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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기생충… 그 다음이 더 기대되는 두 남자의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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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기생충… 그 다음이 더 기대되는 두 남자의 합
AP/뉴시스

영화 '기생충'이 개봉 첫 주 336만 관객을 모으며 '호호 콤비'의 위력을 입증하고 있다. 호호 콤비란 대한민국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를 일컫는 말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2003)부터 '괴물'(2006) '설국열차'(2013), '기생충'(2019)까지 둘의 인연은 20년이 훌쩍 넘어간다.

■황금종려상 수상, 영광의 순간

제72회 칸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이 "위대한 배우이자 동반자"인 송강호에게 무릎을 꿇고 황금종려상을 바치는 모습은 두고두고 회자될 순간이다. 봉 감독은 인터뷰에서 "포토콜에서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고 즉흥적인 행동이었다"고 했지만, 송강호는 봉 감독의 서프라이즈에 "매우 감동했고 고마웠다"고 밝혔다.

봉 감독에 따르면, 송강호는 올해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자로 언급됐지만, '기생충'이 최고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최종 논의에서 배제됐다. 중복 수상 불가 규정 때문이라는데, 이 얘기를 전해들은 송강호는 정작 "전혀 아쉽지 않았다"고 했다. "황금종려상 안에 다 포함돼 있는 거니까. 남우주연상 10개를 붙여도 못 받는 황금종려상 아닌가." 대신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수상의 요정'. 송강호는 전도연이 '밀양'(2007)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박찬욱 감독이 '박쥐'(2009)로 심사위원대상을, 그리고 봉준호가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데 크게 기여한 배우다.

칸영화제와 그 역사를 같이하는 스위스 제72회 로카르노영화제는 이런 송강호에게 아시아 배우 최초로 '엑설런스 어워드'를 수여한다. 오는 8월 봉 감독도 참석, 수상의 기쁨을 나눌 예정이다.

살인의 추억, 기생충… 그 다음이 더 기대되는 두 남자의 합
봉준호 감독

■지금은 창대하나 그 시작은 미약

둘의 인연은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봉 감독은 '모텔 선인장' 조연출이었고, 송강호는 당시 막 영화판에 건너온 조역배우였다. 봉 감독이 '초록물고기'(1997)를 보고 송강호에게 반해 일종의 팬 미팅을 한 뒤 송강호의 삐삐에 장문의 음성 녹음을 남겼는데, 이때 송강호의 뇌리에 봉준호가 각인됐단다. 송강호는 "나중에 좋은 작품이 있으면 작업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는데 진심이 묻어나는, 아주 정중한 음성 녹음이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봉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가 개봉한 2000년 말, '디렉터스 컷' 행사장 입구에서 둘은 재회했다. 봉 감독은 신인감독상을, 송강호는 남우주연상을 받으러 간 길이었다. 송강호는 회상했다. "우연히 만났는데, 마침 전날 '플란다스의 개'를 본 뒤라 재미있게 봤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봉준호도 그때를 떠올렸다. "강호 선배가 어느 장면에서 폭소를 터뜨렸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해주는데 고마웠다. 속으로 차기작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를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송강호는 그때 벌써 '쉬리'(1999) '반칙왕'(2000) '공동경비구역 JSA'(2000)로 흥행 배우 대열에 올라 있었다.

송강호는 지난 20년 둘의 가장 좋은 추억을 묻자 "'살인의 추억' 크랭크업 날"을 꼽았다. "6개월 찍고, 날씨 때문에 한 달 뒤 다시 모여 여중생 사체를 보는 마지막 장면을 찍었다. 봉준호가 맞은편 논두렁에서 걸어와서 아무 말 없이 나를 포옹하더라. 무언의 고마움을 표현한 게 아닌가. 지금도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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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배우

■'기생충'이후, 항해는 계속된다

영화 '기생충'은 극과 극의 삶을 사는 두 가족의 만남을 통해 자본가에게 기생해야 살 수밖에 없는, 혹은 그런 상황으로 내몰린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린다. 백수 가장 '기택'을 연기한 송강호는 영화 도입부 "참으로 시의적절하구나" "아들아, 넌 계획이 있구나"처럼 다소 연극 톤의 대사를 친다. "관객이 기택네 가족에게 몰입하기보다 관망하길 바라는 의도"였단다. "해고된 그 친구 다시 취직했겠지?"코미디에서 스릴러로 반전되기 직전, 물길의 방향을 바꾸는 이도 송강호다. 후반부에는 한 가장의 몰락을 단 한 컷의 표정 연기로 표현해낸다.

봉준호는 '배우' 송강호에 대해 "작품 자체의 성격이나 느낌을 규정짓는 힘이 있다"고 평한다. 독특하거나 기이한 상황도 송강호가 연기하면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송강호의 관객을 제압하는 능력이 제 시나리오 작업에도 영향을 미쳐, 운신의 폭을 넓게 한다." 그렇다면 송강호에게 '감독' 봉준호는 어떨까? 배우의 창의성을 자극한단다. "봉준호는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통찰이 있다. 봉준호만의 독창성, 완성도, 통찰력은 배우를 더 창의적으로 변하게 하며 즐기면서 연기하게 만든다."

봉준호는 차기작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영화 한편씩 준비 중이다. 한국영화는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공포적인 사건을 다룰 예정이다. 송강호는 공식적으로 출연 제의를 받은 바 없으나 "작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겠다"는 말을 봉 감독에게 들은 상태다. 둘의 협업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봉준호는 이날 "뭔가 이룬 감독이라서 좋으면서도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정확하게 49년 8개월 된 아직 40대 감독이다.(웃음) 칸은 과거가 됐으며, 빨리 잊히길 바란다.
흔히 말하는 경력의 정점이 될까봐 두렵다. 앞으로 계속 모험적인,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 그 모험의 동반자는 물론, 송강호다.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