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극과 한국 창극의 창조적 결합. 동명의 경극을 '소리의 예술' 창극으로 만든 '패왕별희'는 소리(음악)와 퍼포먼스가 한데 어우러진 새로운 예술로 거듭났다. 고전을 다루되 현대화된 공연 예술로 이 시대 관객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셰익스피어 비극부터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까지 서양의 고전문학을 경극으로 꾸준히 선보여온 대만 경극 배우 출신의 연출가 우싱궈의 저력은 기대 이상. 작창과 음악감독을 겸한 이자람과의 협업도 성공적이다.
막이 열리면 첫눈에도 범상치 않은 무대가 펼쳐진다. 화려하고 섬세한 의상과 음악, 극을 뒷받침하는 영상이 관객의 시선을 휘어잡는다. 경극의 양식화된 동작과 몸짓을 수용한 창극 배우들의 연기와 판소리의 깊은 소리는, 항우의 영웅 서사시와 우희의 숭고한 사랑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우싱궈의 오랜 예술적 동지인 극작가 린슈웨이의 전략도 주효했다. 창극 '패왕별희'는 춘추전국시대 초한 전쟁에서 유방에게 패한 항우의 이야기를 담은 동명 경극의 서사를 따르면서도 중국 역사에 생소한 한국 관객을 위해 두 장면을 추가했다. 항우가 유방을 놓쳐 패전의 원인이 된 '홍문연' 장면과 항우를 배신하고 유방의 편에서 그를 위기에 빠뜨린 한신의 이야기다. 또 맹인 노파 캐릭터를 만들었다. 맹인 노파가 구슬픈 목소리로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조로, 노파는 극 외부에서 극 안의 상황을 논평하고, 비범한 항우의 영웅성을 노래한다.
총 7장 구성으로 각 장마다 형식이 다채로워 극적 재미도 뛰어나다. 1장 '오강의 노래'에서는 맹인 노파, 아이, 검은 새가 등장해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내고, 2장 '홍문연'에서는 패권 싸움에 나선 남자들이 지략을 펼치는 장면이 '판소리 배틀' 하듯 펼쳐지기도 한다. 4장 '십면매복'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투를 상징적 영상과 '응축의 예술' 경극으로 박진감 넘치게 보여준다. 5장 '사면초가' 도입부는 비극적 상황을 해학적으로 풀어내 마당놀이가 언뜻 연상되며 6장 '패왕별희'는 항우와 우희의 사랑을 아름답고도 절도 있는 동작과 몸짓으로 표현해 감정을 고조시킨다.
7장 '오강에서 자결하다'에서는 항우의 영웅 서사시가 왜 불후의 신화로 남게 되는지를 전하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창극뿐만 아니라 경극의 매력도 동시에 전하는 이 작품은, 우리가 익히 알던 사자성어를 오감으로 재발견시킨다. 사면초가가 이렇게 비극적이고 낭만적인 두 남녀의 선택과 관련된 단어인줄 미처 몰랐다. 4월 1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