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개강에 대학가 원룸 ‘텅텅’
대면 수업 없어 방 빼고 싶어도
세입자 없어 월세 고스란히 부담
"자영업자 임대료 지원처럼
‘월세 멈춤’ 등 논의 필요" 의견도
지난 25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앞 원룸·하숙집 밀집지역. 대학들이 개강을 앞둔 1~2월 성수기지만 잇따른 비대면수업에 원룸 매물이 많이 나와 있다. 사진=김나경 인턴기자
#. 서울의 H대학 경영학과 2학년 박모씨(23)는 학교 근처에 세를 얻은 원룸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박씨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자 지난해 대부분의 시간을 본가에서 지냈다. 지난해 2월 계약한 원룸에서는 '단 3달'만 거주했을 뿐이다. 하지만 월세는 꼬박꼬박 내고 있다. 매달 나가는 '빈방세'가 아까워 기말고사 전 방을 내놓았지만 2달 이상 세입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2년째 '비대면 개강'을 앞둔 대학가의 원룸시장 침체가 길어지면서 '자취없는 자취비'를 내야 하는 대학생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비대면 수업이 확산되며 대학가 원룸 수요가 급감하자 보증금없는 방까지 등장할 정도로 임대인들의 고충이 컸는데, 그 피해가 대학생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가되는 양상이다.
■ 방 못빼 월세 내려고 알바
26일 연세대·이화여대 인근 중개업소에 따르면 서울 신촌 일대 원룸 월세는 지난 해에 비해 평균 5만원 이상 떨어졌지만 아직도 빈방이 수두룩하다. 통상 1학기 개강 전인 1~2월은 원룸 성수기로 꼽히지만 비대면 개강이 예상돼 수요가 확 줄었기 때문이다. 실험이나 실습, 연구 등으로 학교에 나가야 하는 대학원생만 기존 계약을 연장하는 실정이다.
월세 하락이 대학생들에게 호재로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존 계약 기간이 남은 학생들은 주거비용 부담을 토로한다. 수업을 참가하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아르바이트를 해서 월세를 메꾸는 상황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학교 앞 셰어하우스에서 생활했던 김모씨(한국외대 행정학과 2학년)는 "어떻게든 월세와 자취 비용을 마련해야 해서 주말 동안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했다"며 "시쳇말로 '현타'가 왔다. 월세 40만원이 아까워서 보증금 29만원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계약기간보다 일찍 퇴거했다"고 전했다.
지방 등 타지역 출신 대학생들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빈방 월세'를 내면서도 본가에서 학기를 보내는 사례도 많다. 자취방은 있지만 가뭄에 콩나듯 하는 학사일정을 위해 월세에다가 생활비 부담까지 안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말고사 등 필수일정이 있을 때만 KTX로 통학하는 식이다.
숙명여대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본가에 가서 방을 비워놓고 월세·관리비만 입금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일부 임대인들은 관리비를 안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학생들에게는 비용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들 "'월세 멈춤' 논의도 해달라"
대학가 빈방 월세 관련 정부의 지원책도 답보 상태다. 한 대학생은 "대학 대면수업이 언제 재개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대료 지원이나 임대료 멈춤과 같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청년월세지원 정책을 통해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19~39세 청년 1인 가구 5000명에게 최대 10개월 동안 월 20만원의 월세를 지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난해 경쟁률이 7대1에 달하는 등 지원을 보장받을 수 없는 데다 빈방 월세를 내는 학생만을 위한 별도의 정책도 없다.
서울시 청년월세지원팀 관계자는 "대학생들의 월세가 낭비되는 것인데, 이를 지원할 정책은 따로 없다"며 "이러한 대학생을 따로 지원할 여력도 부족한 상태"라고 토로했다.
kimhw@fnnews.com 김현우 기자 김나경 인턴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