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역사
금융의 역사/ 윌리엄 N.괴츠만/ 지식의날개
금융은 많은 이들에게 그저 어렵고 복잡한 개념이거나, 탐욕의 상징, 혹은 지난 2008년의 금융위기처럼 누군가의 삶을 짓밟는 악랄한 존재로 다가온다. 그러나 금융이야말로 인류사회를 물질적·사회적·지적으로 진보하게 한 가장 중요한 기술이며 지난 5000년의 역사가 이를 입증한다. 세계적인 금융학자이자 고고학자인 저자는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금융의 역사를 문명이라는 거대한 주제와 함께 살핀다. 놀랍게도 금융은 문명의 조력자일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선 문명을 낳은 원천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금융'이라는 차갑고 딱딱한 주제를 한 편의 다큐영화처럼 흥미롭게 풀어놓는다. 유물 발굴지를 누비는 열정적인 고고학자들과 믿기 힘들 정도로 고차원적인 수학을 활용한 고대의 은행업자들, 광활한 영토를 정교한 금융제도로 다스린 통일중국의 관료들, '바람 장사꾼'이라고 불렸던 300년 전 증권 중개인들의 이야기가 실감 나게 펼쳐진다. 또 금융이 모두에게 이로운 도구로 쓰이기 위해 앞으로의 금융 혁신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끊임없이 고찰하게 만든다.
금융의 역사를 살펴보면 흥미진진하다. 예컨대 문자가 고대 서남아시아에서 발명된 목적은 무엇보다도 금융계약을 기록하는 데 있었다. 시간과 위험을 정교하게 다룬 모형이 최초로 출현하는 데도 금융이 핵심 역할을 했다. 아테네가 황금기를 맞은 것은 소크라테스 덕분이기도 하지만 금융소송 덕분이기도 하다. 로마가 정교한 금융조직을 갖추지 못했다면 막대한 부를 수백 년 동안 지탱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대 중국 문명에선 독자적으로 발달한 금융 전통에 따라 통치자가 광대한 제국을 하나로 묶어 냈다. 이처럼 쐐기문자는 대출을 기록하기 위해 발명됐고 수학은 경제적 가치를 계량하고 평가하기 위해 출현했으며 최초의 법률은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됐다. 금융의 발명으로 미래의 가치를 현재로, 현재의 가치를 미래로 옮길 수 있게 되자 인간의 사고수준은 더욱 고도화됐고 문명은 찬란한 진보를 거듭했다.
금융기술이란 결국 사람이 만들어 낸 타임머신일 뿐이다. 다만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돈을 시간여행시킨다. 그래서 사람이 현재 처한 경제 상황과 미래에 처할 경제 상황을 바꿔 놓는다. 또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도 바꾼다. 인간은 금융 덕분에 미래를 상상하고 계산하는 능력을 키웠다. 더불어 과거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계량하는 능력도 키워야 했다. 역사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기본 근거이기 때문이다. 금융 때문에 사람은 점점 더 시간에 매인 존재가 되었다. 금융구조는 시간 차원의 가능성 안에 존재하고 가능성을 형성한다. 역사는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현재의 척도이며 미래의 지침으로서도 중요하다. 세계가 하나의 집단적 세계문명을 향해 움직이고 점점 더 많은 인구가 복잡한 사회에 참여하게 된다면 금융도구도 이같은 추세를 따라잡아야 한다. 그리고 금융의 과거를 통째로 살펴보면 적절한 교훈이 드러난다.
역사에는 위험분담과 시점 간 가치이동을 다루는 금융 방식이, 그리고 이런 도구가 여러 가지로 변형되면서 다양한 사회에 채택되는 과정이 나온다. 과거에 거둔 성공을 목적에 따라 고치고 과거의 실패를 보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배우는 것은 순전히 우리의 자유다. 하지만 5000년에 걸쳐 금융을 혁신한 경험에 따르면 금융과 문명은 앞으로도 영원히 밀접하게 얽힐 것이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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