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탈 조페 '에스메'(2020) 리만머핀서울 제공
누군가에게는 지나온지 한참이고 누군가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며 누군가에게는 다가올 미래인 10대의 시절.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에 터져나오는 에너지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운 시기,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게 될지 기대와 불안이 겹치는 이 시기의 청소년들의 불안한 눈빛이 한 엄마 화가의 눈에 비쳤다.
미국에서 태어나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샹탈 조페는 지난 2004년 딸 에스메가 태어난 이후 그를 모델로 한 다수의 초상화를 선보여왔다. 작가는 딸을 낳고 나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딸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었다.
또 딸을 통해 사람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고 쉴새없이 그 모습이 변하는지에 대해 깨닫게 됐다.에스메는 특히 10대가 되며 많은 친구들과 교제하기 시작했는데 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마치 동물원이나 식물원에 온 듯한 기분"이라고 밝혔다. 10대들이 보이는 특유의 표정과 포즈 그리고 이제 어른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 그들만의 특별한 비밀을 감춘 듯한 눈빛을 보는 것이 초상화가로서의 그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이에 조페는 그의 딸과 친구들의 초상을 캔버스에 담아 올해 신작으로 발표했다.
에스메는 캔버스 속에서 관람객을 쏘아보는 듯한 눈빛을 보여주는데, 이는 열여섯이 된 그녀가 갖기 시작한 사춘기적 반항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에스메와 어릴 때부터 거의 평생을 알고 지낸 남자 친구 프레이저의 모습도 전시 속에서 간간이 보이는데 이번 전시에 포함된 유일한 남성 모델이다.
프레이저는 에스메의 옆에 어색하지만 늘어진 채 앉아있기도 하고 지루한 학교 수업을 견뎌내는 모습도 보인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아 강한 남성성이 드러나지 않은 모습인데 캣워크 모델부터 포르노 여배우, 어머니, 문학작품 속 주인공 등 그간 주로 여성을 그려온 작가는 그를 모델로 삼은 연유에 대해 "나는 그저 여성의 신체와 걸음걸이, 표정의 풍부함, 그리고 옷을 걸쳤을 때의 움직임 등을 회화의 대상으로 삼고 싶을 뿐이며 남성인 프레이저를 화면에 담은 이유는 프레이저가 아직 성인 남성이 풍기는 강한 남성성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조페는 "이번 작업을 통해 어린 시절, 여성 혹은 남성으로서의 자의식보다는 그저 스스로 행복했던 시절을 회고했다"며 "자라면서 점차 스스로가 여성임을 의식하게 됐고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가지게 되었지만 아직 어린아이일 때에는 스스로의 성별이 지금만큼 중요했던 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9일까지 서울 율곡로 리만머핀서울 갤러리.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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