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 장면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색과 지상·천상계를 상하로 나눈 무대 세트가 인상적이다. 유럽에서도 '투란도트' 역으로 활동 중인 이윤정의 고음 아리아는 시원시원했고, 독일 도르트문트 오페라극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테너 이정환의 목소리에는 '칼라프 왕자'의 진심이 묻어났다. 2001년부터 가족 오페라를 선보여온 예술의전당이 2년 만에 내놓은 가족 오페라는 푸치니의 유작 '투란도트'다. 푸치니가 "이제까지 내 오페라들은 다 버려도 좋다"고 할 만큼 자신감을 보인 작품이다.
이번 공연은 러닝타임을 2시간(인터미션 제외)으로 압축해 오페라 초심자들이 보기에 부담이 적다. 친숙한 동양적 소재에 드라마의 개연성이 높아 듣는 재미뿐만 아니라 보는 재미도 있다. '투란도트'는 고대 중국 베이징의 냉혹한 공주 투란도트와 사랑을 얻기 위해 그녀가 낸 세 가지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칼라프 왕자의 이야기. 성악가 폴 포츠가 불러 더 유명해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가 대표 아리아다. 국내 오페라 계에서 보기 드문 젊은 여성 연출가 표현진(39)의 작품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무대 구성, 캐릭터 등을 달리 했는데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12지신'을 형상화한 관료들이 대표적. 세 명의 관료 '핑, 팡, 퐁'은 마치 영화 속 감초처럼 활약한다.
짝사랑하는 칼리프 왕자를 위해 희생을 마다않는 류(소프라노 김신혜·신은혜)의 아리아 '나의 말을 들어주세요'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첫 번째 아리아로 손색없다. 비록 투란도트의 아름다움에 반해 무모한 도전에 나섰지만, 간절히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거는 칼라프 왕자의 용기와 선택도 인상적이다. '얼음 공주' 투란도트가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구혼자들을 가차 없이 죽이는 잔혹한 행동은 '옛날, 이 궁전에서' 아리아를 통해 설명되는데, 그녀의 사연은 드라마에 개연성을 높인다.
늘 그렇듯, 폭력의 순환을 끊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사랑이다. "이 젊은이의 이름을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Amor)!" '투란도트'의 마지막 대사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18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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