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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연으로 지운 신문지, 무념의 시간 45년

최병소 개인전 '의미와 무의미'
아라리오갤러리 내년 2월27일까지

흑연으로 지운 신문지, 무념의 시간 45년
최병소 Untitled 016000 , 2016 , Hangers,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사진=아라리오갤러리

[파이낸셜뉴스] 작가는 지운다. 흑연으로, 모나미 153 볼펜으로, 신문지의 까만 활자를 남김없이 지운다. 의미를 지닌 활자를 흔적도 없이 지움으로 인해 그 공간은 다시 무의미의 검은 물성으로 채워진다. 지움의 끝에 찢겨나간 신문지 표면은 생채기 난 채로 있다. 그런 상처가 한두군데가 아니다. 작가가 닿고자한 것은 비움이었을까, 또다른 채움이었을까. 수천번, 수만번 반복되는 구도자같은 행위속에서 작가는 그저 자신을 찾을 뿐이다.

1970년대이후 국내 화단의 위력적인 화풍이었던 단색화 흐름과 저항의 꿈틀거림 실험미술 사이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온 최병소(71)의 작품들이 서울 북촌 아라리오갤러리에 전시돼있다. 개인전 타이틀이 '의미와 무의미(SENS ET NON-SENS: Works from 1974 to 2020'다. 프랑스 현대철학자 메를리 퐁티의 1948년 저서에서 차용한 제목이다. 퐁티는 이 책에서 의미는 기호에 의해 완전하게 표현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작가가 퐁티의 현상학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 것은 물론 아니지만, 예술세계에 혁명적 사유와 태도라는 점에서 퐁티와 전시는 서로 닿아있다.

흑연으로 지운 신문지, 무념의 시간 45년
최병소 개인전 '의미와 무의미' 설치전경. 사진=아라리오갤러리

1943년 대구에서 태어난 작가에게 신문지는 일상의 용품이었다. 검열과 강요가 횡행했던 군부정권 시절 청년기를 보낸 작가의 저항정신이 신문지 작업의 추동력이었다는 해석도 있지만 정작 작가는 내옆에 신문지가 있었기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1974년 처음 이 작업을 했으니 이 무념(無念)의 시간이 벌써 45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병소의 작업에선 반예술·전복적 사유가 읽힐 수밖에 없다. 작업의 대상이자 도구가 주는 그 평범함이 오히려 비범하다. 아라리오갤러리 지하 한복판엔 세탁소 철제 옷걸이 8000여개가 대형 사각을 이루고 있다. 작가가 제각각 구부려놓은 옷걸이가 펼쳐진 길이는 세로 7m, 가로 4m. 그 자체로 거대한 단색화가 완성됐다. 내옆 일상의 도구가 그렇게 차례로 예술이 되는 것이다.

흑연으로 지운 신문지, 무념의 시간 45년
최병소 개인전 '의미와 무의미' 설치전경. 사진=아라리오갤러리
덩그러니 놓인 12개의 빈의자중 11개는 반듯한 선안에 놓여있다. 나머지 하나는 비스듬히 제자리를 이탈했다. 작가는 우리의 학교, 교실 풍경이라고 했다.
군용 담요위에선 누군가 윷놀이를 한 모양이다. 그런데 윷이 다섯개가 아니라 여섯개다. 한끗 차이에서 일상과 비일상의 근원을 따져묻게 한다. 전시는 내년 2월27일까지.

jins@fnnews.com 최진숙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