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상식 밖 배당 확대 요구
무시땐 '3%룰'로 감사 선임 보복
30대기업 중 22곳 감사 분리선출
방어 수단없는 기업, 경쟁력 악화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제2 엘리엇, 소버린 사태가 우려된다.
헤지펀드가 상식 밖의 배당제안을 하고, 기업이 받아주지 않으면 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되는 '3%룰'로 보복할 수 있다.
이사회의 이사인 '감사위원'이 헤지펀드의 손에 넘어가면 기업의 영업비밀도 노출,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이 크게 약화 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3일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연구개발(R&D) 투자 등 회사가 투자 여력을 가지고 있어야 어려워졌을 때도 다시 일어날 기반이 된다"며 "배당성향을 상식 밖으로 높이지 않았다고 3%룰을 활용, 감사 선임에 관여한다면 정상적인 주주권 행사보다는 보복성에 가깝다. 회사 경영을 망치는 행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부터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할 때 대주주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의 주식을 대주주 20%, 일반주주 60%, 외국인 20%씩 가지고 있다면 감사위원 분리 선출 시 대주주 지분은 20%가 아닌 3%로 줄어든다. 일반주주가 침묵할 경우 외국인이 잔여 지분을 합쳐 연합하면 이해관계자를 감사위원으로 선임할 수 있다.
3%룰이 소액주주들을 보호하기보다 헤지펀드들의 보복에 활용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오는 배경이다.
주주제안을 회사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이해관계자를 감사위원으로 선임을 강행할 수 있다.
이 감사위원은 이사회의 이사인 만큼 기업의 영업비밀에 접근할 수 있다. 헤지펀드의 주주제안을 기업들이 무시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재계에 따르면 국내 30대 기업의 감사위원(사외이사 겸직 포함) 중 30% 가량은 이달 임기가 끝난다. 해당 기업은 세계 최초로 이사회에서 의결권을 제한받는 가운데 감사위원 최소 1명을 분리선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시가총액 상위 30개사 감사위원 102명 중 이달 임기만료되는 감사가 최소 1명 이상인 곳은 22개사, 31명에 달한다. 삼성전자(1명), SK하이닉스(1명), LG화학(1명), 네이버(1명), 현대자동차(2명), 카카오(3명), 기아자동차(1명) 등 시총 상위 10개사 중 7개사가 포함됐다.
실제 미국계 주주행동주의 헤지펀드 'SC펀더멘털'은 최근 대신증권에 보통주 1주당 2019회계연도 1000원 대비 50% 늘린 1500원을 요구했다.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배당금 비율)으로는 약 60%에 달한다.
이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결의될 대신증권의 2020회계연도 배당성향은 업계 최고 수준인 47.2%로, 기존 배당성향 가이드라인인 30~40%를 이미 초과했다. SC펀더멘털의 주장이 "과도하다"는 시각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증권사가 배당을 과도하게 늘리면 자기자본을 충분히 쌓지 못하게 되고, 이는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지난해 말 기준 대신증권의 자기자본 규모는 2조910억원이다. 발행어음 사업자인 초대형 투자은행(IB)의 4조원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고, 헤지펀드에 자금과 주식을 빌려주는 프라임브로커(전담중개) 업무를 할 수 있는 3조원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신증권의 배당성향이 충분히 높은 수준이지만, SC펀더멘털의 과한 요구는 결국 회사 본연의 가치를 낮추게 된다"고 봤다.
대신증권이 증권사 중에서 증권사의 재무건전성을 가늠하는 대표적 지표인 순자본비율(NCR)이 하위권인 점도 과한 요구를 방증한다.
문제는 과도한 요구 등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주주제안이 앞으로 폭증한다는 점이다.
대신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주주제안은 2016년 31건에 그쳤지만 2020년 3월 추정치가 119건으로 대폭 늘어났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외국 투기자본이 3%룰을 우회해 국내 기업을 공격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며 "국내 기업들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친기업적인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크지 않아 기업들로서는 방어수단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ggg@fnnews.com 강구귀 조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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