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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 시오타 치하루가 빚어낸 붉은 실의 숲 '비트윈 어스'

[이 전시] 시오타 치하루가 빚어낸 붉은 실의 숲 '비트윈 어스'
시오타 치하루 '비트윈 어스'(2020년) / 가나아트 제공
붉은 실이 거미줄처럼 전시장 전체를 뒤덮었다. 붉은 실의 숲이다. 마치 핏줄과 같은 실들이 이리저리 의자와 의자 사이를 오가고 얽히며 몽환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대표작가로 선정된 바 있는 일본 오사카 출신의 국제적인 작가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 '비트윈 어스', 직역하면 '우리들 사이'다.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왔던 인간의 유한함과 그에 따르는 불안한 내면을 작업의 소재로 삼았다. 어린시절 할머니의 무덤에서 느낀 공포, 이웃집에서 일어난 화재의 기억, 두 번의 암 투병으로 겪은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과 트라우마를 작업에 투영했다. 미대 재학시절부터 페인팅의 한계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작가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실을 엮는 작업을 통해 숨결과 공간을 탐구해나갔다. 회화의 선을 그리듯 실을 통해 공간에 선을 그리고 이를 모아 면을 만들어 우주로 확장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혈관', '머리카락' 혹은 '피부'를 연상케 하는 그의 작업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있던 불안정했던 시기에 완성된 결과물이다. 그는 지난 2017년 암이 재발해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며 생과 사의 경계에서 극한의 고통을 겪은 후 마침내 이를 초월하는 감정 상태에 다다랐을 때 죽음은 육체의 끝이며 영혼과 의식은 영원히 존재할 뿐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깨달았다.

죽음을 단순히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해석하는 시오타는 여기서 더 나아가 동시대에 존재하는 이분법적인 경계와 개인 존재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이어갔다.
그녀의 작품에서 실들은 내면에서 서로 관계되는 수많은 생각과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주변과 관계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공간에 마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실을 통해 시오타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뿐 아니라 실존을 향한 탐구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그의 사유와 철학의 산물인 40여점의 작품은 서울 한남동 가나아트 나인원에서 다음달 2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다음달 23일까지 진행되는 그의 개인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