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직 상실은 지난 2014년 조현아 전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이 시발점이 됐다.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12월 땅콩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아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이동 중이던 항공기를 되돌렸다. 이는 '땅콩 회항' 사건으로 알려지며 사회적 공분을 샀다. 조 전 부사장은 대한항공 경영직에서 물러나 약 3년 동안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 이후 지난해 3월 한진그룹 호텔사업을 총괄하는 칼(KAL)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은 복귀 한달 만에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직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동생인 조현민 전무의 '물컵 갑질' 논란이 지난해 3월 불거지면서다. 조 전 전무는 대한항공의 광고 제작을 위해 진행 중이던 회의에서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컵을 집어던진 것으로 전해진다. 총수 일가의 '갑질' 사건이 연거푸 터지면서 총수 일가의 또 다른 '갑질'을 성토하는 카카오톡 익명 대화방이 활성화됐다.
그 결과 한진 오너 일가들은 각종 위법 혐의로 경찰, 검찰, 세관, 공정거래위원회, 국토교통부 등 국가기관의 조사·수사 대상이 됐다. 그 과정에서 조양호 회장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는 2013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기항공기 장비와 기내면세품을 사들이며 트리온 무역 등 특정 업체를 끼워 넣어 196억 상당의 중개수수료를 챙겼다는 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 함께 기소된 혐의까지 포함하면 그의 횡령·배임 혐의는 270억원 규모다.
이는 국민연금이 이틀 간의 장고끝에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을 반대하기로 한 결정적 배경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와 국내 의결권 자문사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서스틴베스트, 좋은지배구조연구소 등도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반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갑질 논란으로 시작된 한진그룹의 경영위기가 이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부결과 함께 정점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게다가 조 회장에 대한 수사가 지속되고 있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 아직 속단하기도 힘들다. 재계에서는 앞서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이 제시한 향후 5개년 중장기 ‘한진그룹 비전 2023’을 중단없이 실천해가면서 차근차근 다시 신뢰를 얻어가는 게 한진 일가의 수난사를 끝낼 수 있는 방안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ktop@fnnews.com 권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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