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안영일 /사진=현대화랑
[파이낸셜뉴스] '물의 화가'로 널리 알려진 원로 화가 안영일이 지난 12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향년 86세로 타계했다.
안영일은 1934년 개성에서 서양화가 안승각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인은 부모를 따라 일본 도쿄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1945년 10세 때 귀국했다. 아버지의 작업실에 있는 각종 미술책을 접하며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렸고 타고난 재능으로 '천재 소년화가'라 불렸다. 1949년 중학생으로 제1회 국전에서 입선했으며 1953년 고교생으로 제2회 국전에서 특선했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선으로 강등됐다.
1957년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주한 미 대사관에서 실시한 공모전에 뽑혀 뉴욕 월드 하우스 갤러리의 초대전에 참여했다. 1958년 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예고와 사대부고에서 교편을 잡다가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화단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1959년 미국 시카고의 헐 하우스 갤러리, 1962년 핀란드 헬싱키의 USIS 갤러리 등 해외 갤러리에서 잇따라 개인전을 개최했다.
1966년 안영일은 더 큰 무대를 꿈꾸며 뉴욕으로 이주한다. 몇 개월 뒤 로스앤젤레스로 거주지를 옮겨 정착했고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캘리포니아 해변 풍경과 특유의 정취가 담긴 서정적인 반추상 계열의 작품을 발표하며 현지에서 전도유망한 화가로 주목을 받았다. 1967년 재커리 월러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고 도약하려던 그는 1970년 컬렉터와 갤러리 사이에 소송이 벌어지는 바람에 10여 년에 걸쳐 제대로 된 활동을 펼치지 못했다. 이후 이혼, 경제적 어려움, 우울증을 겪던 그는 1980년대 '물' 연작을 발표하며 재기에 성공하며 '물의 화가'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안영일 'Water ALSV 16' (2016) /사진=현대화랑
안영일은 1983년부터 시작한 '물' 연작을 통해 빛, 물 그리고 안개가 바다와 교감하는 무수한 방법을 탐구했다. '물' 연작은 바다에서 작은 어선을 타다 길을 잃은 경험에서 출발했다. 자신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가 갑자기 걷히면서 햇빛이 쏟아져 수면이 형형색색으로 빛났고 이때의 잊히지 않는 인상을 시각 언어로 구체화한 것이다. '물' 연작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색으로 덮인 단조로운 화면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사각의 작은 색 점이 모자이크 패턴을 이루며 반짝이고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작가는 물감을 팔레트 나이프로 화면에 옮겨 채움으로써 물결에 반사된 빛의 일렁이는 움직임을 형상화했다. 생전에 그는 바다를 자신의 일부라 말했다.
생전에 안영일이 美 LA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인 모습 /사진=현대화랑
고인은 2014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이 불편했지만 붓을 놓치 않았다. 2017년 2월부터 10월까지 미국 서부 지역 내 최대 규모 미술관인 LA카운티미술관에서 재미 한국작가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개최해 대형 '물' 연작 10여 점을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같은해 3월에는 현대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내한해 고국의 관객과도 만났다. 그해 11월 미국 롱비치미술관은 회고전을 열었다. 2018년 시카고의 카비 굽타 갤러리에서 생전 마지막 개인전을 선보였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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