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에서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작년 무술(戊戌)년이 시작할 때는 북한 핵문제로 금방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것 같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황금개띠라 하며 요란하게 새해를 맞았었다. 그런데 금년엔 새해를 전망하는 명사들의 기대 섞인 덕담조차 신문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단골 메뉴인 새해부터 바뀌는 것들이 무엇인지 소개하는 기사조차 다룬 곳이 없어 보인다. 무엇이 새해를 이렇게 조용히 맞이하게 만들었을까.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섯 가지 본능을 추구하며 사회체계를 만들었고 기술발전을 이뤄왔다. 필자가 판단하는 우선순위대로 열거해보면 첫 번째는 의식주, 즉 먹고사는 경제이고, 두 번째는 삶을 위협받지 않는 안전이며, 세 번째는 건강이고, 네 번째가 즐거움을 위한 여유 그리고 다섯 번째가 한때는 최우선 순위에 있던 종족보존이다. 그런데 지금 이 본능 추구가 복합적으로 흔들리면서 가진 자는 움켜쥐었고, 없는 자는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움츠러들어버린 것이다.
의식주를 해결해 줄 일자리 문제는 그 불안감이 극심하다. 미국과 중국의 기 싸움이 장기화되면서 증시는 끝없이 추락하고, 기업은 투자를 멈춘 지 오래됐고, 최저임금 인상은 전체 사업자의 30%에 해당하는 자영업자들이 고용을 줄이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저소득 일자리가 줄어들고 심지어 대학 졸업자들의 취업률도 근래 최저치로 떨어져서 일자리는 누구에게나 구하기 힘든 것이 돼있다.
안전문제도 새로운 두려움이다. 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설치한 시설물들이 노후되어 언제 어디서 싱크홀이 발생하고, 온수가 터져나올지 모른다. 이젠 인터넷 연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IT시대에 연결망이 단절돼 온라인 거래가 중지되는 일이 벌어지고, 개인정보는 이미 시장에서 자유롭게 유통되고 있어 언제 x-피싱에 걸려들지 모른다.
전 지구적 환경문제는 우리가 자랑하던 맑은 공기와 물을 오염시켜놓았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들어보지 못했던 미세먼지가 우리 입에 마스크를 씌워놓았고, 미세플라스틱은 이제 우리가 마시는 거의 모든 물에 포함되기 시작했고, 우리가 먹는 음식물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고 봐야 하는 실정이다. 불량식품은 오히려 비교가 안 될 위협이다.
어떻게 해야 우리를 움츠리게 하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가진 자도, 없는 자도 모두 새로운 희망으로 생동력을 회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인지 답을 내기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들 문제 하나하나가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누적돼 온 것들이어서 누구 책임인가를 놓고 서로 갈등하고 분열하는 것도, 하루아침에 해결하려고 무리하는 것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발묘조장(拔錨助長)이란 말이 있다. 뿌리를 잡아 올려 벼가 자란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말이다.
벼가 자란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답이 아니다. 벼가 튼실한 알곡을 맺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급한 마음일수록 돼지띠들의 특성과 같이 뿌리를 다지듯이 서로를 이해를 구하고 이해해 주며 우리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기해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헌수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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