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유니폼을 입은 안치홍. /사진=뉴스1
기자생활을 하다보면 웬만한 일엔 놀라지 않게 된다. 충격적인 일을 자꾸 겪다 보면 어느새 둔감해진다. 최동원-김시진 트레이드(1988년) 때 꽤 놀랐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계약(1994년), 류현진 평균자책점 1위(2019년)도 놀랄 일이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2020년)은 믿기지 않았다.
안치홍(30·롯데)이 지난 달 6일 롯데와 옵트아웃(opt-out) 계약을 맺었을 때 놀랐다. 국내프로야구 첫 옵트아웃 계약. 이런 일도 가능하구나. 메이저리그서나 하는 계약인줄 알았다.
구단이나 선수의 계약 대리인 모두 과거와 달랐다. 메이저리그 구단 실무를 경험한 단장과 김현수(LG)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운 에이전트의 만남. 이 둘은 옵트아웃이라는 낯선 계약을 성사시켰다. 거기에 바이아웃(buy out)까지 덤으로 얹었다.
옵트아웃은 단순한 개념이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32·워싱턴)는 지난 해 11월 옵트아웃을 선언했다. 그는 3년 전 팀과 7년 1억 7500만 달러(약 2000억 원) 대형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3년 후 남은 연봉을 포기하면 FA(자유계약선수)가 되는 조항을 넣었다. 그게 옵트아웃이다.
3년 후 선수가 자신의 시장 가치가 더 높아졌다고 판단하면 자유의 몸으로 다른 팀과 계약할 수 있는 조건이다. 스트라스버그는 지난 해 최고의 시즌(18승 6패, 3.32)을 보냈다. 남은 연봉 1억 달러를 가볍게 포기했다.
결국 워싱턴은 그를 붙잡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써야 했다. 한 달 후 그에게 7년 동안 2억 4500만 달러를 더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구단만 손해를 볼 순 없다. 구단은 반대로 바이아웃, 즉 약간의 돈을 주고 선수를 내보낼 수 있다.
안치홍의 계약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들어 있다. 이 때문에 대리인과 선수는 20번이나 계약서를 다시 썼다고 한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낯설고 힘들었을 것이다. 안치홍은 롯데와 2년 20억 원에 계약했다. 옵션을 포함하면 최대 26억 원에 이른다.
문제는 2년 후다. 구단이 그를 필요로 하면 2년 동안 31억 원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안치홍이 앞으로 2년간 엄청난 활약을 보여 가치를 높이면 이 조건을 거절할 수 있다. 그 즉시 FA 신분을 갖게 된다. 더 이상 그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 구단은 1억 원의 바이아웃으로 이별을 통보할 수 있다.
어찌 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계약 같지만 매우 합리적인 조건이다. 선수에겐 이보다 더 강력한 성취동기가 있을까. 30살의 안치홍은 여전히 전성기다. 그가 2루를 맡음으로써 롯데 내야는 한층 더 단단해졌다.
롯데는 외국인 타자를 수비형으로 선택했다. 딕슨 마차도의 영입과 안치홍의 가세로 가운데 라인이 보강됐다. 신본기, 한동희 등 내야자원의 배치가 수월해졌다. 안치홍은 KIA에서 10년 간 뛰었다.
통산 100개의 홈런을 기록했고 타점도 586개 올렸다. 통산 타율은 3할. 세 차례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두 번 한국시리즈 정상을 맛보았다. 그가 2년 후 옵트아웃의 승자가 될지, 바이아웃으로 패자로 남을진 짐작하기 힘들다.
그가 승자가 된다면 롯데 역시 승자일 수밖에 없다. 2년 동안 톡톡히 재미를 봤다는 증거다. 2년 계약 연장 역시 윈윈. 호주에서 전지훈련 중인 안치홍은 눈빛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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