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성폭력 피해는 혼자만의 힘으로 멈추기 어려워요. 피해자를 알더라도 도움을 어떻게 줘야할지 잘 모르는 분들도 많은데, 피해를 드러내고 정신상담을 받도록 유도해 줬으면 좋겠어요."
박혜영 서울해바라기센터 부소장(
사진)은 13일 "주변의 성폭력 피해자를 알고 있다면 해바라기센터나 100여개 비정부기구(NGO) 상담소에 요청을 받도록 해 달라"며 이같이 밝혔다.
2004년 설립된 해바라기센터는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해 상담, 의료, 법률, 수사지원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여성가족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지원하고 경찰, 병원 등과 협의해 수사 및 의료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설립 16년이 지나면서 센터는 전국 39개까지 늘어났고, 도움의 손길도 늘고 있다. 지난해에는 총 2만6585명이 해바라기센터에 피해를 호소했다. 지난해 상담지원만 12만5000여건, 의료지원은 11만2000여건에 이른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n번방' 등 디지털 성착취 범죄가 늘어나면서 관련 피해에 대한 상담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박 소장은 전했다. 그는 "디지털과 연계된 성범죄가 극적으로 늘어났고, 성착취 영상에 대한 삭제 지원 요청이 많이 온다"며 "피해자들은 유포 위험에 계속 불안함을 호소하고 있어 관련한 상담 연계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성범죄뿐 아니라 최근에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논란이 되고 있다. 박 소장은 인터넷 댓글뿐 아니라 주변의 무신경한 말도 모두 '2차 가해'에 포함될 수 있다며 경고했다.
박 소장은 "피해자들이 '내가 사실을 드러내도 피해를 당하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돼, 용기를 없애는 것이 2차 피해의 가장 무서운 점"이라며 "주변인의 말, 특히 친족 성폭력의 경우 '예뻐한 것 가지고 왜그러냐' 라는 말도 모두 피해자를 좌절시키는 2차 피해"라고 말했다.
상담 과정에서 어려운 점을 묻자 박 소장은 "역시나 인력 문제"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39개 센터가 있지만, 인력은 여전히 부족해 최근 2년 이내 사건에 대한 통합지원만 이뤄지고 있다"며 "오래된 사건의 경우 NGO 상담소가 전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소장은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싸우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물론 처벌도 강화하고 교육도 계속돼야 하지만, 여성단체 등 계속 싸우는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며 "이들이 무고죄 등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들이 싸우는 모습이 노출되면서 법도 개정되고, 사회도 계속 바뀌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피해자를 탓하는 사회적 인식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성폭력 피해는 권력형 범죄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no'라고 했다가 오히려 피해자가 조직을 떠나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피해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에 "피해를 멈추고, 그간 피해에 대한 후유증을 치료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야 한다"면서 "근거리의 상담시설 어디서든지 도움을 꼭 받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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