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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좌뇌를 넘어선 기계··· 우뇌만 남았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16] <트랜센던스>

육체와 좌뇌를 넘어선 기계··· 우뇌만 남았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트랜센던스 메인 포스터 ⓒ알콘 엔터테인먼트

[파이낸셜뉴스] 다니엘 핑크의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는 인간과 기계의 대결에 관한 두 개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나는 전설처럼 회자되는 존 헨리(John Henry)라는 사람의 이야기다. 헨리는 강인한 육체를 가진 토목 현장의 근면한 노동자였다.

어느 날 한 사업가가 공사장으로 증기 굴착기를 가지고 와서는 자신이 가져온 기계가 어떤 인간보다도 땅을 잘 판다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육체의 힘으로 땅을 파왔던 노동자들은 이에 반발했다. 그들은 자신들 중에 가장 땅을 잘 파는 헨리를 대표로 내세워 인간이 기계를 능가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튿날 인간과 기계의 역사적인 대결이 펼쳐졌다.

헨리와 굴착기는 하나의 산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굴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한동안, 마침내 헨리가 반대쪽 산을 뚫고 먼저 밖으로 나왔다. 인간이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환호도 잠시, 기력을 모두 소진한 헨리는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거뒀다.

이야기의 주제는 명확했다. 죽을 만큼 하지 않으면 인간은 기계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육체의 영역에서 인간이 기계에 우위를 내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전해진다.

두 번째는 20세기 러시아 출신의 체스 마스터 게리 카스파로프(Gerry Kasparov)의 이야기다. 1985년 세계 체스 챔피언으로 등극한 그는 이후 10년 간 독보적인 기량으로 최고의 자리를 지켜낸 독보적인 체스 챔피언이었다. 컴퓨터와 대결한다면 이길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어떤 컴퓨터도 나를 이길 수는 없다'고 장담했던 그는 1997년 IBM이 개발한 수퍼컴퓨터 '딥블루(Deep Blue)'와의 대결에서 패하며 챔피언의 자리를 내준다.

와신상담한 카스파로프는 2003년 이스라엘에서 만든 슈퍼컴퓨터 '딥주니어(Deep Junior)'와 재대결을 벌이지만 6차례의 경기에서 3대3으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X3D 테크놀로지社가 개발한 컴퓨터 체스프로그램 'X3D 프리츠'와 대결해 역시 1승2무1패로 비겼다.

다니엘 핑크는 컴퓨터와의 복수전에 실패한 게리 카스파로프를 21세기의 존 헨리라 칭하며 그의 인터뷰를 인용한다.

"나는 인간에게 몇 년간의 유예기간을 주었을 뿐이다. 앞으로 기계는 매 경기마다 이길 것이고 인간은 단 한 게임이라도 이겨보려고 발버둥 칠 것이다."

저자는 헨리의 실패가 육체의 영역에서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기 시작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면 카스파로프의 실패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좌뇌의 영역에서 인간이 컴퓨터에게 우위를 내주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라 이야기한다. 좌뇌의 시대가 저물고 있으며 감성적이고 통합적인 사고의 영역을 담당하는 우뇌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육체와 좌뇌를 넘어선 기계··· 우뇌만 남았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과학 컨퍼런스에서 발표 중인 천재과학자 윌 캐스터 박사 (조니 뎁). ⓒ알콘 엔터테인먼트

우뇌의 영역에 대한 과학기술의 도전

<트랜센던스>는 이런 관점으로부터 출발했다. 인공지능 컴퓨터에 업로드 돼 스스로 수퍼컴퓨터인 '트랜센던스'가 된 천재과학자의 이야기를 통해 상당부분 기계에게 자리를 내어준 육체와 좌뇌의 영역을 넘어 인간의 우뇌 역시도 기계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인 윌(조니 뎁 분)은 인간의 지적능력을 초월하고 심지어는 자각능력까지 갖춘 수퍼컴퓨터 '트랜센던스'의 완성을 목적에 둔 천재 과학자다. 어느 날 강연에 참석한 그는 과학기술에 반대하는 테러집단 RIFT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의학기술로 그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윌의 연인이자 동료 과학자인 에블린(레베카 홀 분)은 윌의 뇌파를 전송하는 방식으로 컴퓨터에 윌의 '정신'을 업로드시키려 노력한다.

영화에선 수퍼컴퓨터에게 자각능력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 두 차례에 걸쳐 의미심장하게 등장한다. 윌이 개발한 수퍼컴퓨터 '핀'을 본 사람들이 핀에게 자기인식(Self Awareness)이 있는지 증명해보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처음이고, 컴퓨터가 된 윌에게 그의 스승인 태거 박사가 '자기인식을 한다는 걸 증명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장면이 두 번째다.

끊임없는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컴퓨터가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과 같이 사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는 컴퓨터가 아직 인간의 우뇌에 해당하는 감정과 통찰의 영역에는 진입하지 못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며, 특히 스스로를 독립된 개체로 인지하는 자기인식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독립된 개체로 인지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이상 설사 AI(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가 유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행위를 할 수는 없기에 이는 매우 중요하다.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자기인식이 있는 컴퓨터가 어떤 일들을 빚어낼 수 있는지를 다룬다. 모든 뇌파를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인간이 수퍼컴퓨터가 된다는 설정이 일견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인간이 수퍼컴퓨터가 됨으로써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우뇌의 영역마저 갖춘 기계가 얼마만큼 놀라운 능력을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예시처럼 여겨진다.

자기 인식이 있는 컴퓨터가 인간을 위협하거나 인간에게 다가선다는 설정은 저 유명한 고전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시리즈를 비롯해 브룩 쉴즈 주연의 <7층>, 폴 W.S 앤더슨의 <레지던트 이블>시리즈,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로봇>, 할리 조엘 오스먼트가 열연한 <A.I>에서도 부분적으로 쓰인 바 있지만, 자기인식이 있는 AI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기에 나름대로 흥미로운 지점을 건드렸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육체와 좌뇌를 넘어선 기계··· 우뇌만 남았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트랜센던스가 된 윌(조니 뎁)과 조셉(모건 프리먼), 안데르손(킬리언 머피), 에블린(레베카 홀). ⓒ알콘 엔터테인먼트

의욕은 충만했지만

아쉬운 점은 영화가 그 의욕과 달리 평범하고 엉성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나노기술, 인간복제, 테러단체의 출몰, 심지어는 폭력적이고 불완전한 인간성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문제들을 건드리고 있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표현된 것이 없다. 윌과 에블린의 사랑이라는 드라마적 토대 위에 여러가지 떡밥을 뿌려놓았음에도 제 기능을 한 소재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문제는 더욱 확실해진다.

영화 속에서 나노기술은 SF의 영역에서 출발해 판타지와 맞닿았고 트렌센던스의 가장 큰 적으로 등장하는 테러단체는 FBI와 어울리지 않는 동맹을 맺고서는 최소한의 존재감마저 잃어버린다. 장르적으로도 SF부터 시작된 영화는 심리스릴러와 총격액션을 지나고 좀비물을 거쳐서 마침내는 교훈적인 휴멘멜로물로 끝을 맺는다. 이쯤되면 이 영화가 야심차게 SF의 새 영역에 도전하려 했던 것인지 최대한 많은 장르를 섞어보고 싶은 신인 감독으로서의 욕심이 있었던 것인지 그냥 찍다보니 돈이 모자라서 대충 마무리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도 아쉽다. 조니 뎁을 위시해 모건 프리먼과 폴 베타니, 킬리언 머피, 레베카 홀까지 검증된 배우들을 대거 기용했음에도 폴 베타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기존의 캐릭터를 반복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들었다.

특유의 뭉개진 발음이 여전했던 조니 뎁에게선 <캐리비안의 해적>에서의 캡틴 잭 스패로우와 <가위손>의 에드워드의 캐릭터가 묻어났다. 모건 프리먼에게선 다른 영화를 통해서도 수십 번은 본 듯한 연기가 이어졌다.

많이 기대했으나 실망만이 남았다. 기술이 인간의 영역에 도전하는 순간을 다룬 부분은 흥미로웠으나 표현할 역량이 부족한 탓이었다고 생각한다. 제작자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이름만이 강조되고 직접 감독한 월리 피스터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는 여러 광고물 역시 이 영화가 못마땅한 이유다.

존 헨리는 기계를 이기기 위해 목숨을 잃어야 했고 게리 카스파로프는 컴퓨터에게 잃은 왕좌를 끝끝내 되찾지 못했다.
과학기술이 마지막 남은 우뇌의 영역에 도전해 올 때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을 대체 어디로부터 찾을 수 있을까.

영화는 이 물음에 답할 것처럼 시작했지만 곧 잊어버렸고 끝내 아무런 답도 내리지 않았다. 물론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언제고 닥쳐올 순간에 앞서 우리는 우리가 어째서 인간이고 존엄하며 가치있는 존재인지를 끝없이 묻고 또 물어야만 할 것이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