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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 소프트포크 단행…'스팀잇 인수' 쑨위천 견제책

스팀 소프트포크 단행…'스팀잇 인수' 쑨위천 견제책

트론 재단(TRON Foundation)의 쑨위천(영어 이름 저스틴 선, Justin Sun)이 스팀 블록체인 기반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스팀잇(Steemit)을 인수한 가운데, 지난 23일 스팀(Steem) 블록체인의 검증 노드를 운영하는 주요 참가자들이 스팀 토큰을 동결하는 소프트포크를 단행했다.

이번 소프트포크는 쑨위천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일종의 보호책으로 풀이된다. 또 하드포크와 달리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위임지분증명(DPoS, Delegated Proof-of-Stake) 방식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합의 과정 없이 소수의 상위 증인들이 은밀하게 결정하고 실행함으로써 DPoS가 중앙에 권한이 집중된 소수의 통제 하에 운영된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소프트포크를 단행한 증인들은 블로그를 통해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스팀은 EOS 블록체인과 마찬가지로 위임지분증명 방식을 사용한다. 이름 그대로 지분에 비례해 권리를 위임받은 주체가 블록 생성자, 곧 증인이 된다. 따라서 거대 지분을 보유한 누군가가 새롭게 등장하면, 소수의 상위 증인들이 세력을 형성해 이를 견제할 수 있다. 이번 포크도 이런 맥락에서 진행되었다. 쑨위천이 인수한 스팀잇은 스팀 블록체인을 인수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의 토큰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곧 이 많은 양의 토큰이 블록체인 업계에서 ‘탁월한 장사꾼’으로 통하는 쑨위천의 주머니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그러자 스팀 블록체인 증인들이 쑨위천의 영향력을 견제할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보호 조치라는 명분은 있지만, 이번 소프트포크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소수의 상위 증인들은 소프트포크를 단행하면서 일부 제한된 계정의 스팀 토큰을 동결시켜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인물(여기서는 쑨위천)에 대해 일반 증인들이 투표할 수 없도록 막아버렸다. 투표뿐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의 참여도 차단해 해당 인물이 어떤 경우에도 네트워크 통제권을 갖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이때 동결된 스팀 토큰은 스팀잇이 보유한 ‘은밀한 지분’으로 통용된다.

이 지분은 대개 회사 설립자에 대한 보상금이나 블록체인 정식 출범 전의 사전 채굴분이다. 스팀잇 관계자에 따르면, 스팀잇이 보유한 은밀한 자금 규모는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스팀 토큰의 20%에 달한다. 의결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이에 대해 소프트포크를 단행한 증인들은 블로그에서 “주식회사 스팀잇과 스팀잇 관리 자산의 사용처에 대해 여러 불확실성이 존재해왔다”고 언급했다.

스팀잇이 보유한 은밀한 자금은 스팀과 스팀잇, 양사에 긴장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그러나 스팀, 스팀잇의 공동 설립자 네드 스캇(Ned Scott)이 스팀잇 대표로 있을 때는 적어도 그가 이 자금을 이용해 네트워크 지배구조에 개입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없었다. 은밀한 자금은 오직 네트워크 발전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쑨위천이 스팀잇을 인수한 이상, 이 믿음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커뮤니티가 이처럼 동요하자 소프트포크가 단행된 날 밤, 쑨위천도 즉각 입장을 발표했다.

“스팀잇의 역량을 제대로 키워가려면 지금부터 할 일이 무척 많다. 우선 트론의 여러 가지 암호화폐와 함께 스팀 토큰에 대한 주요 거래소 상장을 확대해 좀 더 영향력 있는 토큰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트론은 이와 함께 “오는 3월 6일 상위 증인 50명을 초청해 스팀잇 2.0 타운 홀(STEEMit 2.0 Town Hall)이라는 서밋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는 지금까지 추상적으로만 논의돼온 스팀과 트론의 TRX 토큰 간 스왑 문제가 핵심 주제로 논의될 예정이다.

네드 스캇과 트론 재단은 이와 관련한 코인데스크의 취재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트론 재단은 스팀잇의 인수를 발표하며 스팀잇이 보유한 토큰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토큰까지 인수에 포함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스팀 블록체인의 운영 방식

스팀잇은 스팀 블록체인을 대표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으로 레딧(Reddit)과 미디엄(Medium)의 중간 형태로 분류된다. 스팀잇 외에도 스팀 블록체인에서 운영되는 분산 앱은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주식회사 스팀잇이 독자적으로 소유한 스팀잇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

스팀잇은 스팀 블록체인을 이용해 사용자를 추적하고 그들의 네트워크 영향력을 가늠한다. 스팀잇에 글을 써서 추천을 받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글을 추천하면 스팀 블록체인에서 통용되는 암호화폐로 보상을 받는다.

스팀 블록체인 탐색 사이트 스팀드닷컴(Steemd.com)에 따르면, 기사 송고 시점을 기준으로 스팀 토큰의 공급량은 3억 7344만 2235개에 달한다.

스팀 네트워크에는 스팀, 스팀파워(Steem Power), 스팀달러(Steem Dollars)라는 세 가지 자산이 있다. 그중에서 핵심은 스팀 토큰이다. 스팀 토큰을 단기간에 팔 수 없도록 묶어두면 이것은 스팀파워가 되고, 이 스팀파워는 네트워크 지분에 대한 소유권처럼 행사할 수 있다. 스팀달러는 달러에 연동한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팀의 영향력을 가늠하기 힘든 이유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스팀파워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스팀파워가 아주 느린 속도로 감소하고 있지만, 언제고 갑자기 급증할 수도 있다.

초창기부터 스팀 커뮤니티에서 활동해온 제임스 레이디는 “현존하는 스팀파워 가운데 네트워크 지배 가능성이 있는 스팀파워는 약 2억1천만 스팀”이라며, “투표를 위해 모든 스팀을 묶어둘 경우 약 3억4천만 스팀파워가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전체 스팀파워 가운데 스팀잇이 통제하는 양은 약 6800만 스팀 정도로 추산한다. 하지만 정확한 수량은 가늠하기 어렵다. 스팀잇이 비밀 계정을 통해 얼마나 많은 스팀 토큰과 스팀파워를 갖고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스팀 블록체인에는 증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석이 남아 있지만, 이보다 증인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이들의 숫자가 훨씬 많다. 레이디는 자신도 ‘증인 희망자’라고 말하며 상위 20명의 증인에 들 엄두는 못 낸다고 말했다.

“이번 소프트포크는 여러모로 불확실한 시기에 증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주식회사 스팀잇 시절에는 적어도 ‘은밀한 지분’이 스팀 블록체인의 성장과 개발에 사용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또한, 이 지분에는 의결권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트론 재단이 스팀잇을 인수하면서 이런 확신과 신뢰가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더욱이 트론 재단은 구체적인 인수 조건을 공개하거나 스팀 증인들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증인들은 네트워크 보호 차원에서 소프트포크를 단행한 것이다.”


/코인데스크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