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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는 영혼의 양식,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산문집 되길"

정호승 "시는 영혼의 양식,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산문집 되길"
정호승 시인
[파이낸셜뉴스]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정호승 시 '수선화에게')

1972년부터 지금까지 시를 짓는 일을 48년째 이어왔다. 1000편의 시를 썼고 13권의 신작 시집을 냈다. 빠른 속도로 성장했지만 사회 정치적으로 어둡고 고통스럽던 시대에 시를 처음 세상에 내보이며 시대의 눈물을 닦기 시작했던 이십대 청년은 이제 일흔이 넘은 노인이 되었다. 인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낀 시인 정호승은 그간 발표한 시 가운데 60여편을 모아 시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정시인 정호승은 1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제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일흔의 나이가 되었다"며 "올 초 이 나이를 기념하는 시집을 한 권 냈고 연말이 가까워 또 이를 기념하는 산문집을 출간하게 돼 기쁘다. 이제 이런 물리적 나이를 스스로 기념하는 일은 작가로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쑥스럽기도 하지만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기에 긍정적 의미로 정리할 것은 서둘러 정리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책을 내는 마음의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정호승은 그간 수많은 시를 발표하며 시집과 산문집을 세상에 내놨지만 간담회 자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생애 두 번째다. 첫 번째 간담회에 나선건 7년 전이다. 정호승은 "결혼식 때만 넥타이를 매는데 예의를 갖추자 해서 평소에 매지 않던 넥타이도 매고 나왔다"며 "겸연쩍지만 두서 없이 마음 속 이야기를 거짓없이 말씀드린다. 한 작가가 책을 내는 것은 자녀가 태어나는 기쁨과 같다. 저도 새로운 책을 손으로 쓰다듬고 품에 안고 하는 심정으로 앉아있다"고 밝혔다.

정호승 "시는 영혼의 양식,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산문집 되길"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사진=비채
이번에 발간한 책은 그의 시력 48년 동안 쓴 시 가운데 시를 쓰게 된 배경과 경험이 담긴 작품 60여편을 추려서 선보였다. 그래서 '시가 있는 산문집'이다. 정호승은 "저는 그간 시는 시대로 시집으로 묶고, 시를 쓰게 된 계기나 배경이 된 이야기들은 산문집으로 엮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시와 산문이 별개의 문학 장르이지만 영혼과 몸처럼 하나를 이룬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며 "제가 어떤 시를 쓸 때 이런 기분을 가졌고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를 함께 산문으로 정리해 같은 책으로 묶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결과가 이 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다들 시가 어렵다, 시가 독자들과 동떨어져 있다고 말하며 우리 삶에서 시가 무슨 역할을 하고 보탬이 되느냐하며 시를 이해하기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고 시가 어렵지 않고 이해할 수 있게끔 하고 싶었다"며 "시는 영혼의 양식이다. 시를 쓰기 위해 있었던 배경 이야기를 한 상에 차리면 시를 이해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책 제목에 대해서는 "산문집 안에 있는 저의 시 '수선화에게'와 관련된 산문의 마지막 구절"이라며 "산문을 마무리 할 때 나온 마지막 문장을 나중에 책 제목으로 쓰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히 애착을 갖는 시들을 스스로 꼽을 수 있지만 그 중 가장 많은 독자들이 좋아하고 사랑을 해주시는 저의 시는 '수선화에게'였다"며 "연약한 꽃대 위에 핀 수선화의 영롱한 빛이 인간의 외로움의 색채라 생각하고 수선화에 빗대 인간의 본질적 외로움을 노래한 시인데 많은 공감대를 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외로움의 문제는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제 자신도 마찬가지고 젊든, 나이가 들든 외로움을 느끼는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하는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며 "사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인데 이 본질에 대해 왜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점이 있다고 항상 생각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왜 외로운가를 생각하고 자기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 부정하고 원망하고 했을 때 우리의 삶은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외로움을 본질적으로 긍정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것을 이해함으로서 외롭지 않아진다고 생각한다. 이를 책 속에서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선화에게서' 외에도 자신이 쓴 시 중 '산산조각'이라는 시를 통해 스스로 애착과 위안을 얻는다"고도 말했다. 그는 2000년 인도로 불교 성지 순례를 떠났다가 룸비니에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부처의 생가 앞에서 한 노파로부터 진흙으로 만든 불상을 사온 경험을 말하며 "책상에 올려놨는데도 이 불상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되면 어쩌나 늘 걱정을 했는데 어느날 시적 상상력 속에서 부처님이 나를 불러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은게 아니냐,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되지 않느냐' 했던 말씀이 시의 마지막 4행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마지막 4행이 제 삶에도 위안과 힘을 주고 많은 이들의 삶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저는 이 4행을 가슴에 품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며 "이 시대의 시인으로서 단 한편의 시가 다른 사람의 삶과 위안을 줄 수 있다면 시인으로서 얼마나 큰 기쁨인가 생각하며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수선화에게서'와 '산산조각'은 이 책의 앞부분에 다뤄진다.

정호승은 반세기 가까이 시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저는 시가 아니고 시인일 뿐이다. 시와 시인은 구분된다. 시가 저를 통해서 나왔을 뿐이지 제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시가 저를 사랑해줬기에 시인으로서 제 삶을 살 수 있었다 생각한다. 또 시인으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결국 사랑을 해 주는 많은 분들의 힘에 의해 되었다고 생각한다"며 겸양의 모습을 보였다.

정호승은 "저는 70년대에 등단한 시인이다. 당시 나는 그 시대의 눈물을 닦기 위해 시를써야겠다 생각했고 보다 쉬운 일상의 언어로 시를 쓰며 일상인들과 떨어지지 않아야겠다 생각했다"며 "이제 나이가 70이 넘어서 드는 생각은 이 사회와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이다. 제가 죽고나서도 이 시대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들은 많이 태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나의 존재의 눈물을 닦는 것은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다 생각해 시를 쓴다.
여기에 다른이의 눈물도 닦아준다면 더 없이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점점 인간이라는 존재의 눈물을 성찰하고 영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시를 좀 더 쓰다가 시인의 삶이 끝나겠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죽을 때 가슴에 써야할 시가 더는 없도록 빨리 쓰고 남아 있는 삶의 시간을 보내야겠다 생각한다"며 "이번 산문집에서는 작업의 절반 정도만 나온 거여서 앞으로 한 권 더 이러한 책을 세상에 더 내보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