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플레이어 2] 웨이스티드 쟈니스(Wasted Johnnys)
어느 밴드를 보았다. 홍대 신에서 활동하는 밴드 세 팀을 찍어낸 다큐멘터리에서였는데, 개중 한 팀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작은 체구의 노란머리 여성보컬과 투박하지만 제법 단단해 보이는 드러머 사내, 외국인 베이시스트로 구성된 3인조 록밴드였다. 영화 초반 그럴듯해 보이는 소속사와 계약도 체결하고 금세 성공을 향해 날아갈 듯 보였다.
그런데 밴드는 하루하루가 힘겨웠다. 록스타의 길은 멀고 험하며, 가끔은 그 길이 앞에 놓인 길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이미 앨범을 낸 밴드가 신인 오디션 프로그램에 신청하고 그 도중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이야기가 등장했다. 단 몇 분 몇 초의 TV 출연이 그렇게도 간절했지만 그 뒤에도 삶은 특별히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베이시스트가 팀을 떠났다. 팀을 떠나며 베이시스트는 홍대 신과 제 밴드의 한계에 대해 말했다.
"계속 이렇게 하다가 록스타 되면 진짜 멋있잖아? 그런데 안 될 것 같아. 우린 지금 4년 동안 똑같은 스타일을 했고 팬층도 계속 똑같고, 이제 미래에 대한 기대가 많이 없어졌어... 우리 음악이 멋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한국에선 안 될 것 같아. 담배필까?"
영화는 그냥 그렇게 끝났다. 그로부터 다시 4년의 시간이 흘렀다. 밴드는 이제 4인조가 됐고, 드러머는 유부남이 됐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특별히 나아진 게 없어 보인다. 밴드의 이름은 웨이스티드 쟈니스(이하 웨쟈), 7년 차 베테랑 록밴드다. 꿈이 있고, 꿈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으며, 매력이 있기에 플레이어 두 번째 인터뷰 대상으로 낙점됐다.
■1년 넘게 공연 쉰 밴드, "이유는 2집에 담겠다"
2집 앨범을 준비 중인 록밴드 웨이스티드 쟈니스(Wasted Johnnys). 왼쪽부터 정윤겸(베이스), 백선혁(기타), 안지(보컬·기타), 김영진(드럼) / 제공=웨이스티드 쟈니스
인터뷰를 위해 만난 3월 초 웨쟈 멤버들은 한창 2집 시녹음(데모) 작업에 열심이었다. 2015년 낸 1집 이후 4년 만에 내는 정규 앨범이다.
“곡은 거의 썼고 데모작업을 하고 왔는데 거의 끝나가서 이제 본 녹음 들어가기 전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편곡작업을 하면서 손을 봐야하는 상태죠” 보컬 안지가 설명했다. 공연마다 앞으로 튀어나가는 이 엄청난 에너지의 프런트맨(음악그룹의 리더이자 대외적으로 간판 역할을 하는 사람)은 침체기에도 아프리카TV에 이어 유튜브 채널까지 활발히 운영했었다. 하지만 유튜브채널 ‘아엠안지I AM ANGIE’에 올라온 영상은 8개월 전이 마지막이다.
안지만이 아니다. 밴드도 오랫동안 휴식기를 갖고 있다. 무려 1년째 웨쟈는 제대로 된 공연을 갖지 않았다.
기타리스트 백선혁이 설명한다. “저희가 일 년 넘게 공연을 쉬었어요. 그동안 공연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는데 그러다보니 앨범작업이 지지부진해지는 것 같았죠. 이러다간 십 년이 지나도 앨범을 못 내겠다 싶어서 제가 강력하게 이야기를 했어요”
소위 말하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인 걸까. 도대체 얼마나 공연을 많이 했기에 앨범을 준비할 시간도 없었던 건가 싶다.
선혁이 답한다. “매주 주말에 클럽라이브가 있었고, 많이 하면 일주일에 두세 번까지도 했어요. 그러면 지치고 쉬고 싶죠. 음악적인 영감보다 피곤을 풀고 싶은 생각만 들었어요. 그래서 일 년 동안 합주하며 곡을 모았고 올해 중에 앨범을 내자는 생각입니다”
다른 멤버들이 이구동성 ‘대책 없이 앞장서는 게 병’이라 고발하는 안지가 “빠르면 오월에 (2집 앨범이) 나올 거에요”라고 하자 선혁과 베이시스트 정윤겸이 웃으며 양손을 내젓는다.
“안지의 말은 항상 앞서가기 때문에 실제로는 3개월은 더 걸릴 거라고 생각해요. 하여튼 우리가 2집을 내고 라이브를 재개하는 게 당장 가장 큰 목표입니다”
인터뷰에 앞서 웨쟈에 대해 소개를 해달라니 윤겸이 나서 정리한다. “이런 건 원래 단출하게 소개하는 게 임팩트가 있죠. 우린 블루스 개러지 락밴드 웨이스티드 쟈니스에요. 셔플리듬을 기반으로 개러지스러운 시원스러운 곡을 지향했었죠” 이미 단출하지는 않은 설명이지만 그런대로 알아들은 걸로 치고 다음 대목으로 넘어간다.
웨쟈를 만나고 가장 궁금했던 건 역시 밴드가 써온 역사다. 4년 전은 물론 데뷔 직후인 7년 전과도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은 이 밴드는, 그러나 제 나름의 역사를 써온 것처럼 보인다. 특히 다큐 촬영 당시 3인조였던 멤버가 4인조로 바뀌어 벌써 4년째 호흡을 맞췄다.
안지가 말한다. “처음 3인조로 출발해서 정규방송부터 탑 밴드 같은 프로그램 나갔었는데 역부족이라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제 기타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제대로 무대에 서려면 기타나 피아노를 구해야겠다고 느꼈죠. 그래서 선혁이가 들어왔는데 갑자기 닐스가 나가게 되면서 윤겸이를 만나게 된 거에요. 그동안 단 한 번도 웨쟈를 깨거나 그런 건 생각한 적 없어요.”
■확연히 달라진 스타일, "짜장면 같은 음악 할 거야!"
웨이스티드 쟈니스 로고 / 제공=웨이스티드 쟈니스
베이시스트 닐스는 팀을 나가며 웨쟈 음악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멤버들은 준비하고 있는 2집이 전과 확연히 다른 색깔을 가졌다고 강조한다.
안지의 말이다. “닐스의 말은 웨쟈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홍대 신 전체에 대한 것이기도 해요. 우선 우리가 준비한 2집 스타일은 많이 바뀌었죠. 누군가는 ‘이게 무슨 웨쟈야’ 할 수 있겠지만 어떤 분은 듣기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요. 우리는 계속 새로운 시도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멤버들도 동의하고 있죠.”
선혁이 덧붙인다. “처음에는 저도 ‘어? 이거 우리 거 아닌데’ 이런 낯선 기분이 들었어요. 하지만 계속 하다 보니까 안 입던 옷을 자주 입으면 내 옷 되듯이 그렇게 변해서 지금은 우리 음악 같아요”
안지와 웨쟈에게 중요한 건 변화 그 자체가 아니다. “내 안에서 변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새로운 것도 분명히 있는데 왜 나는 비슷한 것만 만들지 하는 생각도 물론 해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나한테 재미있느냐 아니냐 그거죠”
생각해보면 록이란 것도 결국은 표현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하는 거다. 시가 시의 방식으로, 회화가 회화의 방식으로 전하듯이, 록은 록의 방식으로 표현할 뿐이다.
안지에게 웨쟈의 표현은 이런 것이다. “다른 것도 많이 그렇지만 특히 가사는 저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그때그때 표현하고 싶은 감정 같은 것들에서요. 전 일기도 그렇고 자주 메모를 하는 편인데 단어나 말이 주는 힘과 느낌을 중요하게 여겨서 그런 것 같아요”
선혁이 특별히 좋아하는 가사가 있다며 말을 잇는다. “저는 사실 ‘강’ 가사를 좋아해요. 개인적으로 이 밴드에서 처음 작업한 곡이기도 하고 안지가 저를 많이 괴롭힌 곡이기도 하죠. 그래서 가사를 유심히 보게 됐는데 ‘이곳은 너무 춥고 난 여전히 갇혀 있네. 늘 새롭고 새로우리라 변하지 않는 내 헛된 다짐’ 이 부분이 자기에 대한 자책 같기도 하고 뭔가...”
안지가 이어 받는다. “그 강이 홍제천이에요. 제가 원래 부산 사람인데 스물이 되자마자 홍대에 가면 재미있을 거 같고 밴드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스물셋 쯤에는 락스타가 돼 있겠지 이런 생각에 바로 홍대로 올라 왔어요. 그렇게 처음 오디션을 보고 밴드에 들어갔는데 몇 달 지내다가, 제가 스물이고 그들이 스물 여섯 쯤이었나 자기들한텐 시간이 없고 제 성장을 기다려 줄 수는 없을 거 같다면서 나가달라고... 그때 되게 서글프고 그래서 그 동네를 차마 벗어나지 못하고 혼자 앉아 물을 바라보며 글을 썼죠. 그게 이 곡이 됐어요”
뒤에서 프런트맨을 받칠 뿐 가사는 특별히 기억하지 않는 편이라는 윤겸도 기억하는 가사가 있다. “안지씨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저는 1집 정규앨범 수록곡 중에 ‘냄새’라는 곡을 좋아해요. ‘냄새, 날 미치게 하는 냄새’란 가사가 특히 기억에 남죠. 기억이란 게 그렇잖아요. 그날의 온도, 냄새, 거리에서 들려온 노래까지, 그런 매개체를 통해서 기억하는 것들이 있죠. 무엇보다 이 곡은 베이스라인이 재미있고. 아쉽게도 라이브를 별로 안 하는 곡이긴 하지만 합주할 때라도 나오면 참 좋아요”
재밌는 이야기가 하나 딸려 나온다. ‘냄새’가 tvN프로그램 ‘수요미식회’에 삽입된 적이 있단 얘기다. “이 곡이 양꼬치 굽는 장면에서 나왔어요. 먹고 싶어 미치겠다면서요. 대단히 감각 있는 분이 이 곡을 쓰신 것 같아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록은 본진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홍대에서조차 밀려나고 있는 장르다. 라이브라면 빠지지 않던 웨쟈이니만큼 익숙했던 클럽들이 문을 닫는 광경은 특별한 감상을 남겼을 테다. 홍대에서조차 밀려난 록의 시대가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제법 멋진 말이 나왔다. 록을 음식에 비유해 달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록과 음식이라... 전 짜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전 짜장면을 오래 전에 할아버지랑 손잡고 가서 먹었던 추억이 있어요. 록이 1976년 이전에 완성된 장르라는 말도 있고 한데, 그런 장르를 지금 웨쟈가 하고 있잖아요. 짜장면은 언제 먹어도 맛있는 음식인데 웨쟈가 하는 록도 어쩌면 옛것일 수 있지만 언제든 좋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윤겸의 말이다. 대단한 순발력이다. 내가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어버버 하며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선혁이 덧붙인다. “맛집이 망하지 않는 것처럼 록음악이 하나의 장르로 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부흥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해도, 록의 시대가 한 번쯤 올 테니 걱정은 하지 않아요”
다시 안지가 받는다. “80년대에 유행했던 유로댄스나 패션, 음악장르들이 요즘 힙스터들한테 빠르게 유행했다가 또 가고 있잖아요. 돌고 도는 것 같아요. 힙합도 새롭게 재해석되면서요. 표현하는 사람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면서요.”
“첨언하자면 원래 세상이 바뀐다는 말은 항상 있지만 그 속도가 지금 더 빠르니까 괜히 희망을 가져보게 되네요. 락도 빨리 오지 않을까요. 인생은 타이밍이니까 어쩌면 제 시대에” 윤겸이 말하자 선겸이 “그럼 금방 가겠지”하고 받는다. 모두 크게 웃는다. 유쾌하다.
■"우리가 하는 게 팝이 되면 좋겠어!"
웨이스티드 쟈니스 공연 모습 / 제공=웨이스티드 쟈니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터뷰에 오지 못한 드러머 김영진은 조자룡에게 주머니를 넘긴 제갈량처럼 한 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보컬보다 주목도 못 받는데 보컬하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드러머가 이렇게 말해 달라 하더라고요. 되묻겠습니다. 5초 안에 국내 드러머 이름을 세 명 이상 말해주세요”
물론 답하지 못했다. 고백하자면 5초가 아니라 50초가 있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게 드러머의 존재 이유입니다”
뭔가 충분한 대답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드러머뿐 아니라 웨쟈와 한국 록밴드에 대해서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꿈을 물었다. 선혁은 털어놓는다. “인기 있고 싶어서 밴드를 한 게 맞아요. 나중엔 그것보다 소중한 게 생기긴 했지만요. 제 역할로 우리 음악이 풍부해지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게 생각보다 되게 멋진 일이에요. 근데 사실 인기도 얻고 싶어요. 인기를 얻고 싶다고요.”
안지의 꿈도 명확하다. “열다섯부터 변함이 없어요. 록스타요. 월드클래스 록스타. 원하는 곳에서 공연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하고요. 표현하고 싶은 음악을 녹음하거나 라이브 할 때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윤겸의 꿈은 이렇다. “누나가 록스타 얘기했는데 저는 그 옆에 있는 베이시스트에요. 사실 누나한테 종속돼 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요. 전 평범한 대학생이었는데 웨쟈에 들어오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밴드에 대한 인식이 깨졌어요. 지금은 없어진 선더홀스라는 이태원 클럽에서 공연하고 땀 흘린 채로 멤버들과 이야기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그 후로 꿈이 계속 불어났죠. 누나 옆의 베이시스트가 꿈이라고 말씀드렸지만 더 커질 예정이에요. 내가 만든 베이스라인으로 연주도 하고, 내가 진짜 멋있어져서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베이시스트가 되는 것, 애매해보이지만 저에겐 나름 구체적이고 명료한 꿈이죠”
이들의 과거 몇 년을 담은 조이예환 감독의 다큐 <불빛아래서>엔 멋진 대사 하나가 나온다. 그럴듯해 보이는 소속사와 계약을 맺고 멤버들이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하는 장면에서다. 안지가 이렇게 말한다. “난 내가 하는 게 팝이 됐으면 좋겠어”
이건 나의 꿈이기도 하다. 플레이어와 웨이스티드 쟈니스, 그리고 저마다의 꿈을 가진 모든 이들이 '제가 하는 것이 팝이 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가끔 상상합니다. 비디오가게 점원 타란티노를, 차고 안의 잡스를, 아를의 반 고흐를 만나는 순간을요. 연습구장에서 땀 흘리는 메시를, 취재에 치이던 트웨인과 헤밍웨이를 만나는 건 또 어떨까요. 상상만으로도 짜릿합니다. 저도 한 때는 예술에 삶을 걸겠다고 맹세했었지요. 어찌나 즐겁고 괴로웠는지, 얼마나 뜨겁고 슬펐던지를 기억합니다. 꼭 한 번이라도 그 시절 나를 만날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기획했습니다. 만날 가치가 있는 사람을 만나 들을 가치가 있는 얘기를 듣는 인터뷰 프로젝트를요. '플레이어'라 이름붙인 길 위에서 애저녁에 떠나가버린 나와 만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조건은 오로지 셋입니다. 꿈이 있을 것, 꿈을 향해 달리고 있을 것, 매력적일 것. 플레이어가 이름을 얻지 못한다 해도, 필요한 곳에 조그마한 힘이라도 건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럼 제 인생의 플레이어일, 제 삶 가운데 투쟁하고 있을 멋쟁이 꿈돌이들에게 이 인터뷰를 바칩니다. 지긋지긋한 이 生을, 어디 한 번 살아내 봅시다.]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김성호의 플레이어>에서 더 깊은 인터뷰를 만날 수 있습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안태호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