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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와 현대무용, 그 경계를 허물다

국립오페라단, 히틀러가 가장 싫어한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초연
금지된 모든 것이 허용된 곳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욕망·파멸
클래식 음악 외에 재즈·록 도입
화려한 의상과 단순한 무대 등 부조화 통해 낯설게하기 극대화

오페라와 현대무용, 그 경계를 허물다
안성수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이 총연출과 안무를 맡았다.국립오페라단
오페라와 현대무용, 그 경계를 허물다
사기꾼 베그빅 부인은 경찰에 쫓겨 도망가다 마차가 고장난 곳에 도시를 건설한다.국립오페라단
오페라와 현대무용, 그 경계를 허물다
'마하고니'에 도착한 악동들. 알래스카에서 7년간 벌목공으로 일해 목돈을 손에 쥔 이들은 이곳 여자들에게 빠져 돈을 탕진한다. 국립오페라단
'지금까지 이런 오페라는 없었다. 이것은 오페라인가, 현대무용인가.' 국립오페라단이 20세기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을 국내 초연한다. 총연출 주인공은 안성수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이다. 안성수 예술감독은 "현대무용과 만난 블랙코미디식 엔터테인먼트 오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무용과 만난 블랙코미디 오페라

"오페라에 현대무용을 접목하고 음악을 시각화하기로 한 아이디어가 매우 놀라웠다. 세계 어느 무대에서도 볼 수 없는 멋진 시도가 될 것이다."

벌목공 '지미' 역할의 테너 국윤종의 목소리에서 흥분과 설렘이 묻어났다. 예술의전당 국립예술단체 연습동에서 만난 그는 "기존 오페라와 달리 이번 작품에는 익숙하지 않은 화음, 낯선 음들이 많이 등장한다"며 "성악가로서 매우 큰 도전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조화가 만들어내는 오묘한 조화가 굉장히 멋지다"고 자랑했다.

오페라 연출은 처음인 안성수 예술감독도 새로운 도전에 신이 난 듯 보였다. 안성수 예술감독은 "오페라 연출은 처음이라 다소 우려됐으나 지금은 '열린' 전문가들과 함께 즐겁게 연습 중"이라며 "오페라가 종합 예술이 맞더라"며 웃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제몫을 잘해줘 저는 조율만 하고 있다. 성악가들의 노래와 능청스런 연기가 일품이다. 또 음악과 내용의 부조화, 그 불협화음이 아주 매력적이다."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은 '서푼짜리 오페라'로 유명한 독일 출신의 미국 작곡가 쿠르트 바일과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콤비가 만든 작품이다. 대본의 주제와 음악 스타일 덕분에 1930년대 독일을 대표하는 문제작이자 화제작으로 손꼽혔다. 히틀러가 아주 싫어한 오페라로도 유명하다.

사기죄로 수배 중인 베그빅 부인이 허허벌판에 욕망의 도시 '마하고니'(그물망 도시)를 세우고,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은 '배가 터지도록 먹고 여자와 놀고 권투를 즐기며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마시는 것'을 권하는 이 도시에서 흥청망청 즐기다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쿠르트 바일은 자본주의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 이 작품에 당시 유행하던 재즈 등을 도입해 '클래식과 엔터테인먼트 음악의 하이브리드'라는 평을 이끌어냈다. 오페라의 전통 위에 스윙이나 블루스, 폭스 트로트 등 재즈를 얹고 당시 카바레에서 흔히 연주되던 대중음악도 사용했다. 오페라 오케스트라에 잘 편성하지 않는 색소폰, 밴조, 반도네온 등의 악기도 과감히 도입했다.

■부조화로 그려낸 현대인의 자화상

안성수 예술감독이 이번 작품을 '블랙코미디'로 상정한 것도 쿠르트 바일의 음악 때문이다.

"바그너의 클래식 오페라와 확연히 다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처럼 클래식이 나오다가도 리듬이나 조성이 재즈처럼 바뀌고, 화성이나 리듬이 뭉개진다. 작곡가가 익살스럽고 장난스럽다. 먹다가 죽는 장면인데 배경음악이 아주 아름답고, 권투하다 죽는 장면에서는 아주 경쾌한 음악이 흐른다." 우리에게 친숙한 클래식 음악인, 바다라체프스카의 '소녀의 기도'도 재즈적 요소가 가미된 편곡으로 낯선 느낌을 전한다. 안성수 예술감독은 "'알라바마송'은 록밴드 도어즈부터 데이비드 보위, 마릴린 맨슨 등이 리메이크했을 정도로 유명하다"며 "쿠르트 바일의 음악에 맞춰 안무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즐거워했다.

무대는 미니멀하게 꾸몄다. 대신 의상이 화려하다. 안성수 예술감독은 "원작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중반이지만, 우리는 자본주의가 갓 태동하던 시기로 눈을 돌렸다"며 "유럽의 식민지 개척과 중상주의가 싹을 띄우던 바로크시대로 아예 거슬러 올라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려한 바로크풍 의상을 입은 성악가들과 별개로 무용수들은 낯선 음, 소리, 리듬을 춤 동작으로 시각화하고 형상화한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명한 '온나나나춤'도 선보인다. "무용수들은 마치 광대와 같다. (오페라 속) 성악가들을 놀리고, 때로는 관객들에게 '무슨 말인지 알겠냐'며 묻기도 하면서 극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안성수 예술감독은 "춤과 내용은 별개며 오히려 음악에 맞게 흐른다"고 했지만 이용숙 드라마투르기는 "내용과 춤이 은근히 잘 맞다"고 말한다.

안성수 예술감독은 "지루하지 않고 아주 재미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무대를 즐기다보면 어느새 오페라가 끝날 있을 것"이라며 "음악과 몸짓으로 느낀 감각의 세계가 작품에 대한 사유의 세계로 전환되는 것은 관객의 몫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극 초반, 베그빅 부인은 노래한다. '고생은 안 하고/내 맘대로 사는 게/모든 인간의 로망 아니겠어?/이게 황금의 본질이야'. 극 후반, 도시의 남은 자들은 합창한다. '허리케인 따위 필요 없어/태풍도 불필요해/우리 인간도 얼마든지/태풍이 일으키는 공포를 일으킬 수 있으니까' 11~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