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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키우는 벤처 "눈치 안 보고 창업 준비해요" [현장르포]

UX·UI 디자인기업 '에이치나인'
사내벤처 4개팀 뽑아 전폭 지원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 탄생시켜
플랫폼 '웬지' 가입자 4만명 달성

벤처 키우는 벤처 "눈치 안 보고 창업 준비해요" [현장르포]
서울 뚝섬로에 위치한 에이치나인 사무실에서 사내벤처 팀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에이치나인 제공


[파이낸셜뉴스] "실장님, 저 강남 좀 다녀오겠습니다."

서울 뚝섬로에 위치한 벤처기업 에이치나인(HNINE)의 전상희 매니저는 일주일에 몇 차례 신논현에 있는 공유오피스를 간다. 공동창업자와 사내벤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다.

전 매니저는 "사내벤처를 시작할 때 '인력은 외부에서 뽑고 싶다'고 했는데 들어주셨다"며 "일정을 조율해서 뚝섬에서 강남으로 넘어간다"고 전했다.

벤처 키우는 벤처 "눈치 안 보고 창업 준비해요" [현장르포]
서울 뚝섬로에 위치한 에이치나인 사무실에서 사내벤처 팀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에이치나인 제공

■"사내벤처 업무도 회사일.. 눈치 안 보고 일해요"

사용자 경험(UX)을 디자인하는 에이치나인은 지난해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 운영기업으로 선정됐다. 지난해와 올해 각각 2개의 창업팀을 뽑았다.

인터랙션팀 장범석 매니저는 올해 상반기부터 사내벤처 '오와오'의 대표를 맡아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6년째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로 지내면서 가끔 재미있는 모습이나 행동들을 SNS에 올리곤 했다. 그러다가 반려동물만을 위한 SNS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해 사내벤처 지원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여유 인력이 많지 않다. 사내벤처를 하려면 자기 일도 하면서 자기 사업도 해야 한다.

사내벤처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는 김우석 전략기획실장은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하는데 회사에서 리스크를 줄여줘야 한다"며 "에이치나인도 가능성을 보고 사내벤처에 투자했다. 사내벤처 일도 회사 일인 셈"이라고 강조했다.

전략기획실 소속의 전 매니저는 업무시간에도 스스럼 없이 김 실장과 사내벤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정부 지원을 받으려고 하기 보단, 좋은 민간 투자자를 만나야 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사업을 하면 절박함이 부족해질 수 있다. 그걸 이겨내는 게 중요하다'는 식의 대화가 오고 갔다.

사내벤처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성과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선정된 취미 플랫폼 '웬지'는 가입자만 4만명을 넘어섰다. 디지털 코드 생성 플랫폼 ‘크래커나인’도 대기업들과 라이센스 계약을 맺으며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고 있다.

크래커나인 프로젝트 준비부터 함께 한 윤명준 개발실장은 "시작부터 스핀오프(분사)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 5년 정도 크래커나인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정이 들었다. 프로젝트와 내가 일체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벤처 키우는 벤처 "눈치 안 보고 창업 준비해요" [현장르포]
서울 뚝섬로에 위치한 에이치나인 사무실에서 사내벤처 팀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에이치나인 제공

■"우리 사업 하고싶어 사내벤처 육성 시작"

에이치나인은 왜 사네벤처를 육성하게 됐을까. 김우석 실장은 "생존을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는 "우리 회사는 에이전시(대행사)라 10년 동안 '남의 일'을 해왔다. 고객사의 일에 따라 움직이면서 장기적인 사업 계획을 짤 수 없다"며 "이제 '우리 일'을 하고 싶어서 아이템을 찾았는데 쉽지 않았다. 외부에서의 자극을 통해 만들어보자는 차원에서 (사내벤처 육성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인력 유출도 많았다. 이직하는 회사를 보니 상품이 있는 회사로 가더라. 그들에게 에이전시가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사내벤처를 위해선 회사 차원의 도전과 지원도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전상희 매니저는 "회사 업무에서도 성과가 좋은 사람들이 사내벤처에 많이 지원하더라"며 "회사에서는 인력적인 걱정이 많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김우석 실장은 "중소기업에서 사내벤처를 운영하려면 회사와 창업팀을 조율하는 중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명준 실장도 "창업 프로젝트 팀장으로 있는 최고기술책임자(CTO)가 굵직한 포인트를 잡아주고, 내가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것으로 업무 분장이 돼 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처음에 회사가 한 실패를 다시 하고 싶지 않아 사내벤처를 키우는 것"이라며 "작게라도 비즈니스를 만들어서 시장에 실험하고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사내벤처를 유연하게 운영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사내벤처 팀원들에게 사업가로서 필요한 소양이나 역량을 체계적으로 교육해주고 싶은데 중소기업이라 그런 부분이 미안하다. 정부에서 관련한 지원이 이뤄줬으면 좋겠다"며 "중소벤처기업은 정부 비용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정부 지원금 기한이 1년이라 빡빡하다. 사용 기한에도 조금 여유를 주면 좋을 거 같다"고 제언했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