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어떻게 독버섯처럼 퍼졌나
대법원 ‘도박’ 선언 4년만에 처벌
합법 내세운 유사업체 ‘우후죽순’
투자자 손실 그대로 업자 몫으로
"지점 능력따라 한달 억대 수수료"
일확천금 노린 청년층 쉽게 빠져
사설 FX마진거래 업체의 폐해가 수면으로 떠오른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수많은 변종업체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포털사이트와 SNS상에 FX마진거래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부담 없는 재테크 투자수단'을 내세운 홍보 글이 끝없이 나온다. 이들의 거래방식을 '도박'이라고 규정한 법원 판단이 이미 수년 전에 나왔으나 수사기관의 오판과 감독당국의 무관심 아래 이들 업체는 독버섯처럼 퍼져나갔다. 사설 FX마진거래 업체들의 실태와 근절방안을 2회에 걸쳐 살펴봤다.
20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FX마진거래와 관련한 신고접수 건수는 2018년 2건에서 2019년 17건, 올해 125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FX마진거래란 환율 변동을 이용해 시세차익을 얻는 거래를 말한다. FX마진거래의 계약당 기본 단위는 10만달러로, 개인투자자들은 선물회사나 중개업체에 10% 비율의 증거금을 내야만 거래가 가능하다. 사설 업체들은 최소 1200만원 이상의 증거금에 부담감을 느끼는 투자자들의 심리를 노려 '증거금이 필요없다'며 이들을 현혹하고 있다. 소액거래도 가능하다는 말에 2030세대와 주부들이 불나방처럼 변종 외환차익거래에 뛰어들고 있다.
■대법원 '도박' 선언 뒤 '늑장 처벌'
이런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배경에는 수사기관의 오판과 감독당국의 방관이 있었다. 특히 대법원이 지난 2015년 9월 FX마진거래를 '도박'으로 규정하고도 제대로 된 처벌 사례가 나온 건 최근이다.
앞서 FX렌트의 조모 대표(61)는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지 않은 채 이용자들에게 FX마진거래를 하도록 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을 위반한 혐의로 지난 2011년 7월 재판에 넘겨졌다. FX렌트가 내건 투자방식은 환율 향방을 놓고 베팅하는 일종의 '홀짝 게임'이다. 회원들은 업체에 비교적 소액의 렌트보증금을 내고 외환에 대한 매수, 매도 중 하나를 선택한다. 자신이 예상한 대로 환율이 변동하면 수익금을 챙길 수 있지만 손실이 발생할 경우 업체가 보증금을 챙긴다. 여기에 업체는 수익의 10%(최근 14%)까지 수수료로 가져가 어떤 결과든 이득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초 검찰은 FX렌트가 신종 파생상품시장을 개설해 회원들을 상대로 인가받지 않은 옵션거래를 했다고 보고 자본시장법을 적용했다. 1·2심도 검찰에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대법원은 "FX렌트의 거래구조와 참여자들의 의사 등에 비춰 봤을 때 이 거래는 투자자 보호라든지 금융투자업의 육성·발전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면서 "단시간 내에 환율이 오르거나 내릴지 맞히는 일종의 게임 내지 도박에 불과할 뿐 파생상품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사건을 무죄 취지로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조 대표에게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다. 검찰이 파기환송심에서 공소장 변경을 하지 않으면서 조 대표는 결국 2016년 1월 무죄판결을 확정 받았다.
■무죄판결에 유사업체 우후죽순 생겨
수사기관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덕분에 조 대표는 이후로 승승장구했다. FX렌트는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신들의 영업이 '합법'이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조 대표는 스포츠구단과 사회공헌재단을 운영하고 자신의 사건을 수사한 검사를 고문변호사로, 방송사 임원은 대표로 선임하면서 사세를 넓혀나갔다. 적극적인 언론 인터뷰로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했다.
심지어 특허청은 지난 2017년 FX렌트의 사업에 대해 특허까지 내줬다. 이 또한 조 회장의 꼼수로 이뤄낸 결과물 이었다. 특허법은 도박에 필요한 도구 등 공공질서나 선량한 풍속에 어긋나는 발명에 대해서는 특허를 내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조 회장은 묘안을 떠올렸다. FX렌트 서비스를 ‘투자’가 아닌 ‘교육’ 수단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당시 특허를 담당한 심사관은 “FX렌트 측은 해당 발명의 효과에 대해 ‘실제 FX마진거래를 렌트해 연습하는 교육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기재했다”며 “도박행위 등 부정행위용 목적이 아님이 기재 내용상 분명했기에 특허출원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재판 과정에서 특허를 받을 사실을 근거로 FX렌트의 사업행위가 도박이 아니라고 주장 중이다. FX렌트가 성공을 거두자 많은 유사 변종업체들이 ‘특허출원’을 내세우며 고객을 끌어 모았다.
검찰은 지난해 10월에서야 조 회장을 도박공간 개설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대법원이 FX렌트의 사업방식을 '도박'으로 선언한 지 4년 만이다. 조 회장은 지난달 24일 1심에서 징역 5년과 추징금 336억원 상당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그동안 FX렌트에는 1조4000억원 규모의 자금이 흘러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회원 수는 1만4000여명에 달했다.
1심은 조 회장에 대해 "FX렌트 거래가 정당한 투자나 외환거래가 아닌 단순한 '도박'임을 확인하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됐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합법적인 사업이라고 주장하면서 특허까지 받아내 사업 확장의 도구로 삼아 그 결과 심각한 사회적 해악을 끼쳤다"고 판시했다.
FX렌트의 성공을 쫓아 따라온 수많은 유사업체들은 여전히 남아 새로운 피해자들을 낳고 있다. 이들도 저마다 과거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신들의 사업을 합법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상당수 업체는 실제로 FX마진거래를 하지 않은 채 회원에게 환율차트만 제공하고, 가상의 거래에 투자하도록 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상거래이기에 회원들의 손실은 그대로 업자의 몫이다. 한번 자리를 잡으면 총판과 다수의 지점을 두고, 프랜차이즈 기업 형태로 성장해 나간다.
과거 사설 FX마진거래 지점을 운영한 A씨는 "지점의 능력에 따라 한 달에 1000만원에서 최대 억대 수수료를 벌어들인다"며 "본사는 고객들의 손실금 전액과 지점의 수익 중 일부분을 갖는다"고 전했다.
거액을 벌다보니 일확천금을 노린 신규업자들도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대표들은 자본시장에서의 경력도 없는 청년층이 대부분이다.
한 사설 FX마진거래의 등기상 사내이사는 1994년생이었다.
최근 사설 FX마진거래 지점 개설을 문의했다는 한 남성은 "한 대형업체는 '800개의 지점에 지점당 평균 20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며 "이들은 자신들이 처벌받지 않거나 처벌받더라도 실형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수억원씩 벌어들이니 벌금 몇 백만원은 무섭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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