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부임 후 우연히 신과 함께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이 영화는 정의롭게 살다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귀인(貴人)이 지나온 삶에 대해 사후 49일 동안 차사의 변호를 받으며 검사인 판관과 재판장인 대왕을 상대로 7가지의 재판을 거쳐 통과하면 환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작가의 상상 속 여러 요소들이 의외로 국가 연구개발(R&D) 예비타당성조사(예타)와도 유사한 면이 많다는 게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된 이유다. 귀중한 R&D 사업 기획안이 주요쟁점에 대해 예타 착수 후 6개월 동안 주관부처의 소명을 더해가며 조사기관과 자문위원을 상대로 과학기술성, 정책성, 경제성 등 3가지의 타당성 조사를 거쳐 최종 통과해야 R&D 사업으로 탄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비슷한 맥락 속에서 현장 체감도를 더욱 높이고자 추진된 이번 현장 중심의 R&D 예타 제도 개선의 방향성에 대해 언급하겠다.
첫째, 장벽이 아닌 관문으로서의 예타. 장벽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방해요소지만 관문은 출입증이나 티켓 등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에게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 각 사업유형에 맞는 자격요건을 갖추면 통과 가능한 관문이 되도록 R&D 예타를 개선하겠다. 복잡하고 불확실성이 높은 R&D의 특수성을 반영해 도전·혁신형 R&D는 경제성 평가 비중을 5% 이하로 대폭 낮춰 과학기술적 타당성을 중점으로 조사하고, 성장형 R&D는 경제적 타당성을, 기반조성형 R&D는 정책적 타당성을 중점으로 조사할 계획이다. 자격을 갖춘 귀인에 해당하면 당연히 통과하는 R&D 예타가 되도록 하겠다.
둘째, 조사의 전문성과 평가의 합리성을 제고한 체계화된 예타. 여러 형태의 사업을 전문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예타 조사기관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외에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을 추가로 지정하겠다. 다양하고 특화돼 가는 R&D 추세에 맞춰 판관을 추가하는 것이다. 조사기관의 다원화를 통해 사업특성별 조사의 전문성을 강화하면서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국가연구개발사업평가 총괄위원회 산하에 분야별 전문가 분과와 사업별 종합평가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조사와 분리해 운영함으로써 최고의 현장 전문가가 예타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겠다. 대규모 R&D의 생사여탈을 결정하는 판결을 판관이나 대왕이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배심원을 추가해 전문성과 합리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셋째,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열린 예타. 예타 중 조사기관, 자문위원, 주관부처 간 대면기회를 추가하고 온라인 플랫폼인 예타로를 활용해 현장 연구자들의 의견도 수렴해 조사에 반영할 계획이다. 아울러 기획안 완성도에 따른 맞춤형 사전컨설팅 운영을 통해 지원의 실효성도 더욱 높이고자 한다.
즉, 귀인과 차사의 목소리를 최대한 듣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반영하는 판결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국가재정의 효율화라는 예타 본연의 목적은 견지하되 충실한 기획으로 자격을 갖춘 R&D 사업들이 예타 관문을 통과해 연구자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도록 주관부처, 조사기관과 함께 같은 눈높이에서 돕고 공감하는 과기혁신본부가 되도록 하겠다. 살려야만 하는 귀인은 반드시 환생토록 해야겠다는 게 차사, 판관, 대왕, 배심원, 지켜보는 관객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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