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뒤늦게 개강했지만 꽃피는 캠퍼스에 학생은 없다. 대부분 수업이 온라인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필자도 모든 강의를 실시간 화상강의로 하고 있다. 호기심에 가득 찬 학생들 얼굴 대신 연구실 PC 모니터 앞에서 카메라와 마이크를 상대로 혼자 떠드는 것은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수강생 반응도 모르면서 일방적으로 강의안을 쏟아붓는 것은 강의가 아니라 방송이라는 자조가 밀려든다. 내 얼굴로 가득 찬 화면은 아무리 봐도 생소하다. 그런데 웬걸, 강의가 거듭될수록 내 나름대로 적응되고 예상치 못한 장점까지 눈에 들어온다. 초기의 기술적 문제가 많이 극복되어 학생들 모습이 하나둘 화면에 등장하자 조금이나마 반응이 느껴지고, 어려서부터 인강(인터넷 강의)으로 단련된 학생들이 눌러주는 손들기 아이콘과 채팅창이 마치 진짜 질문 같기도 하다. 쓸데없는 방담이 줄어드니 강의밀도가 높아졌다는 칭찬도 가끔은 있다. "어, 이거 할 만한데?"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을 맞아 이른바 채찍질 고행단까지 나섰음에도 희생이 줄지 않고 교회의 권위가 무너지자, 사람들은 신이 아닌 인간과 과학에 눈을 돌리고 르네상스 시대가 뱃고동을 울렸다. 인구가 대규모로 감소하자 농노 지위와 인건비가 상승했고, 결국 봉건주의가 붕괴돼 18세기 1차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태동의 배경이 됐다. 오늘날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담론이 뜨겁지만 도도한 강의 흐름을 물결 속에서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익숙한 시스템을 바꾸자고 하니, 나이든 사람들은 불안하고 기득권층은 격렬히 거부한다. 이른바 디지털 격차의 현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 덕에 어쩔 수 없이 경험한 온라인 강의는 의외로 새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앞으로 외국 출장을 가더라도 휴강과 보강을 반복하는 대신 온라인 강의를 할 작정이다. 공무원들이 세종시를 오가며 길거리에 뿌리던 시간만큼이나 뿌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정부 화상회의 시스템도 이제 제값을 할지 모른다. 갖가지 이유로 원천금지됐던 원격진료도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한시적으로나마 허용됐으니 스마트 헬스케어의 단초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코로나19의 파괴력으로 많은 분야에서 되돌아가지 못할 시스템의 변화가 초래되니, 전문가들 사이에는 중세가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에 자리를 내줬듯 삶의 기반이 통째로 바뀔 것이라는 예측이 만발하고 있다. 긍정적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자유무역 질서가 붕괴하고 중세 성곽도시가 재현되며 권위주의가 판을 칠 거라는, 역사적 퇴행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첫술에 배부르랴. 팬데믹이라는 공포의 의학용어가 세계 일상어가 돼 버린 와중에 우리나라가 높은 시민의식과 의료진의 헌신에 힘입어 민주사회의 정체성과 개방성을 유지하면서 방역에 성공한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니 힘든 시기 일말의 위안이다.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을 개발해온 우리의 실력이 온라인 강의에서 맞벌이 부부의 저학년 아이들을 배려할 정도까지 이르게 되면, 우리는 1970년대 개발연대를 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화려한 꽃을 피울 기회를 맞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온 국민이 온라인 강의의 세례를 맞고 열어가는 새로운 인간과 사회질서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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