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이자 탁월한 엔지니어
1974년 입사 후 실무 두루거친 항공·운송 시스템 전문가이자 세계 항공업계 존경 받는 리더
위기는 기회… 몸소 보여줘
오일쇼크 넘고 중동노선 개척..외환위기 매각 후 재임차로 돌파
지구 16바퀴 돈 평창의 남자
유치위원장 자격 50회 해외출장..조회장 호소, IOC 여론 움직여
여론 악화… 순탄치않은 말년
자녀·배우자 폭언 등 불거지며 갑질논란에 대표이사서 물러나
1997년 괌 대한항공기 추락사고와 관련해 김포공항에 도착한 희생자들의 운구를 지켜보는 조중훈 선대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연합뉴스
향년 70세로 8일 별세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대해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일생을 '수송보국'에 바친 항공업계의 큰 별이었다"고 평가했다. 변변한 항공기 하나 제대로 없이 출발한 대한민국 항공산업을 오는 6월 '항공업계의 유엔 회의'로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할 수준까지 끌어올린 주인공이 바로 조양호 회장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고인은 국내외에서 모두 인정받는 항공·운송 분야 전문가로 평가된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지난 1974년 12월 대한항공에 입사했지만 정비·자재·기획·정보통신·영업 등 항공 관련 전 실무부서들을 두루 거친 덕분이다. 그룹 내부에선 "이런 경험은 조 회장이 유일무이한 대한민국 항공산업 경영자이자, 세계 항공업계의 리더들이 존경하는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천"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그는 항공·운송 관련 모든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하는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2000년 6월 스카이팀 창설식에서 항공동맹체 스카이팀을 주도했던 조 회장. 연합뉴스
■위기는 곧 기회… 역발상의 경영자
고인은 특히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탁월한 경영감각을 갖춘 경영자로 평가받는다. 조 회장이 대한항공에 입사했던 1974년 당시엔 1차 오일쇼크로 전 세계 항공사들이 타격을 받던 시기였다. 1978~1980년에는 2차 오일쇼크까지 겹쳤다. 미국 최대 항공사였던 팬암과 유나이티드항공조차 연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수천명을 감원하던 시기다. 그러나 조 회장은 원가는 줄이면서 시설과 장비가동률을 높이는 과감성을 보여줬다. 조 회장의 이런 경영감각은 대한항공이 오일쇼크 이후 거대 시장으로 부상한 중동 여객수요를 확보하고 신규 중동노선에 진출하는 발판이 됐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한 일화는 지금까지 회자된다. 대한항공은 예나 지금이나 빌려서 쓰는 항공기가 적다. 당시에도 대한항공이 운영하는 항공기 112대 가운데 임차기는 14대뿐이었다. 조 회장은 항공기를 매각 후 재임차(세일 앤드 리스백)하는 방식으로 현금을 확보해 대한민국을 옥죄던 외환위기 파고를 극복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고인의 경영감각의 절정은 1998년 보잉 737NG 주력 모델(보잉 737-800·보잉737-900) 27대 구매로 평가된다. 이 항공기는 대한항공이 글로벌 항공사로 우뚝 서는 기폭제가 됐다.
2003년 이라크전쟁과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9·11테러로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졌던 때조차 조 회장에겐 도약의 기회인 시기였다. 그는 차세대 항공기 A380 구매계약을 했다. 불과 3년 후 세계 항공시장이 항로를 되찾자 여타 글로벌 항공사들은 뒤늦게 차세대 항공기를 주문했지만 항공기 제작사는 갑자기 몰린 주문을 감당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이미 3년 전 사들인 차세대 항공기를 적기에 투입할 수 있었다.
2018년 1월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조 회장이 아들 조원태 사장과 평창올림픽 성화봉송에 나서고 있다. 조 회장은 1년10개월 동안 유치위원장 자격으로 무려 50회 가까이 해외출장을 다녔다. 연합뉴스
■평창올림픽 이어 IATA 총회까지
고인을 평가할 때 '평창'은 빼놓을 수 없는 단어다. 대한체육회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 추천을 수락한 조 회장은 1년10개월 동안 유치위원장 자격으로 무려 50회 가까이 해외출장을 다녔다. 그 이동거리만 지구 16바퀴(약 64만㎞)에 달한다. IOC 위원 110명 가운데 조 회장이 만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그의 평창 지지 호소는 IOC를 흔들었고,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으로 이어졌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는 그 자체만으로도 국가적 경사였지만, 그해 인천국제공항은 여객 수에서 파리 드골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을 앞지르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조 회장은 글로벌 항공산업에서 변방국이던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옮겨놓은 인물이다. 고인은 전 세계 120개국 287개 민간 항공사들이 회원인 국제협력기구인 IATA에서 최고 정책 심의·의결기구(집행위원회) 위원이자 11명의 전략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해왔다.
그는 세계 항공업계가 동맹체로 재편되고 있는 변화의 흐름을 읽고 2000년 델타항공·에어프랑스·에어로멕시코와 함께 글로벌 항공동맹체 스카이팀을 주도적으로 창설하기도 했고, 올해 사상 최초로 IATA 연차총회를 서울로 유치하기도 했다.
수백억원대 상속세 탈루 등 비위 의혹을 받은 조 회장이 2018년 6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14년 12월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항공기 회항을 지시한 '땅콩회항' 사건을 시작으로 한진그룹 오너가의 '갑질논란'이 불거졌고, 조 회장이 해당 사태에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이후 차녀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의 '물컵 갑질', 배우자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등의 폭행·폭언 등이 논란이 되면서 한진가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다. 급기야 조 회장은 지난달 대한항공 정기주총 결과에 따라 20년 만에 대한항공 대표이사에서 물러나야 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 회장은 평생 가장 사랑하고 동경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하늘로 다시 돌아갔다"며 "하지만 조 회장이 만들어 놓은 대한항공의 유산들은 영원히 살아 숨쉬며 대한항공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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