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끝> 규제에 규제를 더하다
경제3법 이어 중대재해법까지
거여, 규제법안 줄줄이 강행
재계 어려움 호소했지만 안먹혀
"국회와 애증 관계였다. 특히 경제 3법 처리는 굉장히 서운했다."(지난 23일 송년간담회에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올해 나온 법안 중 기업을 격려해주는 내용은 하나도 없고 전부 옥죄는 내용이었다."(20일 차담회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올해 1년간 경제계 상황은 '코로나19'와 '규제' 두 단어로 요약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들이 자고 일어나면 규제가 쏟아진다고 할 정도로 정치권의 '기업 때리기'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특히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 및 제정안 등 소위 '경제 3법'은 정부·여당과 재계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안이다.
우려는 9월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경제계에서 의견을 여러 차례 냈지만 무시되는 것 같다. 어쩌면 일방통행까지도 예상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국 이런 걱정은 현실이 됐다. 여기에 여당이 내년 초까지 통과를 선언한 중대재해법까지 겹치면서 재계는 올해 연말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경제 3법, 내년 현실로 다가와
경제 3법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상법과 공정거래법 일부 조항들은 당초 개정안보다 몇 발 뒤로 물러섰다. 민주당은 이를 놓고 "재계의 입장을 반영했다"고 언급했지만, 기업들로선 곁가지만 쳐낸 격이라며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가장 큰 쟁점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이었다. 상법 개정안의 정부 원안은 감사위원을 다른 이사들과 따로 뽑고, 대주주 측의 의결권은 특수관계인을 합산 3%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소수주주가 추천한 감사를 이사회에 진출시켜 경영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이 개정안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분리선출이 반영되고 '의결권 3% 제한'은 빠졌다. 재계 관계자는 "완화가 아니라 기존 상법을 그대로 유지한 것일 뿐"이라며 "모든 문제의 원인인 감사위원 분리선임이 빠졌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도 결국 도입됐다. 아울러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사익편취) 규제대상도 늘어났다. 규제 대상기업은 올해 5월 기준 210곳에서 내년에는 598곳으로 늘어난다.
다만 전속고발권 폐지는 개정안에서 빠졌다. 민주당 내부에선 이를 놓고 재벌개혁 의지가 퇴색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지만, 역으로 재계 입장에선 성과를 거둔 부분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은 시행령과 하위법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최대한 보완책을 요구할 계획이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보완입법밖에는 답이 없지만, 쉬운 길은 아니다. 당장 내년부터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적용되는 것을 지켜보며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과잉처벌 반발
재계 앞에 남은 올해 마지막 관문은 중대재해법이다. 정부가 많은 부분을 수정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정치권에선 '껍데기만 남았다'는 논란이 일었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독소조항이 남아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재계는 정부가 중대재해 예방은 뒷전이고 문제가 생기면 기업 경영자에게까지 책임을 묻겠다며 다그치는데, 앞뒤가 뒤바뀐 정책이라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재계가 지적하는 부분은 대표이사 2년 징역형, 경영책임자 안전조치 의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점이다. 또 중대재해법 처벌 대상에서 장관과 지방자치단체장이 제외된 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는 "몇몇 독소조항은 완화가 아니라 삭제되는 것이 해결책이다. 수정안도 여전히 과잉입법으로 가득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손경식 경총 회장은 지난 29일 오전 국회를 방문해 "(경영자에게) 재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법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우려를 전달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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