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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훈의 원정소송 오디세이] 해외로펌에 몽땅 맡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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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훈의 원정소송 오디세이] 해외로펌에 몽땅 맡기지 마라
지난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내린 '메디톡스 대 대웅제약' 사건 최종 판결의 후폭풍이 거세다. 두 회사 주가가 요동쳤고 애매한 판결로 인해 양측이 모두 스스로가 실질적인 승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 또는 바이든 당선인이 판결 효력을 무효화하는 거부권을 행사할 여지가 남아 있어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원정 소송에 들어간 소송비용도 만만치 않다. 메디톡스는 며칠 전 전환우선주를 발행해 자금 조달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다수의 증권사 보고서에 따르면 대웅제약에 원정 소송 관련 비용은 계속해서 재무적 부담이 되어왔다. 또다시 해를 넘기며 안갯속을 표류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 대 SK이노베이션' 사건 역시 두 회사가 원정 소송에서 지불하는 소송비가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 간 분쟁의 유리한 해결을 위해 원고측 기업이 선택한 원정 소송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의 무게를 미리 알지 못하고 결정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원정 소송을 결정한 기업은 그 선택의 무게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입시 시험에서 가장 회피하고 싶은 실수는 바로 한번 틀렸던 문제를 또 틀리는 경우다. 이때 주효한 예방책이 바로 오답노트다. 해외 소송에 항상 노출돼 있는 우리 수출기업들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여기에 소개한다.

첫째, 원정 소송에서 우리 기업이 필요 이상의 법률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면 국제 소송비용은 정답이 없다. 정해진 시장가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기업분쟁 케이스 조기진단(Early Case Assessment)을 통해서 예상되는 소송비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반드시 복수의 로펌 후보 회사들 간에 경쟁입찰을 붙여서 소송비용 절감에 적극 나서야 한다. 또한 번역과 통역에 막대한 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문서들이 본사의 꼼꼼한 필터링 없이 현지 로펌의 실수 또는 재량권으로 광범위하게 번역되는 것은 소송비용이 줄줄이 새는 원인 중 하나다.

둘째, 원정 소송을 지휘하는 사령탑이 우리 기업 본사가 맞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원정 소송의 고삐를 해외 로펌에 맡겨선 안된다. 비록 해외에서 진행되는 소송이지만 한국에 있는 본사가 주도권을 쥐고 단계별로 상황을 파악하고 결정을 내림으로써 현지 로펌의 변호사들을 긴장시키고 집중하게 해야 한다. 더구나 미국에서의 소송은 전자증거개시 절차 도중에 또는 약식판결 단계에서도 언제든 쌍방간 민사합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관례이므로 매 단계 합의 종결과 다음 단계 소송 진행 사이에서의 편익 분석을 통해 본사가 결정을 주도해야 한다.

셋째, 원정 소송 진행과정에서 재하청(Subcontract)의 문제는 없는가. 본사의 무관심 속에서 발생하는 재하청은 보안, 비용, 비효율성의 문제를 일으킨다. 미국 내 소송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분석기술을 활용하는 리걸테크 회사들, 언어 장벽을 해소할 전문 통·번역 회사와 협력하게 된다.
따라서 본사가 이들 여러 회사 가운데 옥석을 가려 직접 계약해야 한다.

원정 소송에 임하는 기업들은 반복되는 실수를 극복해서 소송 맷집을 키워야 한다. 이렇게 정착된 '소송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문화'는 글로벌 시대의 강력한 기업경쟁력이 된다.

심재훈 미국 변호사, 기업분쟁 해결 분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