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일본이 결국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림에 따라 직격탄을 맞게 됐다. 앞서 수출 규제 대상이 된 소재 3개 품목과 더불어 대부분의 공정에서 사용되는 소재와 장비의 일본 의존도가 높아서다. 이에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이미 지난달부터 가동한 비상경영체제를 더욱 강화하면서 대응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다만 당장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더라도 향후 생산라인 투자 계획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日 직격탄 대응 총력
2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이 현실화되자 시급한 소재·장비 현황을 다시 점검하고, 재고 확보에 나섰다.
반도체 업계에선 경우 제조 공정의 기초 소재인 실리콘 웨이퍼를 비롯해 이미지센서, 검사 장비 등의 품목이 추가 규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실리콘 웨이퍼의 경우 일본 수입 품목 가운데 규모가 크고 일본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품목이다. 전 세계 생산량 가운데 일본의 신에츠와 섬코가 각각 27%, 26%의 점유율로 선두업체로 꼽힌다. 국내업체 SK실트론도 생산하지만 점유율은 9%로 5위 수준이다. 국내기업의 공급 물량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일본에서의 수입이 중단되면 생산 차질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삼성·LG디스플레이가 사용하는 장비들도 대거 해당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광기·증착기·세척기 등 관련 디스플레이 장비 82.7%를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LG디스플레이는 테스크포스를 꾸리고 일본산을 대체할 만한 국내외 업체를 찾는 데 나섰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우선 협력사별로 일본산 소재를 쓰는 부품·소재부터 전수 조사한 뒤 해당 소재의 재고를 최대한 확보하겠단 방침이다.
특히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생산에 필수적인 섀도마스크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 업계에선 해당 소재의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섀도마스크는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는 얇은 철판으로, 유기물이 기판 위 특정 위치에 증착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소재다. 현재 일본 다이니폰프린팅(DNP), 토판프린팅(TOPPAN Printing) 등 두 회사가 사실상 공급을 독점하고 있다. 또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제작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TAC 필름 역시 국내 업체들이 일본산을 쓰고 있어 추후 물량 확보가 시급한 소재로 꼽힌다.
문대규 순청향대 디스플레이·신소재학과 교수는 "섀도마스크는 소모품이라서 재고 확보가 안되면 공장을 멈추게 될 수밖에 없다"라면서 "대체기술이 있지만, 현재 적용할 수준까진 안 된다"고 우려했다.
■해법찾기 난항·투자 차질 우려
기업들이 이미 지난달부터 대응책 수립에 나섰지만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게다가 지난달부터 이미 수출 규제 품목이 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칭가스·포토리지시트 등 3가지 품목도 대체 제품을 찾는 방안을 놓고 업계가 여전히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산화 등 여러 방안을 고려 중이지만 단기간에 완전한 대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규제 품목 제품을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공정에만 최소한으로 쓰면서 확보한 재고를 아껴 쓰고 있는 상황이다. '마른 수건' 짜내듯이 사용량을 조절해 최대한의 효율을 내면서 버티고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향후 생산공장 투자 계획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위해 올해 말 중국 시안 2공장을 완공할 예정이고, 국내 평택 2공장은 내년 중 건설을 완료할 계획이다. 또 파운드리 사업 부문에선 화성에 극자외선(EUV) 공장을 올해 완공, 내년 상반기에 가동할 예정이다.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향후 중소형 및 대형 OLED 생산 라인 확충을 하는 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파주 OLED 생산 공장에 3조원을 추가 투자하기로 결정한 뒤라 더욱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신규 투자 공장에 생산 장비를 온전히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출 규제에 직면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대책을 찾아야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3개 품목을 수출 규제해도 난리가 나는 판국에 화이트리스트 배제 품목은 너무나 광범위하기 때문에 업체 자체적으로 완벽한 대응을 하는 건 무리일 수 밖에 없다"며 "(부품·소재를) 국산화하는 일도 상당히 오랜 시일이 걸리는 일이라서 당장 묘수를 찾기가 힘들 것"이라고 했다.
gmin@fnnews.com 조지민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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