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드레드 에이커 오너이자 와인메이커 '제이슨 우드 브릿지' 인터뷰
로버트 파커가 지난 17년간 22번이나 100점 만점 준 나파밸리 최고의 와인
포도 한알한알 수확하고 손으로 압착해 만들어.. 강렬하고 부드러운 맛 특징
[파이낸셜뉴스] 카시스 향을 기반으로 한 진한 아로마에 혀를 두껍게 발라버리는 크리미한 타닌…. 온갖 후각세포를 화들짝 놀래키면서도 생글생글 웃는 이 와인, 도대체 정체가 뭐야?
'미국 나파밸리의 이단아', '와인업계의 괴짜'로 불리는 제이스 우드 브릿지가 그의 보석같은 와인 '헌드레드 에이커(Hundred Acre)'를 품에 안고 지난 20일 한국을 찾았다.
헌드레드 에이커는 제이슨이 지난 2000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나파밸리를 대표하는 컬처와인으로 와인시장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와인'으로 통한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그의 와인에 무려 22번이나 100점 만점을 줬다. 미국 나파밸리에서 100점 만점을 가장 많이 얻은 와인으로 스크리밍 이글, 할란 이스테이트, 콜긴 등을 이미 한참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헌드레드 에이커는 제임스가 1998년 나파밸리, 세인트헬레나에서 와이너리를 설립해 2000년부터 '카일리 모르간 9 에이커', '퓨앤파 비트윈 5 에이커', '아크 45 에이커' 등 연간 1000박스(1만2000병)를 생산하고 있다. 이같은 유명세가 갈수록 더해지면서 현재 그의 와인을 받기 위한 대기자가 5000명이 넘는다.
"제 와인은 디켄팅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병을 비우는 순간까지 와인이 변해가는 모습을 천천히 즐겨보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와인의 향이 갈수록 강해지는 것을 느낄수 있을겁니다. 나는 와인을 아주 퍼펙트하게 만듭니다. 제 와인은 와인 잔에서도 3주를 버티는 힘이 있습니다."
제임스가 와인 잔을 한 손으로 감아쥔채 다른 손으로 렉을 살살 돌리며 말문을 열었다. 마치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듯 아주 천천히 낮은 톤의 음성으로 그의 와인과 와인에 대한 철학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어떻게 공기와 접촉한 와인의 향기가 3주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그 근거를 물었다.
제이슨은 "헌드레드 에이커는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햇살을 머금은 포도알이 아로마와 산도, 타닌이 가장 조화를 이루는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포도를 따고 과즙을 짜내 와인으로 만든다"며 "이 때문에 강력한 힘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아주 특별한 와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은 포도알이 언제 가장 좋은 와인으로 탄생하는지를 알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나는 완벽한 포도가 아니면 절대 따지 않는다. 수확 단계에서 파셀을 나누고, 그 파셀에서 다시 포도나무를, 포도나무에서 포소송이와 포도알 하나까지 구분해서 따고 있다. 심지어 송이가 아닌 한알한알 따서 수확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보르도의 특급 와이너리인 레오빌 라스카스를 비롯한 극소수의 와이너리가 최근들어 적외선을 사용해 잘익은 포도를 선별해 사용하고 있지만 오너 자신이 직접 육안으로 포도가 제대로 익었는지 직접 확인하며 일일히 한알한알 채취해 와인을 담근다니…. 이 때문에 헌드레드 에이커는 포도 수확하는데 족히 3~4주가 소요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일반 와이너리들은 1주일 또는 2주일내에 수확을 끝낸다.
제이슨은 "싱글빈야드(단일 포도밭)에서 까베르네 소비뇽 100%의 와인을 빚는 것은 히말라야의 험준한 고봉인 K2 산등성이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것과 같다"며 "일단 포도의 품질이 아주 좋아야 하며 이를 처리하는 굉장한 기술도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최고의 포도를 얻기 위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매일 매순간마다 체크를 하고 있다.
헌드레드 에이커 와인이 특별한 점은 또 있다. 수확부터 숙성까지 다른 와이너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헌드레드 에이커는 수확한 포도를 손으로 압착해 주스를 짜낸다. 일반 와이너리가 기계를 통하거나 중력방식을 택해 주스를 짜내는 것과 달리 완전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포도가 가진 성질 그 자체를 와인에 최대한 담아내기 위해서다.
헌드레드 에이커는 와인 숙성기간동안 래킹(Racking)을 하지 않는다. 래킹은 와인의 찌꺼기를 걸러내기 위해 숙성중인 오크통에서 다른 오크통으로 옮겨담는 작업이다.
제이슨은 "래킹 작업은 오크통에서 와인을 펌핑해야 하는데 펌핑을 하면 와인이 압력을 받아 흔들려 와인 고유의 개성을 잃어버릴수 있다"며 "더구나 래킹 작업이 이뤄지는 공간은 밀폐된 공간이어서 위생적인 측면에서도 좋지 않기 때문에 래킹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연의 좋은 기운을 머금은 포도가 와인으로 바뀌어 잘 숙성되고 있는데 여기에 인위적인 힘이 가해지면 와인이 다치게 된다는 것이었다.
제이슨은 "와인을 만드는 일은 자연이 90%의 역할을 하고 와인 메이커는 단지 10%만 담당할 뿐"이라며 "와인에 그 어떤 인위적인 요인을 가하지 않는게 내 와인의 철학이고, 지금까지 이같은 방법으로 와인을 만들어왔으며, 이게 와인을 만드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나에게 세컨드 와인은 없다"며 "와인을 빚을때 가장 최고의 재료만 사용하고 내가 가진 모든 열정을 다해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헌드레드 에이커는 다른 와이너리와 다르게 세컨드 와인을 만들지 않는다.
이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서빙된 '헌드레드 에이커 카일리 모건(2016)'은 차분하게 절제된 아로마와 부드러운 타닌이 일품이었다. 또 '헌드레드 에이커 아크(2016)'은 신맛이 약간 도드라지는 풍부한 아로마에 다양한 부케향이 매혹적이었다. 2016년 빈티지로 아주 어린 와인임에도 타닌이 잘 다스려져 고급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줬다. 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헌드레드 에이커 프레셔스(2009)는 카시스 향을 기반으로 한 아로마가 호사스럽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였다.
더 복합적이고 바닐라 향도 강하고 부케향도 뛰어났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타닌은 잘게 쪼개진채 입안에 두껍게 내려앉는 느낌이 환상적이었다.
완벽한 포도만 한알한알 골라 수확해 손으로 과즙을 짜고 발효시킨 후 모든 인위적인 요소를 배제한채 자연의 힘에 맡겨 탄생한 와인의 힘은 정말 놀라웠다.
전세계 와이너리들이 첨단 기술을 경쟁적으로 도입하며 상업성 강한 와인에 치중하고 있는 요즘, 세상은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와인을 만들고 있는 제이슨 우드 브릿지를 '괴짜', '이단아'로 부르는게 과연 맞는 표현일까.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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