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국 사람들은 왜 평소에도 등산복을 입고 다니나요?"라는 외국인의 질문에 "마음만 먹으면 오를 수 있는 산(공원)이 지척에 널려 있으니까요"라고 순간 기지를 발휘한 적이 있다. 여론조사에 근거한 답은 아니었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고 그간 생각해왔다. 하지만 내년 7월 1일 이후에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그때처럼 답하지 못할 것 같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일상에서 이용하고 있는 도시공원의 절반은 공공이 도시계획으로만 결정해 놓고 10년이 지나도록 부지를 사들이지 못하고 있는 소위 '장기미집행' 상태이기 때문이다.
20년 전 헌법재판소는 장기미집행 상태가 공공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판단했고, 이를 계기로 이듬해 도시계획법에 도시계획시설 결정으로 토지소유자의 재산권 행사를 제약할 수 있는 기간을 20년으로 한정하는 소위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일몰제'가 도입됐다.
일몰제 도입 이후 정부는 지방의회 해제권고제, 미집행시설 구분을 위한 도시관리계획 재정비, 장기미집행시설 해제신청제 등을 통해 일몰제가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장기미집행시설 문제를 바라보는 중앙정부 입장에서 '지자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지방사무(地方事務)'라는 인식이 강하게 느껴졌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부의 시각이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국공유지 실효 유예, 토지은행을 활용한 토지비축 등은 과거에 비해 국가의 적극적 개입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국가가 국고를 직접 투입해 적극적으로 공원을 매입해 주기를 기대했던 지자체 입장에서는 여전히 미흡한 대책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부정적 시각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말 발표한 기초생활인프라 국가최저기준에 미달되는 지역의 미집행공원을 중심으로 국가재정을 집중하는 정책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대책에서는 장기미집행시설 문제를 지자체는 물론 중앙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해결해 나아가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대책이 중앙부처 간의 공조(共助)에 그쳤다면 이번 대책은 장기미집행시설 문제에 대해 입장차가 있는 정부·지자체·시민단체 간의 공조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진일보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지자체의 사기 진작을 위해 정부가 공원조성 우수 지자체에 재정적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우수공원인증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또한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자 시민단체와 기업 등이 사회공헌을 통해 공원을 조성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할 예정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정부 대책이 일몰 위기에 처한 도시공원의 대규모 실효를 막는 데 여전히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내년 7월 1일 이후에는 더 이상 대규모 실효 사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공원과 같은 도시계획시설을 공급할 수 있는 방안도 마땅치 않다. 따라서 기반시설부담금 부과기준 강화, 재산세 중 도시계획세의 분리 운영, 공원 확충을 위한 녹지세 신설(가칭) 등 원인자 또는 이용자 부담 원칙에 기반해 도시계획시설 설치재원을 마련하는 방안도 반드시 함께 제시돼야 한다. 이번 대책을 계기로 1년여 남은 기간 정부와 지자체, 시민사회가 갈등관계를 넘어 도시공원의 실효를 최소화하기 위해 긴밀하게 공조해 가길 희망한다.
김중은 국토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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