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호 떼고 이름 알린 '싱어게인' 가수 이승윤 '허니' '치티 치티 뱅뱅'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경연대회 선곡만으로도 한 편의 이야기 여기까지 혼자 왔어 나…겁내지 말고 나를 따라와, 그대를 위해 노래 부르리 마지막 곡으로 선택한 이적의 '물' 아직 나는 잔뜩 목이 말라요, 숨이 넘어갈 듯 노랠 부르며, 그대가 나타나길 기다렸어요 월세·생활비 걱정하던 32세 청년 "제 노래로 다른 사람을 춤추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JTBC 제공
이승윤/뉴스1
JTBC 음악 경연 프로그램 '싱어게인'의 우승자 이승윤은 가수에게 가창력만큼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개성이라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또한 개성은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기교의 산물이 아니라 치열하게 자신의 길을 추구한 한 개인의 피와 땀, 눈물의 축적물임을 보여줬다. "근본 없는 음악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던 그는 각양각색 노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내 '장르가 30호'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심사위원장 유희열은 "경계선에서 태어난 한 명의 스타가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었다"며 기대했다. 16일 열린 '싱어게인 톱3' 기자 간담회에서 자신을 '댄스가수'라고 새롭게 명명한 이승윤의 성장드라마를 되짚어봤다.
■"미사여구 없이 감사, 좋은 음악인 되겠다"
"'싱어게인' 하면서 제가 말을 너무 많이 했더라고요. 제가 해왔던, 할 수 있는 음악에 비해 너무 거창한 말을 해서, 이젠 말을 아껴야 할 것 같습니다. 미사여구 없이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싶습니다. 좋은 음악인이 되겠습니다."
이승윤이 우승 후 첫 출연한 JTBC '뉴스룸'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칭 "(뛰어난 가수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배 아픈 가수"로 등장한 이승윤은 경연 내내 예상을 뒤엎은 행동과 무대로 한 편의 성장드라마를 써내려갔다. 그는 2012년 인디밴드 따밴의 기타 겸 보컬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솔로 활동도 병행하고 2019년 결성한 알라리깡숑의 보컬로 활동하다 '싱어게인'에 출전했다.
이승윤은 '싱어게인'에 도전한 이유로 "'나는 이런 음악을 하는데, 좀 들어볼래'라는 마음으로 참가했다"고 말했다. 또 우승에 이르기까지 "어떤 노래를 할지, 어떤 무대를 꾸밀지 집중하다보니 얼떨결에 톱3에 올랐다"고 부연했다. "나는 사실 악보도 잘 볼 줄 모르고 근본 없는 음악을 합니다. 그런데 십수년간 음악계를 지탱해온 내로라하는 선배님들이 '(네가) 우리에게 (음악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고 하니 정말 감사했죠. 동시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계속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싱어게인'에서 이승윤의 선곡은 한 편의 이야기가 됐다. 미래의 팬들을 향해 '허니'를 외친 그는 "자기 웬만하면 내게 오지"(박진영의 '허니')라며 관심을 당부했고 이후 마치 선전포고를 하듯 "여기까지 혼자 왔어 나… 겁내지 말고 나를 따라와, 조금 더 높이 날아가"(이효리의 '치티치티 뱅뱅')라며 자신의 개성을 과감히 드러냈다. 이어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를 통해 본격적인 성장을 예고했다. 특히 이 노래는 조명받지 못한 채 음악을 하고 있는 수많은 '72호 가수'(무명가수)들에게 바친 노래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위해 노래 부르리'라며 용기를 건넸다.
■새로운 출발선상에서 "미안해, 그때 난 기도밖에 할 줄 몰랐어"
이승윤은 방송에서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정하고 타인의 충고를 겸허히 수용하는 성숙된 모습도 보여줬다. 방송 초반엔 "내 음악 인생이 실패해 자신감이 없다"면서 자신을 향한 환호에 의심의 눈초리도 보냈다. 하지만 김이나 심사위원의 "칭찬을 애정으로 받아들이라"는 충고에 눈물을 훔치며 "칭찬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이후 그는 방탄소년단의 '소우주'를 부르며 "우린 빛나고 있네, 모두 소중한 하나"라고 외쳤다.
경연 마지막 곡으론 이적의 '물'을 택했다. 그는 "아직 나는 잔뜩 목이 말라요, 숨이 넘어갈 듯 노랠 부르며, 그대가 나타나길 기다렸어요"라고 열창하며 '방구석 가수'에서 벗어나 세상속에 우뚝 섰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선상에서 그가 선택한 곡은 역시나 예상을 벗어난 노래로 자작곡 '기도보다 아프게'였다. 그는 '뉴스룸'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2014년 4월 16일을 떠올리게 한 이 노래를 불렀고 "바르고 진솔한 젊은이에게서 감동과 위로와 희망을 얻는다"는 반응을 얻었다. '미안해 그때 난 기도밖에 할 줄 몰랐어, 노래할게 기도보다 아프게, 성났던 파도가 이젠 너희의 고요한 숨을 품은, 자장가처럼 울 때까지…'('기도보다 아프게'가사 중)
■우리시대 청춘의 얼굴 "음악하며 삼시세끼 먹고 싶어요"
무명가수였던 이승윤은 먹고 살기 힘든 우리시대 청년의 모습도 대변했다. 그는 방송에서 "(오디션에 출연하느라 돈을 못벌고 있어) 다음달 월세와 생활비가 걱정된다"며 32세 청춘의 녹록치 않은 삶을 드러냈다. "제 깜냥을 알아서 슈퍼스타를 꿈꾸진 않습니다. 나와 비슷한 이들에게 필요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러나 (음악을 하며) 삼시세끼는 먹고 싶습니다. 월세도 내고." 그는 경연 중 자주 눈물을 훔쳐 '공식 울보'에 등극하기도 했다. 특히 듀엣 대결을 펼친 2라운드에서 상대팀이 탈락 위기에 처하자 "아쉽고 가슴이 아프다"며 눈물을 훔쳤다. "승패 그런 것에서 평생 도망쳐온 사람이었죠. 오디션에 도전하면서 각오는 했지만 이렇게 일찍 경쟁할지 몰랐습니다. 누군가는 집으로 가야하고… 이기적으로 제가 슬퍼서 (지금 눈물을 흘리는) 꼴불견 짓을 하고 있습니다."
패기와 재기가 넘치는 발언도 주목받았다. 듀엣 무대의 파트너였던 이무진과 정면승부를 펼치게 된 3라운드에서 그는 "이무진이 잘했는데 나도 잘해서 패배자를 심사위원들로 만들겠다"고 했고 "'틀에 갇히지 않는 가수'라는 틀에 갇히고 싶지 않다"며 각오를 다졌다.
1억원의 상금을 타 최소 10년치 월세 걱정을 던 이승윤에게 당신은 이제 어떤 가수인지 물었다.
그는 "그동안 이런 질문에 '여전히 배 아픈 가수'라고 답했는데, 만약 다시 묻는다면 '댄스가수'라고 답하겠다"고 했다. "'싱어게인' 출전 전까지 내 음악 인생은 조명을 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김이나 심사위원이나 시청자들의 댓글을 보면서 '내가 아끼는 것에 좀 더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다'는 데이터를 얻었죠. 전 정통 댄스가수입니다. 제 노래로 다른 사람을 춤추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