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구자경 LG 명예회장. LG 제공
[파이낸셜뉴스] 오늘날 LG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기틀을 마련한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향년 94세로 14일 영면했다.
구 명예회장은 부친인 고(故) 구인회 창업주 도와 회장 취임 전까지 20년간 생산현장 지킨 데 이어 지난 1970년 LG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 이래 재임 25년간 매출액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약 1150배 성장을 이뤄냈다.
■LG 비약적 성장 이끈 '참 경영인'
구 명예회장은 고 구인회 LG 창업주의 장남으로, 지난 1925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구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 초기이던 1950년 스물 다섯의 나이에 모기업인 락희화학공업주식회사에 입사해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은퇴할 때까지 45년간 기업 경영에 전념하며 원칙 중심의 합리적 경영으로 LG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고 명예롭게 은퇴한 '참 경영인'이었다.
1970년 1월, 취임 당시의 구자경 명예회장. LG 제공
구 명예회장은 지난 1970년 LG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 후,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나라 안팎의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면서 화학·전자산업 성장을 이끈 것은 물론 선진 기업 경영을 실천한 기업인으로 평가 받는다.
그는 과감하고 파격적인 경영 혁신을 추진해 자율경영체제 확립, 고객가치 경영 도입, 민간기업 최초의 기업공개, 한국기업 최초의 해외 현지공장 설립 등 기업 경영의 선진화를 주도한 혁신가로도 꼽힌다.
구 명예회장이 25년 간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LG그룹은 매출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약 1150배 성장했다. 임직원 수도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증가했다. 주력사업인 화학과 전자 부문은 부품소재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해 원천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를 이루며 지금과 같은 LG그룹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기술 강조...화학·전자산업 강국 기틀 마련
구자경 명예회장은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의 신념으로 기술 연구개발에 승부를 걸어 우리나라 화학·전자 산업의 중흥을 이끈 경영자였다.
구 명예회장은 생전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배우고, 거기에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결합하여 철저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명예회장에 재임하던 25년 동안에도 '연구개발의 해', '기술선진', '연구개발 체제 강화', '선진 수준 기술개발' 등 표현은 달라도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기술'을 경영 지표로 내세웠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 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0년대 중반 럭키 울산 공장과 여천 공장에는 공장이 채 가동되기도 전에 연구실부터 만들어졌다. 특히 지난 1976년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금성사에 전사적 차원의 중앙연구소를 설립토록 했다. 1979년에는 대덕연구단지 내 민간연구소 1호인 럭키중앙연구소를 출범시켰다. 1985년에는 금성정밀, 금성전기, 금성통신 등 7개사가 입주한 안양연구단지를 조성하는 등 회장 재임기간 동안 70여 개의 연구소를 설립했다. 같은해 우리나라 최초의 제품시험연구소도 개설했다.
이처럼 강력하게 추진한 기술 연구개발의 결과로 금성사는 19인치 컬러TV, 공냉식 에어컨, 전자식 VCR, 슬림형 냉장고 등 국내 최초제품 잇달아 선보이며 산업 성장을 주도하는 기업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구 명예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생산기업을 시작하면서 항상 마음에 품어온 생각은 우리 국민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제품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라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구 명예회장(오른쪽 세번째)이 미국 현지생산법인(GSAI)에서 생산된 제1호 컬러TV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LG 제공
■선진 경영 개척, 고객중심 경영 효시
구 명예회장은 기업의 외형적 성장뿐만 아니라 선진 기업으로 도약하 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과감하게 실천에 옮긴 재계의 혁신가였다.
구 명예회장은 1970년대에 잇따른 기업공개로 우리나라 초기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고, 민간 기업의 투명경영을 선도했다.
당시 기업공개를 기업을 팔아 넘기는 것으로 오해해 이를 우려하는 분위기였고, 일부 임원들은 기업공개를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구 명예회장은 기업공개가 앞으로 거스를 수 없는 큰 흐름이 될 것이며, 선진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믿음을 꺾지 않았다.
이에 지난 1970년 2월 그룹의 모체 기업인 락희화학이 민간 기업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곧 이어 전자 업계 최초로 금성사가 기업공개를 하면서 주력 기업을 모두 공개한 한국 최초의 그룹이 됐다. 이후 금성통신(1974), 반도상사·금성전기(1976), 금성계전(1978), 럭키콘티넨탈카본 (1979) 등 10년간 10개 계열사의 기업공개를 단행해 안정적인 자금 조달을 통한 도약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구 명예회장은 기업의 활동 지평을 세계로 확장시켜, 재임하는 동안에만 50여 개의 해외법인을 설립했다. 특히 지난 1982년 미국 알라바마주의 헌츠빌에 컬러TV 생산공장을 세웠다. 이 공장은 국내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설립된 해외 생산기지였다. 이처럼 해외 투자에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독일의 지멘스, 일본 히타치·후지전기·알프스전기, 미국 AT&T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한 합작 경영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이를 통해 빠른 속도로 선진 기술과 경영 시스템을 습득할 수 있었고, LG는 세계의 중앙으로 활동 무대를 과감하게 확장시켰다.
LG는 지난 1995년 신년 시무식을 기해 그룹 명칭을 ‘럭키금성’ 에서 ‘LG’로 바꾸고, 새로운 심벌마크를 제정하는 등그룹의 CI를 발표했다. LG 제공
또 구 명예회장은 전문경영인 중심의 자율과 책임경영 체제 도입하고, 고객중심 경영이념 발표 등 혁신을 통해 경영 선진화를 주도했다. 회장 1인의 의사결정에 의존하는 관행화 된 경영체제를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선진화된 경영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자율과 책임경영을 절대절명의 원칙으로 내세웠다. 1990년 2월에는 '고객가치 경영'을 기업 활동의 핵심으로 삼은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인간존중의 경영'을 선포했다.
■경영이 인생 모범 보여준 재계 큰 어른
구 명예회장은 LG를 이끈 경영인으로서 보여준 성과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는 처음으로 스스로 회장직을 후진에게 물려주어 대한민국 기업사에 성숙한 후계 승계의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
또 인재양성을 위한 사회 공익활동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스스로는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대신 자연을 벗삼아 간소한 여생을 보내며 은퇴한 경영인으로서의 삶으로도 재계에 귀감이 되며, 사회의 존경을 받았다.
구 명예회장은 지난 1995년 2월,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는 국내 최초의 대기업 '무고(無故) 승계'로 기록되며 재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글로벌화를 이끌고 미래 유망사업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젊고 도전적인 사람들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이들이 주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었다.
지난 1995년 2월 회장 이취임식에서 고 구자경 명예회장(왼쪽)이 고 구본무 회장에게 LG 깃발을 전달하고 있다. LG제공
구 명예회장이 퇴임 후 2000년대 들어 3대 57년간 이어온 구·허 양가의 동업도 '아름다운 이별'로 마무리했다. 57년간 사소한 불협화음 하나 없이 일궈온 구씨, 허씨 양가의 동업관계는 재계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사업매각이나 합작, 국내 대기업 최초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 등 모든 위기 극복과 그룹 차원의 주요 경영 사안은 양가 합의를 통해 잡음 없이 이뤄졌다.
구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철저하게 평범한 자연인으로서 살았다. 구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구인회 창업회장이 생전에 강조한 '한번 믿으면 모두 맡겨라'라는 말에 따라 은퇴한 이상 후진들의 영역을 확실히 지켜주는 것이었고, 어려울 때일수록 그 결심을 철저히 지켰다.
구 명예회장은 슬하에 장남 고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해 구훤미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고문, 구미정씨, 구본식 LT그룹 회장 등 4남 2녀를 두었다.
부인인 고 하정임 여사는 지난 2008년 타계했다.
고 구자경 명예회장이 생전 연암대 한 켠에 마련된 조립식 건물 내의 작은 사무실에서 독서하고 있다. 구 명예회장은 이 정도면 과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L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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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in@fnnews.com 조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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