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고령
우리나라 최초 발굴된 순장묘부터 지름 20m 훌쩍 넘는 대형고분까지
크고 작은 700여개 고분따라 걷다보면 1500년전 숨결 간직한 대가야박물관 만나
【 고령(경북)=조용철 기자】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과 가야산으로 둘러싸인 경북 고령은 6세기까지 대가야의 도읍지였다. 대가야(42~562)는 500여년간 존속하며 찬란한 고대문화를 꽃피웠지만 유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 감춰진 채 신비의 왕국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1977년 고령 지산동 44호와 45호 고분이 발굴되면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한 대가야 문화가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고령군 일대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로 추정된다. 삼한시대 이 지역에 있던 반로국이 주변 세력을 병합해 대가야로 발전했다. 대가야는 금관가야가 쇠퇴한 뒤 후기 가야의 맹주로 세력을 떨쳤다. 농업에 유리한 입지 조건과 제철 기술을 바탕으로 4세기 이후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5세기 이후가 되면 가야 여러 지역을 대표하는 국가로 발전한 것. 문화적으로도 가실왕의 명을 받아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고 12곡을 짓는 등 높은 문화 수준을 갖췄다. 전성기 대가야의 영역은 고령 지역을 중심으로 합천, 거창, 함양, 산청 등 영남지역은 물론이고 남원, 장수, 진안, 임실, 구례, 순천 등 호남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대가야는 시조 이진아시왕에서 도설지왕에 이르기까지 16대에 걸쳐 520년간 존속했다.
경북 고령 '신비의 대가야 여행'은 외국인이 우리나라 전통무예를 체험하는 특화 프로그램인 '오륙도에 서서 바다를 돌려차다'(부산 대영태권도장) 등과 함께 전통문화 체험을 고품격 관광 프로그램으로 육성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18년 신규 전통문화·전통무예 콘텐츠 체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대가야 유적과 우륵의 가야금 공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까지 버스 여행을 중심으로 진행됐지만, 올해부터는 개별관광객의 체험 활동을 돕기 위해 프로그램을 보완, 진행중이다.
여행객들이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 둘레길을 걷고 있다.
■고대왕국의 신비, 지산동 대가야고분군
주산에 올랐다. 주산은 고대 대가야 시대의 중요한 고분들이 있는 문화의 보고로 고령의 명산이다. 주산에는 대가야 시대 궁성을 방어하기 위한 주산성과 지산동 고분군, 산림욕장을 갖췄다. 이처럼 고령 주산에 분포한 지산동 고분군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인 44호와 45호 고분 등을 포함해 크고 작은 고분 700여기가 늘어서 있다. 대가야의 왕과 왕족 그리고 귀족들이 묻힌 신성구역으로 대가야국의 융성을 무언으로 말해주는 듯하다. 주산의 남동쪽 능선을 따라 조성된 고분군에는 산 정상 부근의 지름이 20m도 넘는 대형고분이 있어 웅장함을 더해준다. 고분군을 따라 조성된 2㎞가량의 산책로를 거닐면 1500여년 전 대가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고분과 고분을 잇는 산책로는 1500여년 전 대가야로 떠나는 시간여행이다. 고령 장터에서 주산 산림욕장을 거쳐 지산동 고분군을 연결하는 4㎞ 산책로는 이색 체험코스다. 아름드리 솔숲을 지나면 고분군을 만난다. 고분산책로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 타박타박 오를 수 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고분군 산책로는 동쪽 낙동강 물길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강바람을 만날 수 있어 시원하다. 중턱쯤에 드리워진 나무 그늘은 휴식할 수 있는 쉼터이자 고령 읍내를 한 눈에 굽어 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다.
지산동 고분군을 따라 내려오면 지난 2005년 문을 연 대가야박물관과 만난다. 대가야의 우수한 문화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대가야사 전문 박물관이다. 대가야박물관은 대가야왕릉이 모여있는 지산동고분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대가야왕릉전시관'과 '대가야역사관'으로 구성됐다.
대가야역사관에선 대가야 및 고령지역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구석기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역사·문화에 대한 설명과 유물을 살펴볼 수 있다. 대가야왕릉전시관에선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대규모 순장무덤인 지산리 44호 고분의 내부를 원래 모습 그대로 재현해놓아 관람객들이 실물 크기로 복원된 고분 속으로 들어가 무덤 구조와 축조방식, 주인공과 순장자들의 매장 모습, 부장품의 종류와 성격 등을 직접 볼 수 있게 했다.
대가야박물관
■정정골에서 울려퍼지는 가야금 소리
지산동 고분군의 풍경을 뒤로 한 채 우륵박물관으로 향했다.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의 금곡은 '정정골'로 불린다. 우륵이 예술활동을 펼쳤던 정정골에 자리잡은 우륵박물관은 가야금을 창제한 악성 우륵의 생애와 음악을 입체적으로 조명해 놓았다. 이곳에서는 우륵의 생애와 가야금의 기원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미니 가야금 만들기 체험, 가야금 연주 체험 등도 할 수 있다.
우륵국악기연구원 김동환 명장이 가야금 제작과정 중 인두작업을 하고 있다
가야금은 대표적인 우리 전통 현악기로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악기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대가야의 가실왕이 열두 달의 음률을 본떠 12현금을 만들고 우륵에게 명해 12곡을 짓도록 했다. 당시 가야금 곡조에는 모두 185곡이 있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우륵이 지은 곡이 12곡인데 곡 제목이 하가라도, 상가라도, 보기, 달이, 사물, 물해, 하기물, 사자기, 거열, 사팔혜, 이사, 상기물 등 가야의 지역명이었다.
우륵박물관 안에 있는 우륵국악기연구원도 꼭 둘러보길 권한다. 이곳에선 가야금의 종류와 제작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가야금은 수령 30년 이상된 오동나무를 5~7년 자연 건조시킨 뒤 살아있는 소리를 선별해 연주용으로 만들어진다. 우륵박물관 인근 가얏고마을에선 가야금 연주 체험을 할 수 있다.
우륵국악기연구원 김동환 명장은 "한 그루의 오동나무가 음(音)으로 태어난다.
음을 잘 다스려야 악(樂)이 완성된다. 음은 장인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연주자의 손길에 다스려진다. 장인의 손길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어 완성된 가야금의 깊은 곳에서 맑은 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자연의 소리를 담아 전통기법으로 제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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