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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살리는 길은 정부의 조건없는 지원·신속한 자금 집행" [심층진단 | 존폐기로에 선 항공업]

(下) 특단의 대책 필요
두달된 LCC 지원, 43%만 집행
문대통령 '지원속도' 강조 무색
40조+α 기금도 5월에나 가능
"경영문제 아닌 재난상황인데도
정부, 자사주 취득 제한 등 요구"

"항공사 살리는 길은 정부의 조건없는 지원·신속한 자금 집행" [심층진단 | 존폐기로에 선 항공업]
개항 40년 이래 처음으로 국제선 이용객 0명을 기록한 3월 12일 오후 서울 하늘길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에 멈춰 서있는 항공기들. 뉴시스
"지난 2월 중순 정부가 저비용항공사(LCC)에 최대 30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집행률은 절반도 안된다."(항공 관계자)

정부가 항공업계 지원정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지만 실제 지원 속도는 업계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라고 거듭 강조하지만 항공사는 유동성 위기에 몰리고 있다. 또 이번 경영위기가 발생한 원인이 경영진의 잘못된 경영 결과가 아님에도 '조건'이 따른다는 것에 전문가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2월 LCC 지원금 집행률 43%

2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14일 '항공산업 고용유지 프로그램에 대한 성명'을 통해 250억달러(약 30조원)의 긴급 자금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이후 21일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우선 풀었다. 앞서 지난 9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항공업계 구제방안을 발표한 지 불과 2주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지원금이 지급된 것.

반면 정부가 전날 '40조+α(알파)'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기간산업을 지원키로 했지만 업계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속도' 탓이다. 정부는 24일까지 산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기금채권 발행을 위한 국가보증 동의안은 28일 예정된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실제 '40조+α(알파)'가 집행되려면 최소한 5월은 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기간산업 안정기금 설치 이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긴급자금을 우선 지원키로 했지만 업계에선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앞선 LCC 지원자금 3000억원 집행만 봐도 산은, 수은의 속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현재 3000억원 중 두 달 넘도록 집행된 금액은 에어서울·에어부산 544억원, 진에어 300억원, 제주항공 400억원, 티웨이 60억원 등 총 1304억원(43%)에 그친다. 셧다운 상태인 이스타항공은 인수를 진행 중인 제주항공을 통해 1500억~2000억원을 지원받기로 했지만 이것 역시 집행되지 않았다.

지원이 제때 이뤄지지 않는 사이 국내 항공사들의 곳간이 5월이면 바닥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한항공은 매달 고정비 4000억원을 지출하고 있다. 항공기의 90%가 지상에 묶여 현금이 들어오지 않는 아시아나항공 역시 2500억원 달마다 들어간다. LCC 7곳 중 제주항공을 제외한 6곳은 국제선 운항을 아예 중단했다. 이스타는 국내선도 세웠다.

■"천재지변 감안해야"

업계에선 이번 지원에 자사주취득 제한 등 '조건'이 전제된다는 점에도 의문을 표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대주주의 사재출연 등을 요구해왔다. 대한항공은 현재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이 어려운 데다 아시아나항공도 인수절차를 밟고 있다. 이 탓에 대한항공은 최대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검토하고 있다. 최대주주인 한진칼이 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대한항공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안이다. 유휴자산 매각에 이어 최대주주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자사주 취득이 제한될 경우 한진칼의 대한항공 유증 참여도 제한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정부 지원으로 대한항공이 유상증자를 거둬들일 수 있고, 정부가 언급한 자사주 취득 제한도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단언하기 어렵지만 경우에 따라 한진칼 대한항공 유증 참여 역시 조건을 위반하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며 "이 경우 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내걸었던 조건이 오히려 역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정부 지원조건 문턱이 최대한 낮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현재의 어려움은 경영에 의한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재난상황에 의해 일어난 문제"라며 "항공업계 지원에 조건을 붙이는 것은 정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재난보조금 혹은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 방향과도 모순된다"고 말했다. 실제 선진국들은 현재 자국 항공업계를 조건 없이 지원하고 있다. 독일이 조건 없는 무이자·무기한 대출을 약속하고, 싱가포르가 싱가포르항공의 회사채든 전환사채 발행이든 자금조달을 시도하면 국부펀드로 매입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