익 기준 가치평가로는 설명이 안 되는 수치다.
이들의 기업가치에는 기술개발에서 비롯한 아이디어와 노하우, 디자인, 브랜드, 모방하기 힘든 내부 프로세스, 훈련받은 인재 등 회계상 수치로는 잡히지 않는 무형자산들이 반영돼 있다.
■100년된 회계기준 손질 필요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외 회계기준은 산업 트렌드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개발비에 대한 인식이 보수적이다. 개발비는 어떤 자산을 개발하기 위해 기업이 투입한 돈이다. 제약회사의 신약연구비, 게임회사의 게임개발비 등이 이에 해당한다. 만일 연예기획사라면 연예인 전속계약금이나 연습비용도 포함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회사들의 재무제표에 표시되는 개발비 금액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돈이 많이 들었는 데도 자산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비용으로 처리해서다. 현행 회계는 개발비 인식 요건으로 성공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고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자산의 과대평가를 막는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만 기업가치를 과소평가하는 단점도 있다.
한국과 유럽 등이 채택한 국제회계기준(IFRS)은 개발비를 자산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금융당국도 제약·바이오기업의 연구개발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놨다. 하지만 업계는 "무형자산의 자산화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의형 한국회계기준원장은 "현재 재무제표에 수익창출에 기여하는 무형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재무보고의 원칙과 방식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기업들은 공장, 건물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지 중요하지 않다.
20년 뒤에는 무형자산만 있는 기업이 대부분일 지 모른다"며 "무형자산의 복잡성, 다양성 등을 반영하기 위한 여러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며 강조했다.
송민섭 서강대 교수도 "재무제표의 형태와 내용은 지난 11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다"며 "1950년대 기업의 주가와 순이익의 상관관계는 90%에 달했지만 현재는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무형자산 관련 회계처리는 정보이용자의 요구를 반영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