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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 불투명한 미래 속 ‘동시대 시선 담은 연극’ 5편 선봬 "80년 광주 그리고 그 이후의 세대들"

5·18 40주년을 맞아 시대아픔을 기억하고 과거로부터 나아가는 작품들 구성
30대 젊은 창작자들 시선으로 역사적 아픔 바라보는 공연도

남산예술센터, 불투명한 미래 속 ‘동시대 시선 담은 연극’ 5편 선봬 "80년 광주 그리고 그 이후의 세대들"
남산예술센터 2020 시즌 프로그램 발표 /사진=fnDB

남산예술센터, 불투명한 미래 속 ‘동시대 시선 담은 연극’ 5편 선봬 "80년 광주 그리고 그 이후의 세대들"
'휴먼푸가' 배요섭 연출 /사진=fnDB


[파이낸셜뉴스] 5.18 광주 40주년을 맞아 시대아픔을 기억하는 작품부터 1930~50년대 만주, 80년대 한국, 기독교 역사 등 30대 젊은 창작자들 시선으로 역사적 아픔을 바라보는 공연까지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가 올해 동시대 시선을 담은 연극 5편을 선보인다.

남산예술센터는 21일 ‘남산예술센터 2020 시즌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극장의 존속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올해의 시즌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지난 2018년 서울예대는 서울시와 맺고 있던 남산예술센터 임대계약에 대한 종료를 2020년 12월로 통보했다.

우현 극장장은 “2020년은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며 “극장을 둘러싼 논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는 어떻게든 결론이 날 것이라서 9월까지 5편의 작품만 올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의 프로그램을 “‘80년 광주 그리고 그이후의 세대들’로 요약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지난 몇년 간 블랙리스트, 세월호, 미투운동을 통해 기존 세대의 가치관이나 가부장주의, 관료주의에 대해 젊은 세대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그 방향성을 제시했다. 가뜩이나 미래가 불투명한 이 극장에서 올해는 어떤 작품을 올릴지 논의했는데, 이렇게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담게 됐다.”

주요 작품으로 △지난해 시즌 프로그램이자 2019년 ‘올해의 연극 베스트 3’(한국연극평론가협회 주관)에 선정된 ‘휴먼 푸가’(공연창작집단 뛰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바탕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럽에서 최초로 무대화한 ‘더 보이 이즈 커밍(The boy is coming)’(폴란드 스타리 국립극장)을 꼽을 수 있다.

또 △역사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진실을 묻는 ‘왕서개 이야기’(극단 배다) △광장을 통해 개인이 겪은 역사적 아픔을 동시대가 공유하는 ‘아카시아와, 아카시아를 삼키는 것’(이언시 스튜디오) △기독교 예배의 연극성을 부활시켜 극장으로 가져온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쿵짝 프로젝트)가 있다.

지난해 작품들이 우리 사회 대규모 사회적 참사에 주목했다면, 올해 프로그램은 가해와 피해의 역사 속에 놓인 인간을 고찰하며, 시대가 그 아픔을 어떻게 치유해야할지,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공유할지를 고민한 것이 특징이다.

■ 5월, 광주를 기억하는 한국&폴란드 두 개의 시선

우선, ‘휴먼 푸가’(원작 한강/연출 배요섭)를 5월 13~24일에, ‘더 보이 이즈 커밍(The boy is coming)’(원작 한강/연출 마르친 비에슈호프스키)을 5월 29~31일에 무대에 올린다.

두 작품은 모두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토대로 제작됐다. 배요섭 연출은 “광주항생 40주년을 맞아 ‘휴먼푸가’를 올리게 돼 감사하다”며 “우연찮게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창작집단 뛰다의 마지막 작품이 ‘휴먼푸가’가 됐다. 광주의 역사적 아픔과 맞닿아서 아주 특별한 순간이 될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연극과 삶이 어떻게 서로 견제하고 만나는지 질문하고 답해왔는데 그것이 첨예하게 대립한 작품이 ‘휴먼푸가’다. 광주항쟁이라는 역사적 경험은 계속 저를 따라다녔던 질문 중 하나다. 이를 연극이라는 방식을 통해 말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다. 연극이 우리 삶에 있어서 잊지 말아야할 것을 어떻게 기억할지, 기억의 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한 작품이다. 그게 연극을 하는 의미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는 재연을 하는 두려움도 전했다. “광주의 고통을 배우들의 말과 몸과 오브제를 통해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 배우들이 긴 시간 리서처하고 토론하고 고문이 행해진 곳에 직접 가 그때의 고통을 상상하며 일련의 경험을 몸 안에 축적했다." 이 때문에 11명의 배우 중 한명은 공연 중간에 몸이 아파서 나머지 4회 공연을 못했다. 공연이 끝나고 후유증을 앓는 배우들도 있었다.

그는 "다시 작업하게 된다고 했을 때 , 배우들이 버티어 낼 수 있을지 두려웠다”며 "올해도 끝까지 다치지 않고 마무리하길 바란다. 또 한강 작가의 원작 속 텍스트를 하나도 바꾸지 않고 사용했는데, 텍스트가 갖는 힘이 이런 거구나, 그걸 깨닫게 해준 작품이다. 이 공연을 통해 원작소설을 다시 읽게 되길 바란다”고 부연했다.

‘더 보이 이즈 커밍’은 폴란드 연출가 마르친 비에슈호프스키의 작품으로 2019년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초연했다. 국내 창작초연 작품은 아니지만, 폴란드의 시선으로 5월의 광주를 이야기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즌 프로그램으로 선정했다. 한국에서 시작해 폴란드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광주의 아픔이 1980년대 한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을 뛰어넘어 언제 어디서든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30대 젊은 창작자의 발언, 그 시선으로 바라보는 과거

2020년 시즌 프로그램의 막을 올리는 ‘왕서개 이야기’(4월 15~26일)는 남산예술센터 상시투고시스템 ‘초고를 부탁해’로 시작해 제작 전 콘텐츠를 사전에 공유하는 작가 발굴 프로젝트인 ‘서치라이트(Searchwright)’를 거쳐 시즌 프로그램으로 안착된 작품이다. ‘왕서개’라는 인물의 복수를 통해 1930년대부터 1950년대에 이르는 세계사 아픔을 이야기함으로써 가해의 역사가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마주했을 때 무엇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를 질문한다.

이준우 연출은 “인간의 잔혹함은 어디서 오는지, 일본의 군국주의 정신은 어디서 왔는지, 우리는 과연 그들과 다른 정신으로 사는가, 그때와 지금의 우리사회는 얼마나 변했나, ‘왕서개 이야기’는 그런 질문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아내와 자식을 잃은 남자가 20년 뒤 가해자를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타인의 아픔을 느끼는 감정에 대해 돌아보고, 생각해보는 공연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카시아와, 아카시아를 삼키는 것’(6월 24일~7월 5일)은 1980년대부터 우리 사회가 낳은 여러 사건의 피해자와 그 자녀들의 기억을 무대화했다. 파편화된 기억이 해체와 조립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적 아픔은 특별한 사람들만 겪는 경험이 아니라 동시대 우리가 함께 겪고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김지나 작·연출은 “광화문 광장을 오가다 제 기억 속 광장과 모습이 많이 바뀐 것을 깨달았다”며 “사람들 기억 속 광장과 지금의 광장이 들어오면서 지난 40년간 우리는 어떤 일을 보고 듣고, 남이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 일이 나와 어떻게 연관됐는지를 생각하며 썼다”고 말했다.

시즌 프로드램 대미를 장식하는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9월 2~13일)는 예배의 제의성과 연극성을 부활시키기 위해 제사장의 위치에 기독교가 배제해온 ‘퀴어(Queer,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용어)’를 전면에 내세운다. 주류 기독교가 독점해온 사랑, 공동체, 믿음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퀴어를 둘러싼 불안과 혐오, 기독교의 위기와 분열을 들여다본다.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임성현 연출은 “성경에 쓰인 진정한 의미의 예배를 부활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예배는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소외된 자들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세우고 춤추고 노는 것이라고 성경에 적혀 있다. 이에 따라 기독교에서 박해하는 퀴어를 예배의 주인공이자, 제사장으로 내세울 생각이다. 순서나 이야기 구성은 예배형식을 차용해서 전복적이면서도 연극적으로 표현될 예정이다.”

임성현 연출은 또 남산예술센터의 존속 여부에 대해 “연극을 시작하고, 주로 연극을 본 공공극장이 남산예술센터고, 많은 것을 배웠다"며 “젊은 창작자에게 제작 기회를 줬고, 많은 창작자가 이곳을 통해 배출됐다는 점에서 남산예술센터가 기여한 부분이 있다. 남산예술센터가 없어진다면 아쉬울 것 같다"고 밝혔다. "이번 신작 제목이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인데 남산예술센터에 대한 내용을 다룬 게 아니나, 이 극장이 대부흥을 이뤘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았다”고 부연했다.

■2~3월, 한.중.일 동아시아의 현대 희곡을 한자리에 모아

한편 남산예술센터는 지난 2017년부터 잠재력 있는 작품을 발견하고, 개발 과정을 공유하는 ‘서치라이트’를 올해도 이어간다. 낭독공연과 워크숍, 주제 리서치를 위한 공개토론, 컨퍼런스, 프레젠테이션 등 발표 형식은 자유롭다. 격년으로 진행해오던 일본과 중국의 낭독공연은 올해 처음으로 동시에 추진한다. 오는 2월과 3월, ‘일본희곡 낭독공연’(2월 21~23일), ‘서치라이트(Searchwright)’(3월 3~13일), ‘중국희곡 낭독공연’(3월 24~29일)을 차례로 선보인다.

더불어 작년 한 해 특정 회차를 배리어프리(Barrier free) 공연으로 진행해 장애인 관객의 공연 관람 접근성 확대를 위한 노력했다.
2020년 시즌 프로그램에서도 장벽 없는 공연 문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할 예정이다.

남산예술센터 2020년 시즌 프로그램과 공모 프로그램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남산예술센터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는 2월 12일(수) 오후 2시부터는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왕서개 이야기’, ‘아카시아와, 아카시아를 삼키는 것’,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 등 세 편을 모두 관람할 수 있는 시즌 티켓(가격 4만 5천원)을 오픈한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