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등 소비자 타깃 창업 확대
현재 여성 심사역 없는 VC 없어
휴대폰 부품사 와이팜에 '인생딜'
기술력 인정받아 올해 상장 추진
안신영 HB인베스트먼트 대표 사진=서동일 기자
초기 벤처캐피털(VC) 업계엔 여성 심사역을 찾기 어려웠다. 기술창업이 주를 이뤘던 1세대 벤처는 삼성전자와 관련한 반도체 기업이 많았다. 이 때문에 여성이 VC업계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두각을 나타내고 업계를 주도한 여성 벤처투자인(벤투인)들이 있다. 대표적인 여성 벤투인 중 한 명이 안신영 HB인베스트먼트 대표(사진)다. 회계사로 커리어를 시작한 안 대표는 2002년 대성그룹에서 인수합병(M&A) 업무를 맡았고 2003년 VC업계에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젠 여성 VC들이 업계 주도"
최근 서울 언주로 HB인베스트먼트 본사에서 진행된 만난 안 대표는 "처음 VC쪽으로 왔을 때는 전기, 전자 관련 인력을 많이 뽑다보니 연구직 출신을 많이 뽑았고 여자들은 업계에 아예 들어오질 않는 분위기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러나 소비자를 타겟으로 한 모바일, 서비스 관련 창업이 늘면서 여성들이 많이 들어왔다"면서 "현재는 여성 심사역이 없는 VC가 없고 최근 신입을 뽑을 때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바이오 분야는 여자가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 심사역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VC는 실적 위주인만큼 정치를 하거나 라인을 탈 필요도 없다"면서 "실력만 있다면 심사역이 최고의 직업이다. 쓸데 없는 업무가 없고, 전문성도 보장되는 담백한 사업"이라고 조언했다.
■"여유 갖고 투자해야"
안 대표는 업계에 들어오고 '촉이 좋은 젊은 심사역'으로 이름을 날렸다. 심사역으로 두 번째 투자한 터치스크린 업체에 4억원을 투자해 110억원 넘게 회수했다. 당시 업계 최고 수익률이었다.
그러나 이후 성과는 좋지 않았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투자에 실패하면 심사역에 정말 크게 타격이 온다. 투자기업의 대표가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도 봤다. 특히 실패가 이어지면 멘붕이 온다"면서 "여유를 갖고 투자해야 하는 것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우여곡절을 겪던 안 대표는 8년 전 '인생딜'을 만났다. 지난 2012년 휴대폰 부품인 '팜'이라는 칩을 만드는 와이팜에 투자를 했고 올해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투자 이후 한때는 팔수록 적자가 나서 회사 존폐에 대해 걱정도 했다"면서 "그러나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지난해 매출 1500억원을 기록했고 올해 상장이 예상된다. 경쟁업체들이 따라올 수 없는 기술력을 혹보해 앞으로 세계적인 회사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발로 뛰는 현장형 VC 되고파"
벤처버블이 꺼지면서 들어와서 오랜 기간 업계의 막내로 있었다. 그러나 최근 안상준 코오롱인베스트먼트 대표, 김종필 KB인베스트먼트 대표 등 안 대표 세대들이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맡으면서 업계를 이끌고 있다.
안 대표는 "15년 전에 함께 백팩을 메고 투자하러 돌아다닌 멤버들이 어느덧 스타 심사역이 되고, 대표까지 하는 케이스가 늘었다"면서 "그때부터 했던 사람들이 지금도 잘한다"며 웃었다.
앞으로의 꿈을 묻자 '현장'이라는 대답을 내놨다. 안 대표는 "대표를 하고 있지만 현장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항상 있다"며 "지금도 실무형 대표로 강점을 갖고 있다.
심사역으로 투자를 직접하는 건 재밌고 보람있다. 업계를 넘어서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발로 뛰면서 그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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